누가복음 7장 36-39절, 44-50절 말씀 묵상 [민경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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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구원받은 죄인!(4)_죄인 여자
본문 : 눅 7:36-39, 44-50
예수님이 한 바리새인으로부터 식사대접을 초청 받았습니다. 이에 예수님이 그 집에 들어가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그 때에 같은 마을에 사는 죄인인 한 여자가 예수님의 뒤로 다가와 그 발 곁에 섰습니다. 아마도 그 동네는 가버나움일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또한 여러 정황에 비춰볼 때 이 '죄인 여자'는 동네에 널리 알려진 창기였을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본문 39절). 이 여자는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눅 8:2에 등장하는 일곱 귀신 들렸다가 고침받은 막달라 마리아가 아닙니다. 또한 베다니 마을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의 누이동생 마리아도(마 26:6-13; 막 14:3-9; 요 12:1-8) 아닙니다. 잔치를 베푼 사람이 바리새인 시몬이었다는 것만으로 동일시할 수 없습니다. 시몬이란 이름은 유대인 사이에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신약성경의 예만 들어도 시몬 베드로, 셀롯인 시몬, 가룟 유다의 아버지 시몬, 구레네 시몬, 피장이 시몬, 문둥이 시몬 등등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유명한 창기 죄인 여자가, 즉 죄를 많이 지은 여인이 모든 죄를 용서받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본문 48절). 심령이 구원받는 엉청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본문 50절). 아니! 어떻게! 이런 누구나 인정하며 손가락질하는 죄인이 구원받는 놀라운 사건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요?
1.첫째로 이 죄인 여자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본문 38절 전반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44절 후반 “...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여자는 창기로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으며 살아오던 중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죄악된 행실에서 돌이킨 여인이었습니다. 여인의 눈물은 세상살이에 힘겨워서, 또는 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서 나오는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그 눈물은 회개의 눈물이었습니다. 또한 그 눈물은 감사의 눈물이었습니다.
아마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4:17)란 예수님의 메시지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또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2)는 말씀을 들었나 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란 말씀에 감동이 되었나 봅니다.
경위가 어떠하든 그녀는 예수님을 찾아오기 전부터 회개하며 많은 죄가 사함을 받고 있었다고 예수님은 암시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47절 전반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her many sins have been forgiven
“사하여졌도다”(, 아페온타이)는 직설법 완료(시제)형 수동태로 이 여자의 죄가 이미 사하여 지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오늘날도 죄를 회개하며 부흥회나 예배 등 교회를 찾아오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 역시도 회개하는 가운데 주일예배를 2번 참석하게 됐고, 그 다음 주일 새벽에 큰 은혜를 받았었습니다. 우리 모두 인생에 지은 죄들을 회개하십시다. 그리고 회개하는 가운데 교회로 인도함 받으시며 예수님의 은혜를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2.둘째로 죄인 여자는 믿음으로 자신의 죄가 사해졌음을 믿었습니다
본문 50절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죄인 여자는 예수님 앞에 오면 죄를 용서받으며 구원받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습니다. 당시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창녀가 바리새파 사람의 집에 온다는 것은 반감을 살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한 멸시와 냉대를 감수하고라도 예수님 앞에 오는 믿음의 행위를 먼저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예수님에게 회개와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일반적으로는 도무지 행할 수 없는 사랑의 행위들을 표현했습니다.
1)첫째로 여인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며 머리털로 씻었습니다.
본문 44절 후반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바리새인 시몬)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식사 전에 발을 씻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손님에게 발 씻을 물을 제공하는 것은 손님을 대접하는 예의 중의 하나였습니다(참조, 창 18:4; 삿 19:21 등). 발을 씻는 이유는 그들이 먼지투성이 길을 샌들을 신고 다녔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식사를 할 때 침상에 비스듬히 기대어 맨발을 내밀어 놓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에게 발 씻을 물조차도 주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죄인 여자는 발 씻을 물 대신,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셨습니다. 그리고는 수건이 아닌 자신의 머리털을 풀어 발을 닦았습니다. 이는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겸손의 행위입니다. 게다가 늘 예쁘게 단장하고 있던 머리를 풀어 예수님의 발을 닦는 행위는 최상의 봉사의 행위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섬김입니다.
2)둘째로 죄인 여자는 자신의 입으로 예수님의 발에 거듭 입맞추었습니다.
본문 45절 “너는[바리새인 시몬]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입맞춤은 매우 보편적인 인사 방식 가운데 하나였습니다(참조, 창 33:4; 출 18:7; 삼하 15:5; 마 26:49). 그러함에도 시몬은 예수님께 이러한 표현조차도 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이 죄인 여자의 태도는 시몬과 현저한 대조를 이뤘습니다.
