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7장 10-15절 말씀 묵상 [김동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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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깨진 관계들
본문 : 창세기 27:10-15
오늘을 살면서 간들간들하게 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위기에 처한 다양한 관계들 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없이 든든해 보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실상을 들여다 보면 흔들거리는 바위위에서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극에 달한 감정들이 폭발 직전에 있습니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기분 입니다.
나는 괜찮겠지 생각했던 자신에게 경계선이 허물어 지고 있습니다. 이미 와장창 깨진 관계들도 많습니다.
왜 이지경까지 왔을까? 뭐든지 원인이 있었기에 결과가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인가요?개인주의적 성향의 심화 입니다.
“내가 더 많이 배려 했다. 내가 더 많이 이해 했다. 내가 더 많이 참았다 . 그런데 돌아오는 건. 그저 당연하게 여길 뿐이다.
오히려 뒤통수를 치는 경우도 허다 합니다. 자연히 실망뿐입니다. 서운함뿐입니다 .
왜 나만 노력해야 하지.. 왜 나만 맞춰야 하지.. 왜 나만 참아야 하지.. 이런 감정이 반복되다 보면 사람 자체가 싫어집니다. 관계는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갈 뿐입니다.
자신이 중요하면 상대방도 중요한데..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서로 인내하고 함께 성장하고 변화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 문제가 생겨도 이기적인 생각 보다는 서로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인정합니다.잠시나마 삐그덕 거렸던 관계도 함께 풀어 가는 미덕으로 다시 오래 지속되는 양면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미덕들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참을성을 상실한 시대 입니다. 너무 쉽게 포기 합니다. 감정이 폭발해 버리면 인격이고 뭐고 없습니다. 쌍욕부터 나갑니다. 다시 주워담을 수 없는 막말이 판을 칩니다.서로가 서로를 향해 책임전가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서로를 아끼라. 너희는 서로를 사랑하라 라고 말씀 하신 것들은 안중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아는 내용 입니다.이삭과 리브가 사이에서 쌍둥이가 태어 납니다. 형 에서와 동생 야곱입니다. 이 시대는 장자에게 축복권이 허락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에서를 불러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음식을 주문 합니다.
이 사실을 엿듣고 있던 리브가는 동생 야곱을 불러 먼저 축복권을 받을 수 있도록 빠른 조치를 취합니다.
첫째, 바라는 것이 많으면 거짓과 속임으로 나 만을 위한 삶을 만들어 갑니다.
창 27:8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리브가는 야곱에게 거짓말로 아버지 이삭에게 접근하도록 합니다. 야곱은 성격이 조용한 사람 입니다. 소심하고 겁도 많은 사람입니다. 창 27:12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그나마 양심이 있는 야곱이 사실을 말합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막무가내식입니다.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무슨 말입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어머니 리브가가 내성적인 아들인 야곱을 부추김니다.
거짓과 눈속임으로 시작된 준비를 보세요. 창 27:14절에 그가 가서 끌어다가.. 끌어다가…준비도 엉터리 입니다. 정성이 없습니다.
눈이 먼 아버지 이삭을 눈속임으로 야곱을 변장하게 합니다. 진실을 가르쳐야 하는 데 거짓말을 가르침니다. 순종을 가르쳐야 하는 데 불순종를 조장 합니다. 목적만 쟁취하면 그 만이라는 식으로 밀어 붙입니다.
야곱은 준비한 음식을 가지고 아버지에게 가서 뭐라고 말합니까? 아주 태연하고 능청스럽게 거짓말로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음이니다”“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가 대답하되 그러하나이다
야곱이 말하는 걸 보세요..
”거짓말 크레센도“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에서 입니다. ..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나이다. ..책임질 수 없을 정도로 거짓말이 점점 세집니다.
리브가와 야곱의 합작품으로 형제간에 의리를 파괴 시킵니다. 형제간의 관계를 복수의 관계로 만들어 버립니다.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는 지경까지 가게 만듭니다.
행복해야 할 관계가 불행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둘째, 야곱이 축복권을 획득했지만 이후에 불거져 오는 아픔의 시간들
리브가는 야곱에게 잠시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 있도록 하라고 합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도록 하라고 지시 합니다 .그런데 잠시 피함이 20년 이란 긴 세월을 불협화음 속에서 살게 합니다
더 아쉬운 것은 어머니 리브가는 그 날 이후로 야곱을 한번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관계가 어긋나면 안 보면 그만이지 쉽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안 본다고 마음이 누그러 지는게 아닙니다. 에서가 사실을 확인한 후에 이미 몰래 도망친 야곱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고 분노가 치밀어 참을 수 없습니다.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생활하지만 생각은 공간을 초월 합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살지만 서로를 향한 복수심과 두려움이 그들의 삶을 병들게 합니다. 그 여파가 미래를 힘들게 합니다.
마지막,깨진 관계의 상처를 아물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하라
하나님은 상처나고 파괴된 관계들을 회복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관계가 끊어질 지경, 아예 끊어진 지경 이거나, 깨지고 또 깨지고.. 연속으로 곤경속에 빠져 있다면 문제 해결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리브가와 야곱이 꾸민 거짓 속임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깨진 관계를 회복하는 길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을 먼저 찾아 오셨습니다. 형 에서에 대한 두려움으로 벌벌 떨고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다가 오십니다.
