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50장 15-21절 말씀 묵상 [김동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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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의 다루심
본문 : 창 50:15-21
요즘 영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전세계를 달구고 있습니다. 오디세이는“<길고 험난한 인생의 여행 혹은 여정>” 이란 의미로 한 마디로 “대 여정” 이라는 뜻 입니다.
영화 오딧세이의 핵심 주제는 “고향으로 돌아감” 입니다. “끝없는 시련 속에서도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을 잊지 않았던 한 인간의 이야기 입니다.“
오디세이를 보면서 성경의 오딧세이가 생각 납니다. 바로 요셉 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도 ”계속되는 시련 속에서도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을 잊지 않고 살았던 사람” 입니다.
오딧세이가 인간적인 노력으로 돌아감이라면, 요셉의 돌아감은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영원한 고향으로 돌아감 입니다.
요셉이 마지막 임종의 때에 백성들 앞에서 남겼던 마지막 말이 뭔가요?
"내 유골을 가지고 나가라”… 요셉은 이집트가 영원한 거처가 아님을 믿음으로 고백 하고 있습니다.
오디세이와 요셉의 삶의 차이점은 하나님의 다루심입니다.성경은 요셉의 삶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는 표현 입니다. 이 말은 요셉의 일상은 늘 “하나님의 다루심” 속에서 살았다는 증거 입니다.
하나님의 다루심은 “내 중심적인 생각과 고집을 깨뜨려 그 분의 더 크고 완전한 뜻에 순종하게 만드는 거룩한 과정“ 이라 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게 함, 중심의 변화-세상의 평가나 기준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임재를 더 의식, 온전한 순종(상황이 내 기대와 반대로 흘러갈 때 조차도 온전히 낮아져 순종하는 마음) 예측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굳건한 신앙에 서도록 “생각” 를 만들어 가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으로 세상 속에서“다름“ 을 추구 합니다. 감정을 뛰어 넘는 굳건한 믿음으로 다름을 추구 합니다 .
요셉이 직면한 다양한 삶들을 성경은 옷으로 표현 하고 있습니다.
채색옷 입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다른 자녀들보다 더 사랑받음.. 그래서 형제들은 시기 질투 합니다. 노예로 팔아 버립니다.
노예옷 입니다. 종의 신분을 드러 냅니다. 노예로서 힘든 시간들 입니다.
죄수복 입니다. 보디발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혀 죄수복을 입습니다.
세마포 옷 입니다.왕에게 서기 위해 입는 옷 입니다. 총리의 역할을 위해 입는 옷 입니다.
요셉은 가장 잘 나갈때에 입는 옷과 가장 비참할 때의 옷을 입는다 할지라도 한결같은 신앙입니다.
요셉의 하나님의 다루심의 핵심은 임마누엘 입니다. 함께 하심 입니다. 요셉에게 어떠한 옷이 입혀진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시면서 갑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끝없는 시련과 아픔과 고통 속에서도 요셉은 늘 하나님의 다루심 속에서 살았습니다.
첫째,하나님의 다루심 속에서 다름을 만드는 요셉의 삶을 보세요
(다름의 핵심은 나를 살리면서 상대방도 살리게 하십니다.)(세상에서 같음은 모두 죽습니다..내가 달라야 하나님의 가치가 상대방에게 침투 되어 살릴 수 있습니다)주님의 다름이 나를 살려 내어 ..남을 살리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다루심은 요셉이 어떠한 환경에 처한다 할지라도 “거룩한 창의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거룩한 창의자'는 영성적 맥락에서 세상의 일반적인 방식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뜻과 창조 질서를 드러내는 독창적이고 거룩한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를 뜻합니다.
이는 세속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 선한 영향력과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사람을 비유할 때 쓰입니다
세상의 거친 파도 앞에서 편한 지름길을 찾기보다 하나님이 주신 삶의 현장을 정직하게 살아내며, 진리를 이 시대의 언어로 담대히 써 내려가는 ‘거룩한 창의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거룩한 창의자로서 하나님의 속성을 따라 삽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답습 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요셉은 거룩의 창의자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살았습니다. 세상과 타협이냐 아니면 도망이냐 기로에서 도망칠 줄 압니다.
