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2장 9절 말씀 묵상 [김연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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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온전한 믿음을 소망한다면 - 작은 믿음의 충성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본문: 고린도후서 12:9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온전한 믿음을 소망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믿음,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믿음, 곧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는 말씀처럼 온전한 믿음으로 세워지기를 갈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온전한 믿음’을 처음부터 크고 강한 믿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두려움도 없고 흔들림도 없어야 온전한 믿음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현재 자신의 믿음이 작고 연약하게 느껴질 때 쉽게 낙심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믿음의 온전함을 처음부터 모든 것이 완성된 상태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믿음에는 시작이 있고 성장과 성숙의 과정이 있습니다. 믿음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겨자씨 한 알에 비유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마 13:31)
겨자씨는 작습니다. 그러나 작다고 잘못된 씨가 아닙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자랍니다. 우리의 믿음도 처음에는 작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지금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믿음의 분량 안에서 얼마나 온전히 하나님께 반응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믿음과 행함은 함께 일하는 새의 두 날개와도 같기 때문입니다. 즉, 믿음은 순종을 통하여 살아 있는 믿음임을 드러냅니다.
욥은 처음부터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소개됩니다(욥 1:1). 그러나 긴 고난과 질문의 시간을 지나 마지막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욥의 믿음은 처음부터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온전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과하면서 그 믿음은 더 깊어집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구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사람의 온전함을 동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온전하심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에서 나오는 온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성장하거나 더 완전해지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본래부터 완전하시며 온전하십니다.
그러나 피조물인 인간의 온전함은 다릅니다. 인간은 생명이 자라듯 믿음도 계속 성장하고 성숙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사람을 향하여 말하는 온전함은 더 이상 자랄 필요가 없는 절대적 완성이 아니라, 현재 주어진 믿음의 분량 안에서 하나님께 온전히 반응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편에 나오는 다윗이 그러합니다.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시 26:1)
즉 오늘 주어진 믿음의 분량 안에서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며, 그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 가고, 다시 더 깊어진 믿음의 자리에서 온전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은 단계마다 온전함을 이루면서 계속 장성해 갑니다.
달란트 비유도 이 사실을 잘 보여 줍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똑같은 양을 맡기지 않고 “각각 그 재능대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깁니다(마 25:15). 그리고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과 두 달란트를 받은 종에게 똑같이 말씀합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마 25:21, 23)
주인의 칭찬은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평가는 단순히 양의 크기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맡기신 분량 안에서 얼마나 충성하였는가에 있습니다.
따라서 온전한 믿음은 행위의 완전함이나 신앙생활에서 드러나는 일의 크기와 업적의 규모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믿음의 분량 안에서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고 있는가?”
오늘 나에게 맡겨진 작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작은 말씀 하나에 순종하며, 작은 책임 하나에 충성하는 것, 바로 그 자리에서 온전한 믿음은 시작되고 자라갑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순종의 믿음에는 성령 안에서 경험되는 의와 평강과 희락의 열매가 따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여기에서 말하는 평강과 희락은 세상이 주는 편안함이나 즐거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아래 자신을 맡기고 순종할 때 누리는 하늘로부터 오는 평강과 기쁨입니다.
뿐만 아니라 진리 가운데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1–32)
이 자유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자유가 아니라, 두려움과 사람의 시선과 자기 욕심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온전한 믿음에는 충성된 순종이 있고, 그 순종에는 성령 안의 의와 평강과 희락, 그리고 진리 가운데 누리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질그릇과 같이 연약하고, 쉽게 흔들리며,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 위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기를 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
그러자 바울은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온전한 믿음은 내가 강해져서 이루는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의 연약한 믿음으로 오늘 온전히 순종할 때, 그 자리 위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고 우리를 더욱 온전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믿음을 소망한다면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믿음으로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그 작은 순종이 쌓이면서 믿음은 깊어지고, 마침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을 향하여 자라가게 될 것을 믿음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