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4장 6-13절 말씀 묵상 [이영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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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순종으로 이르는 안식
본문 : 히브리서 4:6~13
6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8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였으리라 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기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았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복음을 받은 자에게는 누구나 하나님이 예배하신 안식에 들어갈 길이 열려 있습니다.
구약 시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약속의 땅 가나안이라는 안식의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순종하지 아니한 자들은 그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은 것은 그들의 불신앙에 대해 하나님께서 내리신 육체적 징계였습니다.
물론 광야에서 죽었다고 해서 그들이 무조건 일률적으로 지옥에 갔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개인의 영원한 구원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에서 참된 회개와 믿음을 가졌는지에 따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판결을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히브리서 저자가 이 사건을 가져온 핵심 의도는 명확합니다. 초대교회 당시 심한 핍박을 받아 신앙을 포기하거나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던 성도들에게, 광야 이스라엘 백성이 보여준 '배도와 완고함'의 길을 따르지 말라고 강력히 경고하기 위함입니다.
7절 “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광야 1세대는 눈앞에 약속의 땅을 두고도 불신앙과 불평으로 마음을 완고하게 하다가 결국 광야에서 스러졌습니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후, 다윗은 이미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자기 시대 백성들에게 이 비극적인 역사를 상기시킵니다.
이미 가나안 땅에 살고 있다고 안심하지 마라. 광야 조상들처럼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바로 '오늘' 순종하라"고 촉구한 것입니다.
다윗이 말한 '오늘'과 히브리서 저자가 말하는 '오늘'의 원리는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복음을 들을 때가 바로 '오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참된 안식을 누리는 시점은 내일이나 나중이 아니라, 복음의 소식이 내 귀에 들리는 바로 지금 이 순간입니다.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는 것은 복음의 선포를 들었을 때 교만함이나 세상적인 핑계, 혹은 나중에 믿겠다는 미룸으로 마음의 문을 닫지 말고, 겸손히 그 복음을 지금 받아들이라는 강력한 초청입니다.
8 -10절 “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8절의 말씀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서 준 안식이 결코 완성된 영원한 안식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구약 시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가 땅을 분배하고 정복을 마쳤습니다.
외견상으로는 안식을 누리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도 그들은 이방 민족의 침략과 전쟁, 가뭄에 시달렸고, 결국 죄로 인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가나안의 안식은 시간적·물리적으로 불완전한 안식이었습니다.
만약 여호수아가 준 안식이 전부이자 완벽한 것이었다면, 하나님께서 수백 년 뒤 다윗을 통해 '또 다른 안식의 날'을 말씀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수아가 준 가나안은 장차 올 참된 안식의 '모형과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의 완벽한 자유,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영원한 안식은 오직 영적 여호수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성취됩니다.
11-13절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함으로 이 참된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왜 저자는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면서 갑자기 '좌우에 날선 검 같은 하나님 말씀'을 이야기할까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겉으로는 하나님을 따르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불신앙과 딴생각을 품는 '외식적인 순종'으로는 절대 하나님을 속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X-ray와 같아서 우리의 혼과 영, 마음의 생각과 숨은 뜻까지 훤히 들여다보십니다. 어설픈 시늉이나 눈가림의 순종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나오는 진실한 순종으로 주님 앞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온전히 순종하여 내 고집과 세상의 안식을 내려놓는 것은 절대 손해 보는 일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도 바울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요, 로마 시민권을 가졌으며, 당시 최고 권위였던 힐렐 학파의 가말리엘 문하에서 엘리트 율법 교육을 받은 사람이였습니다. 세상적으로 내세울 것이 너무나 많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어떻게 했습니까? 자신이 그토록 귀하게 여기던 그 모든 세상 스펙과 자랑거리들을 참된 안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세상이 주는 안식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안식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존귀하고 뛰어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서 붙들고 있는 자랑과 고집을 내려놓고 예수님께 순종의 걸음을 내딛는 순간,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과 안식이 우리 삶에 시작됩니다.
오늘 말씀의 감찰 앞에 우리 마음을 겸손히 열고, 오직 우리의 참 안식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순종함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