일상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의 뜻을 따라 구별된 삶을 사는 겁니다. 즉 그 거룩한 습관으로 세상의 빛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다루심은 요셉으로 하여금 ”환대의 창의성“ 입니다 . 환대의 창의성'은 ”낯선 타인을 단순한 배려나 의무를 넘어 새로운 관계와 가능성으로 품어내는 유연하고 능동적인 정신“을 뜻합니다. 이는 정형화된 틀을 깨고 타인에게 개선과 회복의 자리를 내어주며, 관계 속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내는 지혜를
의미합니다
요셉은 자신을 노예로 팔아버린 형들을 기쁨으로 환대 합니다. 자신을 이용해서 자기의 유익을 챙겼던 관리들을 환대 합니다. 자기를 감옥에 갇히게 하는 보디발의 아내를 환대 합니다.
요셉의 형들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바로 자신이 노예로 팔아 넘긴 요셉임을 알았을때에 얼마나 놀랐을까요? 두려움이 몰려 옵니다 . 이젠 영락없이 다 죽었구나 라고 생각 하면서 벌벌 떨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형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환대의 창의성을 발휘 합니다.
“내가 어찌 형들을 벌할 수 있습니까? 용서할 줄 아는 환대 입니다. 흉년이 들어 먹을 게 없는 자들에게 먹을 것을 베푸는 환대 입니다. 형제들에게 보여준 환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합니다.
크리스천의 창의성은 나 혼자의 천재성을 과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 안에서 타인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들이 마음껏 은사를 발휘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환대의 창의성’입니다.
내가 모든 답을 가지고 있다는 오만을 내려놓고, 함께 하나님 나라를 향해 항해하는 ‘발굴대장’으로서 동료를 신뢰하고 세워줄 때 비로소 위대한 작품(공동체)이 완성됩니다.
둘째, 요셉은 그가 당한 모든 시련과 시험과 환난, 그것이 주님이 자기를 다루심이었다 고 고백 합니다 .
늘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 하나님의 다루심을 결코 의심하지 말고 최후통첩으로 인식하라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질질 끌려 가는 인생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거기에 속임을 당하지 말라.
둘, 하나님의 다루심으로 세상에 영향을 끼치도록 감동을 주라
요셉은 보디발에게 감동을 주는 삶을 삽니다. 형제들에게 감동을 주는 삶을 삽니다. 관리자에게 감동을 줍니다. 그는 자신이 당한 수련과 시험과 환난, 그것이 주님이 자기를 다루심이었다 고 고백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다루심은 형통으로 마무리 하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분의 요구에 순종하는 자에게 임하는 강력한 성령의 기름부음은 그가 포기한 것보다 무한히 더 큰 것을 안겨준다. 이런 길은 힘든 길이지만 분명히 영광스러운 길이다.
요셉의 대여정 속에서 빠지지 않는 단어가 바로 형통이다. 형통의 히브리적 의미는 “꿰뚫고 나갈 수 있는 힘” 이다. 바로 하나님의 끌어 주심이다. 하나님의 끌어 주심은 누구도 막아낼 자가 없습니다.
마지막, 우리 각자의 인생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오딧세이들이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주님이 우리에게 마지막 돌아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알려 주십니다.
사람이 늙어서 영원을 눈앞에 두었는데 은혜로운 미래에 약속이 없다면 얼마나 큰 비극이겠는가! 그러나 추수 때 실하게 익은 옥수수 단처럼 성숙한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셉은 지금의 현실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돌아갈 고향이 있음을 알기에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을 게으르지 않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의 다루심은 한번의 기회로 끊나지 않습니다.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탕자가 그랬고.. 탕자를 받아 주시는 탕부 하나님의 다루심은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합니다.
매사에 십자가에 못박힌 삶으로서 현실에서 살아가는 겁니다. 십자가를 다른 사람들과 공동으로 지고 갈 수 없다는 진리를 항상 명심하라.
하나님의 다루심 속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는 말씀이 있습니다.
시 34:8에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신앙은 단순한 머리의 인식이나 정보 수준의 지식이 아닙니다. 삶을 통한 구체적인 체험을 전제로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아야 한다고 강조 합니다.
맛보다 로 번역된 히브리어 타암은 음식의 맛을 본다는 뜻 입니다. 즉 직접 경험을 통한 점검이나 확인을 의미 합니다.
그리고 알다 로 번역된 히브리어 라아는 눈으로 직접 목격한다는 뜻 입니다. 두 단어 모두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을 통한 앎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시대의 성경 오디세이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다루심 속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주님의 종들이 되기를 축복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