여기서 “입맞추기, 헬, , 카타필레오”는 “카타”란 반복의 의미와 “필레오”란 사랑하다의 합성어 미완료과거형입니다. 즉 “반복하여 입맞추다”는 뜻입니다. 볼에 입을 맞추는 행위는 손님에게 대한 애정 어린 표현입니다. 그런데 여인은 예수님의 입이나 볼이 아닌, 더러운 발에 수없이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러한 여인의 행위는 자신의 죄 사함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며, 사랑의 표현이고 절대적인 존경의 표현입니다.
3)셋째로 여자는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본문 46절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시몬은 손님에게 환영과 사랑의 표시인 머리에 기름을 붓는 보편화된 관습도 무시했습니다. 이때에 기름은 대개 올리브유를 사용하였습니다. 기름은 머릿결을 부드럽게 하고 우아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한 용도였습니다(참조, 룻 3:3; 삼하 12:20; 시 23:5).
반면에 죄인 여자는 헌신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머리가 아닌, 발에 향유를 부음으로 최선의 정성을 다하였습니다. 향유는 머리에 보통 바르는 기름인 올리브유보다 훨씬 귀하고 값도 비쌌습니다. 막14:3-5에는 이 기름을 '나드'라고 했는데 그 가격은 농부의 하루 품삯의 300배에 달했을 정도였습니다. 더욱이 “부었느니라”는 “, 엘레이펜”으로 직설법 미완료 과거 능동태 동사입니다. 이러한 표현은 일회적인 행위가 아닌 반복적인 행위였음을 나타냅니다. 이는 죄인 여인이 그만큼 예수님을 사모하는 심정이 크기 때문이었음을 알려줍니다. 또한 여인이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것은 예수님을 메시아, 곧 기름부음을 받은 자임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그렇습니다. 전에 그녀의 눈은 남자를 유혹하는 눈이었으나 이제는 회개의 눈물이 흐르는 눈으로 변했습니다,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머리털은 예수님의 발을 씻기는 겸손과 헌신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녀의 입술은 정욕의 입술이었으나, 이제는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는 신앙의 입술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여인의 모든 행위는 지극히 아름다운 예배 행위 그 자체였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47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이 구절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문제는 사랑이 용서나 구원의 원인이냐 아니면 결과냐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이는'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 호티, hoti”로서 '... 때문에', ‘... 위하여'라는 이유, 또는 목적을 표명하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방금 언급한 바를 지시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 호티, hoti”는 “...와 같은 사실로 입증되듯이”라는 뜻이 됩니다(Marshall). 따라서 본문을 다시 구성해 보면 “이 여인이 지었던 많은 죄는 이미 용서함을 받았다. 그러므로 이 여인은 더 이상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러한 죄인이 아니다. 이 사실은 그녀가 앞서 내게 보여주었던 많은 사랑과 봉사로 입증된다”는 말씀이 됩니다. 즉 여자가 죄 사함을 받은 원칙은 “신앙”이었습니다. “사랑” 또는 “사랑의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성경에는 사랑이 죄를 용서해 준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은 이 죄인 여자의 모든 죄가 용서받았음을 선포했습니다.
본문 47절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her many sins have been forgiven!
본문 48절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우리가 아무리 더러운 죄인이라도 죄를 깨닫고 겸비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오면 우리 주님은 긍휼히 여기고 용서하시며 깨끗하게 하십니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리라”(사 1:18).
지옥은 죄인이기 때문에 가는 곳이 아닙니다.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때문에 지은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은 성자가 됩니다. 반대로 지은 죄를 자랑하는 자는 죄인이요 악인입니다.
우리 모두 “네 죄가 사하여졌도다”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시길 간구합니다.
오늘 본문의 창기 죄인 여자는 회개하며 예수님의 은혜로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그녀는 감사하여, 나아가 주님을 사랑하여 헌신적인 섬김을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구원받으며 평안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도 이 같이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며 믿음으로 예수님 앞으로 나아 가시길 권면합니다. 그리하여 “구원받은 죄인”의 축복과 평안을 늘 누리며 사시게 되길 축원합니다.
또한 이미 “구원받은 죄인”으로 축복된 삶을 살고 계시는 신앙인들은 죄사함을 받은 여인이 그랬던 것처럼 사랑의 행위를 행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고백하며 실제적인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권면합니다. 진정 그리스도의 영, 성령님이 심령 가운데서 역사하여 감사와 사랑이 샘솟듯 하며 헌신적으로 주님을 섬기게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