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장 1-9절 말씀 묵상 [민경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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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동사 신앙의 축복!(2)(도약19)
본문 : 수 1:1-9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역사의 정점을 향해 전진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정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십자가 승리와 무덤에서의 부활, 생명을 지향하며 움직이는 동적인 신앙체계입니다. 한마디로 기독교는 고정된 명사 신앙이 아니라, 계속 움직이며 전진하는 동사 신앙입니다.
오늘 본문인 여호수아 1장의 첫 부분도 동사를 주축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고 계시나요?
지난 주에 먼저 살핀 대로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본문 2절 전반).
둘째로, 하나님은 “건너라”고 말씀하십니다(본문 2절 중반)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2절 후반 “...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본문 9절 후반 “... 네가 어디로 가든지 ...”go
여호수아서의 내용은 믿음의 행진입니다. 멈추지 말고 미래를 향해 약속의 땅 가나안 정복을 향하여 나아가라는 메시지입니다. 성경 또한 “가라”는 명령을 수백번이나 엄청 많이 하고 있습니다.
가령 성부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가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 12:1).
성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천하 만민에게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 28:19 전반).
성령님은 땅 끝까지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오늘날도 하나님은 역사의 끝을 향해 중단 없이 계속 “행진”하고 계십니다. “Our God is Marching on!”
때문에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도 계속 행진해야 합니다. “Marching on”
영국의 신학자 John Stott는 “신앙인의 흉배는 뒤에 없고 오직 앞에만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왜요? 그리스도인에게는 후퇴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전진만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신앙생활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 또는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 퇴보가 있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어떠한 유혹이나 회유, 낙담이나 고난, 시련이나 핍박이 있던, 오직 앞만 보고 계속 나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이같이 우리가 일어나, 건너, 앞으로 나아갈 때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까요? 하나님은 이렇게 움직이는 동적 신앙의 결과로, 오늘 본문에서 세 가지 축복의 단어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첫째는 ‘땅을 주리라’ 입니다. 가나안 땅을 밟는 대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본문3-4절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본문 6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일어나 걷는 대로 땅을 주겠다 약속하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창 13:17).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움직이기만 하면 아브라함에게처럼 우리에게도 약속한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십니다.
둘째는 ‘함께 하리라’란 축복입니다.
본문 5절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본문 9절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늘 모세와 함께 하며 친밀히 교제했습니다.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출 33:11).
이처럼 주님은 때마다, 일마다 우리가 움직이면 모세에게처럼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임마누엘”God with us의 축복을 주십니다.
셋째는 ‘형통하리라’는 축복입니다.
본문 7절 “...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본문 8절 “...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구약에만 75회 사용된 “형통하다”는 말은 성공시켜준다는 뜻입니다. make success입니다. 요셉은 늘 형통한 자였습니다.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창 39:3).
즉 우리가 처한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일어나서, 건너고, 계속 나아가면 갈수록 요셉에게처럼 하나님이 성사시켜 주시는 형통의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 모두 각자 현재 어떠한 처지에 처해 있던 일어서지 않으시겠습니까?
앞에 강처럼 앞 길을 막고 있는 장애물을 믿음으로 건너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리고 각자 중단 없이 계속 나아가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리하면, 하나님이 각 개개인에게 첫째, 약속한 땅을 주십니다. 둘째, 함께 하십니다. 셋째, 형통케 하십니다!
나아가 우리 교인들이 교회가 모두 함께 일어난다면,
함께 건넌다면,
그리고 함께 어깨동무하며 나아간다면,
하나님이 버겐 카운티, 북부 뉴저지 땅을 어찌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지역을 복음화 시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든 교우들과 교회를 형통케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같이 놀랍고 영광스런 하나님의 역사가 새롭게 일어나 건너며 나아가는 우리 모든 교회에 있길 축원합니다. 또한 우리 교인 모든 분들의 삶과 사역 위에도 함께 하는 축복의 도약이 있으시길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