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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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1장 18절 말씀 묵상 [이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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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23)-차별을 뛰어넘어


행11:1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한 초등학교에서 음악교사가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면서 남자 아이들과 여자 아이들을 구분해서 파트별로 노래를 부르도록 해서 합창을 가르치려 했습니다.


그러자 한 남자 아이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렇게 남자 여자를 차별하면 어떡합니까?” 하고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음악 선생님은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잘못 대처했다간 남녀 성차별 범죄에 휘말릴 것 같았습니다. 그 선생님은 결국 남녀별로 구분해 노래 가르치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또 다른 사건입니다. 어느 한 카톨릭 고등학교 여자화장실에 용무를 보려고 남학생이 불쑥 들어왔습니다. 그 남학생은 자기가 여성이라고 주장하며 여자화장실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에 여학생들이 심히 놀라며 불평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학교는 카톨릭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차별 금지법’을 따른다고 남녀화장실 구분을 없애버렸습니다.


이에 대해 아무도 학교 당국에 말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한 남학생이 용감히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 이에 대해 건의를 했습니다. 그러자 학교 당국이 이 학생에게 무기정학 처분을 내렸습니다. 


그 사건 후, 다음 학기에 이 학생이 등교를 하자 학교 당국은 이 학생을 무단 침입으로 경찰에 신고해 결국 이 학생은 체포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신문에 보도된 사건입니다.


우리는 작금의 사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차별’은 없지만 ‘구별’은 하나님의 의도하심으로 명백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셨고, 선과 악을 구별하셨습니다. 이러한 ‘구별’을 ‘거룩’의 개념으로 설명하시면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구별(Distinction)은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고, ‘공과 사를 구별’하는 등, 우리 삶에 공의를 실현시키게 하신 하나님의 수단이며 조치이십니다. 이에 따라 신구약 중간시대에 나타난 운동이 ‘바리새 운동’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바리슘’이란 말에서 유래된 ‘자신들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운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구별을 마치 ‘특권의식’으로 해석하면서 ‘차별’로 시행한 것입니다. 


차별(discrimination)은 부정적이고 나쁜 것으로 ‘누구는 우대하고 누구는 멸시하는’ 나쁜 의미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시면서 이러한 차별을 철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베드로가 욥바에서 피장(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한 것은 당시 사회 계층 간의 계급에 대한 차별을 뛰어넘은 파격의 사건이었습니다. 다비다를 살린 사건은 남녀 성차별을 뛰어넘은 사건입니다.


고넬료 가정에 성령이 임하사 그들에게 세례룰 베푼 사건은 인종 차별을 뛰어넘는 파격의 사건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성은 항상 ‘나와 너’를 차별해서 이기적으로 대하려는 마음으로 나타납니다. 차별은 분명히 인간이 행하는 악입니다. 그런데 구별이 차별은 아닙니다. 구별은 하나님의 ‘선’입니다.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사람을 구별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차별금지법’은 교묘하게 이 두 단어의 의미를 혼동시켜 제정된 악법입니다. 


‘차별’과 ‘구별’의 단어를 구분하지 않고 일부러 믹스시켜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한 양심과 도덕성을 말살시키려고 하는 반성경적인 발상입니다. 


주님께서 비유를 통해 가르치신 차별과 구별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자신이 도와주는 사람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차별을 뛰어넘어 자신을 구별한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은 분명 이스라엘 사람으로부터 차별을 받는 사람이었지만 상대가 누군지 가리지 않고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주었습니다. 차별을 뛰어넘은 것입니다.


차별을 뛰어넘어 자신을 구별함으로 ‘누가 나의 이웃인가?’를 묻지 않고, ‘나는 남의 이웃이 되고 있는가?’를 물어 스스로 이웃이 된 것입니다. 차별과 구별에 대한 분명한 분별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오 주여

우리에게 성령의 지혜를 주사

차별하지 않고 구별하게 하소서

악한 세대를 잘 분별하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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