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0장 20-23절 말씀 묵상 [김연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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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남은 자 - 하나님께서 끝까지 붙드시는 사람
본문 : 이사야 10:20–23
이사야서에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남은 자’의 사상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사 10:20–21)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남은 자는 환난과 심판 가운데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남은 자의 핵심은 인간의 끈질긴 생존이나 강한 의지에 있지 않습니다. 언약을 끝까지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 언약을 이루기 위하여 자기 백성을 끝까지 붙드시고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많은 민족 가운데 택하시고 자신의 소유된 백성,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하셨습니다(출 19:5–6). 그리고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
하나님과 맺은 언약으로 백성이 된 이스라엘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시대의 유다 왕 아하스는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보다 앗수르를 의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하여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표징을 주셨지만(사 7:14), 아하스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눈에 보이는 앗수르의 힘을 더 신뢰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의지했던 앗수르는 후에 오히려 유다를 위협하고 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말합니다.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사 10:20)
하나님께서는 언약 백성이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의지할 때 그것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물질을 의지하면 물질의 한계를 보게 하실 수 있고, 사람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면 사람이 구원자가 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실 수 있으며, 일과 건강과 자신의 능력이 영원한 피난처가 될 수 없음을 알게 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상실과 질병과 관계의 어려움을 하나님께서 직접 무엇을 빼앗아 가신 결과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삶의 흔들림을 통하여 우리가 무엇을 의지하고 있었는지를 드러내시고,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깨닫게 하여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십니다.
‘돌아오다’라는 말은 히브리어 ‘슈브(שׁוּב)’로, 방향을 돌이켜 다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이사야는 이미 자신의 아들에게 ‘스알야숩’, 곧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사 7:3). 그러므로 이사야서에서 남은 자는 단순히 심판과 환난에서 목숨을 건진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존하시고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언약 백성입니다.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사 10:21)
인간은 연약함과 무지로 인해 흔들릴 수 있고, 잘못된 것을 의지할 수도 있으며,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붙들기 때문에 결국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남은 자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끝내 돌아오는 사람입니다.
열왕기상 19장에서도 이러한 남은 자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18)
그들이 남은 자가 된 것은 다른 사람보다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내가 남기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남겨 두신 은혜의 결과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믿음으로 나타났습니다.
바울도 이 말씀을 인용하며 말합니다.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 11:5)
남은 자의 뿌리는 인간의 강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구원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끝까지 이루어 가십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또한 베드로는 성도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는다”고 말합니다(벧전 1:5).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구원을 이루셨고, 약속하신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붙드시며 말씀을 기억하게 하시고, 잘못된 길에서 다시 돌이키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사야서에서 남은 자 사상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이미지 가운데 하나가 그루터기입니다.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사 6:13)
나무가 베어지고 가지와 잎과 열매가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씨를 남겨 두십니다. 그리고 이사야 11장에서 그곳으로부터 다시 생명이 시작됩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 11:1)
사람이 보기에는 다 베어지고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끝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실패하고 나라가 무너지고 다윗 왕조의 가시적인 통치가 끊어진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주신 언약과 그 계보를 끊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계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남은 자는 단순히 겨우 살아남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구원의 역사가 끊어지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신약에 이르면 이러한 남은 자의 신앙은 어린양을 끝까지 따르는 성도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계 14:4)
남은 자는 세상이 가는 넓은 길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시대의 풍조를 좇아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 12:2) 오직 어린양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갑니다.
성경 전체에서 남은 자의 모습은 하나로 연결됩니다. 아합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남겨 두신 자들이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았고, 이사야 시대에는 잘못된 의지에서 돌이켜 여호와께 돌아왔으며, 바울은 그들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시든 끝까지 따라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나타납니다.
오늘도 하루가 시작됩니다.
남은 자는 인간의 끈질김을 증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명하는 사람임을 다시 되새깁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선물 받은 우리이기에, 그 은혜에 순종으로 반응하며 주님의 돌보심 가운데 끝까지 어린양을 따라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님과 함께 시온 산에 서서 ’내가 하나님을 붙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끝까지 붙드셨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함께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