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7장 1-4절 말씀 묵상 [민경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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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우선 순위에 맞춰라!
본문: 느 7:1-4
사람들의 삶을 관찰할 때마다 가슴아픈 현실을 마주 대하곤 합니다. 그것은 대부분이 인생의 우선순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괜한 헛고생을 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본인의 입장에서는 대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최선의 노력을 다 쏟습니다. 그런데 일이 잘 풀리지 않습니다. 고생과 고난의 악순환입니다. 물론 개중에는 혹 인생이 순탄하여 출세길에 오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몰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결국 인생무상을 고백합니다. 소위 흑자인생을 추구하지만, 결산을 해보면 여전히 적자인생입니다.
그 근본이유가 있습니다. 이유는 우주만물과 사람을 지으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우선순위, Priority에 따라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우선순위가 분명한 사람일수록 형통한 인생을 삽니다. 예수님의 우선순위 원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마 6:33).
이 모든 것이 무엇입니까? 앞 절들에 언급되었듯이 먹고 마시고 입는, 의식주를 해결해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즉 하나님의 일을 우선하는 자는 반드시 영육심과 인생이 형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 일을 먼저 앞세우고, 또는 자기 일을 우선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도 이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육체가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 3서 2절).
청교도 설교자였던 Philips Brooks도 이렇게 단언했습니다.
“하늘의 것을 먼저 추구하시오. 그러면 당신은 하늘의 것과 땅의 것, 둘 다 얻을 것입니다. 땅의 것을 먼저 추구해 보시오. 그러면 하늘의 것과 땅의 것, 둘 다 잃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우선순위가 분명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바벨론 제국에 패망한지 거의 100년 후에 태어난 포로 출신 2세로서 왕실의 의전실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루살렘성의 황패한 소식을 듣고 수일동안 울며 금식하고 기도하여 아닥사스다왕으로부터 예루살렘성의 중건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의 위대한 점은 지난 70여년 동안 어느 누구도 이루지 못한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단 52일 만에 거뜬히 이루었다는 사실입니다.
“성 역사가 오십 이일만에 엘룰월 이십 오일에 끝나매”(느 6:15).
그는 이런 형통의 비결을 이미 2:18-20에서 하나님의 선한 손이 자신을 도와 형통케 하셨음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확실한 우선순위를 따라 신앙생활을 해나가십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선한 손이 직접 도우시고 형통케 하시는 큰 은총을 입는 인생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우선해야 하늘의 은총을 누릴 수 있을까요?
1. 무엇보다 예배를 우선해야 합니다
본문 1절 “성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
느헤미야서는 1장부터 6장까지는 무너진 성벽 재건운동 내용입니다. 7장부터는 무너진 신앙 재건 운동입니다. 지금까지 성벽 재건운동을 진두지휘해온 느헤미야는 오늘의 본문부터 신앙의 재건운동을 전개합니다. 그러면서 그가 맨 먼저 한 일은 제사장들을 복직시켜 준 일입니다. 레위 지파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맨 먼저 하도록 제사장들을 동원합니다.
원래부터 느헤미야는 일의 우선순위가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 성벽 재건공사를 시작할 때도 누구와 함께, 그리고 어디서부터 시작했었던가요?
대제사장 및 제사장들과 함께 일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양문부터 수리를 시작합니다(3:1).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려면 양을 제물로 바쳐야 하기 때문에 양문부터 복구한 것입니다. 이처럼 느헤미야는 구약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일, 신약적으로 표현하면 예배드리는 일을 최우선으로 여겼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의 최고 우선순위는 무엇이어야 합니까? 그 일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입니다. 신구약 성경을 살펴보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한 사람들은 모두가 예배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요 4:23).
2. 둘째로, 하늘의 은총을 받는 축복을 누리려면 경건 생활을 우선해야 합니다
본문 2절 “... 하나냐는 위인이 충성되어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에서 뛰어난 자라”
예루살렘 성읍을 완전히 복구한 느헤미야는 이제 지도자를 세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사람의 인물됨을 무엇으로 평가하고 있습니까? 가정배경, 학력, 실력, 경력, 재력, 재능, 외모 등 외적인 이력이 아닌 내면적 자질만을 소개합니다.
느헤미야도 당연히 매일의 경건한 신앙생활로 하늘의 큰 은총을 누렸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의 진실을 보십니다. 믿음을 보십니다. 신앙심을 보십니다. 경건을 중시하십니다. Godliness, 하나님과 닮은 삶을 원하십니다.
이처럼 경건 생활을 우선으로 여기고 살아갈 때 하나님의 큰 도우심과 엄청난 축복을 체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우선해야 할 일은 경건한 신앙의 생활화입니다. 우리 모두 지난 주말 복음부흥회III때 얻은 하늘의 힘으로 계속 경건한 삶을 지속 또는 발전시켜나가길 축원합니다.
3. 마지막으로 하늘의 은총의 축복을 누리려면 헌신 또한 우선해야 합니다
본문 3-4절 “... 가옥을 오히려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
고향 땅에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체로 집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예루살렘 성벽을 먼저 재건했습니다. 자기들의 사생활보다는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을 지키는 일을 우선으로 했습니다. 개인의 주택수리보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 먼저였습니다.
그러나 반대 새례도 한 때는 있었습니다. 기원전 538년에 제1차로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한 42,360명의 이스라엘인들은 오자마자 무너진 성전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러나 주위의 방해로 인해 536년에 성전 재건이 중단되었습니다. 그 때 학개 선지자는 성전 재건보다 자신의 판멱한 집을 건축하는데 혈안이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꾸짖으며 격려했던 적이 있었습니다(학 1:2-4).
그러다 520년에 바사의 다리오왕에 의해 재건 허락이 다시 떨어졌습니다. 그 때부터 516년까지 그들은 성전을 완공시킬 수 있었습니다(에 6:13-15).
그러면 3차로 느헤미야와 함께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자기들의 집도 없고 생활도 안정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자신의 삶을 바치며 헌신하였던가요?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감격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왜 헌신을 우선하며 살아야 할까요? 우리의 영혼을 지옥의 형벌로부터 구원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귀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변화되어 천국의 영원한 복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계속해서 은총의 축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북미 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은 은혜에 감사하여 맨 먼저 예배당을 짓고, 다음에 학교를 짓고, 마지막으로 자기들의 집을 지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축복을 받는 나라인 미국 시민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느헤미야와 제사장들, 레위인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우선으로 한 결과 그들은 각각 예루살렘과 유다 여러 성읍들에 정착하여 복되게 잘 살게 되었습니다(느 11:1-4). 할렐루야!
이제 우리 모두도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새롭게 결단하십시다. 무엇보다 인생의 우선순위를 확실하게 정하십시다.
하나님->가정-> 사역->직장!!!
예배->경건 생활->헌신!!!
그리하여 금세와 내세에 30배, 60배, 백 배의 은총의 축복을 누리는 도약의 삶을 사시길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