하나님이 에서와 야곱을 향한 회복의 전략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마음의 상태를 바꾸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야곱을 찾아오셔서 그의 환도뼈를 부러 트립니다. 왜 그랬을까 ? 야곱이 평생 의지해 온 자신의 꾀와 인간적인 힘을 완전히 꺾으시기 위함 입니다…하나님은 관계를 깨트리는 영적 암을 제거 하십니다.
그리고 야곱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십니다 . 이름을 바꾸어 주십니다.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말입니다. 지금까지 속이는 자로 남을 아프게 했던 자신을 보게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꾸어 주십니다. 자신의 얄팍한 계산과 속임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로 새롭게 만들어 주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에서에게도 찾아가십니다. 분노와 복수에 차 있는 에서의 마음을 녹여 주십니다.
도망치는 야곱을 향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망가진 관계를 다시금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도우심입니다.
벧엘에서의 손길 입니다. ..무조건적인 동행의 약속을 허락하십니다.
두려움에 휩쌓인 채 도망치는 야곱에게 찾아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임재의 확신을 주십니다.
하란의 손길 입니다. 철저한 훈련과 징계의 시간입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보낸 20년은 야곱의 사기꾼 기질이 그대로 되돌아온 영적 훈련의 시간이었습니다.
라반에게 10번이나 품삯을 속으며 인간의 꾀가 무력함을 깨닫게 하는 인내의 훈련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은 야곱을 거부로 만드셨고 라반의 해를 받지 않도록 막아주셨습니다.
얍복 나루의 손길 입니다. 옛 자아를 깨뜨리시는 하나님 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형 에서가 군사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에 야곱은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합니다. 밤새 천사와 씨름하던 야곱의 환도뼈를 부러뜨림으로 평생 의지해 온 자기 힘과 수단을 강제로 내려놓게 하십니다.
그리고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꾸어 주시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불편한 관계들을 건강한 관계로 만드시나요? 상황을 바꾸게 하셔서 회복하는 게 아닙니다. 인간의 영혼을 회복시켜서 관계를 건강하게 하는 겁니다.
에서의 용서할 수 없는 배신과 분노가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서 회복 됩니다. 야곱의 불안과 두려움이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서 다듬어 주시고 영혼이 건강해 집니다.
에서와 야곱의 달라진 마음과 눈
하나님의 다가오심은 두 사람 모두에게 깨어짐을 경험 합니다.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되돌아 보면서 깨어남의 시간을 갖고 상대방을 새롭게 봅니다.
성숙을 향해서 나아가는 겁니다 .성숙이라 함은 천천히 조금씩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면서 자라가는 겁니다.
에서와 야곱의 극적인 화해의 시간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 하는 대신 달려와 그를 어긋맞추어 안고 입맞추며 함께 울었습니다. 인간의 계산으로는 불가능했던 극적인 화해를 하나님이 이루신 것입니다.
20년 동안 묵었던 야곱과 에서의 깨진 관계를 하나님을 화목으로 바꾸셨습니다.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두 사람을 이끌고 가는 길을 보십시오.. 바로 “형통 ” 입니다.
하나님의 먼저 찾아가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십자가를 지시러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나는 원래 깨진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을 먼저 희생하셨습니다. 나를 살리기 위해 먼저 자신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먼저 찾아 오심은 “바라는 것이 없어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바라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관계가 깨지지 쉬워요.. 하지만 바라는 것이 없으면 없을수록 사랑하기가 쉬워 집니다.
지금 당신의 관계는 어떤 상태 이신가요?
상대방을 향한 미움, 복수심, 분노로 가득차 있지는 않는지요? 왜 이런 악한 감정이 폭포수처럼 넘쳐날까요? 너무 바라는 것이 많은 게 아닐까요? 바라지 않고 더 품어 줄 수 는 없는 것일까? 부족함을 끌어 안아줄 수 있는 것.. 사랑의 급진성은 자신을 힘들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 바라지 않는 마음을 갖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요..
하나님은 예수님의 마음처럼 바꿔 주실 것입니다.
불편한 관계의 검은 뿌리는 내가 붙잡는 것입니다.
난 재대로 관계를 만들면서 살고 있는지.. 아니면 눈속임과 거짓을 일삼으면서 자기 몫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살고 있지는 않는지 말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으로 변화 시켜 달라고 기도하면 어떨까요? 용서를 바라지 말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 이해를 바라지 말고 이해할 수 있는 마음, 받으려고하는 마음에서 주려는 마음으로 바꿔 달라고 기도 하는 겁니다,
그리고 깨진 관계가 있다면 먼저 손을 내밀면 어떨까요? 하나님의 마음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지금 행동으로 옮기면 어떨까요? 이젠 나 만을 위한 고집스런 관계를 만드는 자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소중한 관계를 만드는 사람 입니다.
누군가 행복을 만드는 비결은 관계에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깨진 관계들을 다시 형통케 하실 것입니다 .
세상엔 늦은 것은 없습니다 .다시 새마음을 주실때가 최고의 타이밍 입니다. 이제까지 깨진 상태 속에서 불행한 세월을 보내셨나요? 이제 부터는 아름다운 관계를 써 내려가는 주님의 종들이 되시길 축복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