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사도행전 7장 51-60절 말씀 묵상 [김연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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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 충만한 사람 ‘스테반’」

― 마음의 할례를 받고 그리스도를 닮아 살아가는 사람 ―

본문 : 사도행전 7:51–60


스데반은 초대교회 안에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믿음과 은혜가 충만한 사람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행 6:3, 5, 8).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 공동체의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공회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가 고발당한 이유는 성전과 율법을 거슬러 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거짓 증인들은 스데반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한다”고 주장했고, 나사렛 예수가 성전을 헐고 모세의 규례를 고치겠다고 가르쳤다고 고발했습니다(행 6:13–1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러 오셨습니다(마 5:17). 문제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이 그분의 말씀을 율법과 성전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데 있습니다.


이에 스데반은 사도행전 7장에서 아브라함부터 요셉, 모세, 광야와 성막, 다윗과 솔로몬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를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의 설교는 단순한 역사 이야기가 아닙니다. 스데반은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되짚으며, 그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온 한 가지 모습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람을 보내시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을 반복하여 거절합니다. 요셉을 시기하여 팔고, 모세를 거절하고 대적하며, 선지자들을 박해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보내신 의로우신 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거절합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설교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행 7:51)


오늘 본문의 중요한 대비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 유대 동동체 안에 서로 다른 두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한쪽에는 성령을 거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율법이 있습니다. 성전이 있습니다. 제사와 선지자의 말씀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있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다른 한쪽에는 스데반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를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행 6:3),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행 6:5),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사람”(행 6:8)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스데반은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행 7:55)


한쪽은 스데반을 향하여 이를 갑니다.

한쪽은 하늘을 바라봅니다.

한쪽은 돌을 듭니다.

한쪽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이처럼 극명한 차이는 어디에서 생깁니까?


처해진 상황이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의 문제 입니다. 즉 마음이 성령의 인도 아래 있느냐, 아니면 자기 생각과 자기 의에 붙들려 성령을 거스르고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그렇습니다. 율법이 있다고 해서 저절로 하나님을 보는 것은 아닙니다. 성전을 가까이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도 아닙니다. 말씀을 알고 예배를 드려도 마음이 굳어 있고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고 거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외적인 종교의 형식에 머무는 신앙이 아닙니다. 육신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입니다. 굳은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자기 생각을 내려놓으며,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는 시선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스데반이 처한 현실은 매우 위급합니다. 사람들은 분하여 이를 갈고, 그를 성 밖으로 내쳐 돌로 치려고 합니다(행 7:57–60). 그러나 스데반은 그 현실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주목합니다. 그리고 현실보다 크신 하나님과 죽음보다 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따라서 성령 충만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세상의 형편과 사람의 평가와 눈앞의 문제와 상황을 넘어, 그 모든 현실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데반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침내 자신이 바라보는 예수님을 닮습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행 7:59)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

예수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시듯 스데반도 자신의 영혼을 주님께 맡깁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용서하시듯 스데반도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용서합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의 열매입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특별한 능력이나 체험에 머물지 않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눈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시고, 바라보는 그리스도를 닮아 살아가게 하시며,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성령 충만한 은혜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마음의 눈을 열어 주시며, 눈앞의 현실보다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실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의 성품으로 맡겨진 삶과 사명을 감당합니다.


오늘도 하루가 시작됩니다.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나는 성령을 거스르고 있는가, 아니면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고 있는가?

나는 눈앞의 문제만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스데반처럼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나는 내가 바라보는 예수 그리스도를 오늘의 삶에서 닮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이 세대를 본받고 있는가?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은 현실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늘을 바라보기 때문에 이 땅의 현실을 내 눈에 보이는 대로, 내 귀에 들리는 대로, 내 중심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중심으로,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오늘이라 일컫는 이 날에 

오직 성령님을 의지하여 주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현실을 바라보며, 

성령의 권능에 힘입어 

환난 많은 이 세상 가운데서도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담대히 증언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기를 함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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