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3장 1-15절, 사도행전 1장 7-8절 말씀 묵상 [김연희 목사]
작성자 정보
- 복음뉴스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제목 :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
―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 있습니다 ―
본문 : 전도서 3:1–15 / 사도행전 1:7–8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창세기를 읽다 보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세계의 시간의 질서도 세우셨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창 1:14)
하루, 한 해, 계절과 정한 때는 우연히 흘러가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세우신 질서 가운데 흐르는 시간입니다.
즉, 피조물인 우리는 시간을 주관하는 존재가 아니라 시간의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 안에서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3장은 말합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전 3:1).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보면 이 말씀 앞에 저절로 엎드리게 됩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울 때와 웃을 때, 얻을 때와 잃을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난 삶의 여정을 돌아보며 “내 힘과 능력으로, 내가 정한 때와 기한대로 이루어진 일이 과연 얼마나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수많은 계획이 있었지만 내가 세운 계획과 시간표 그대로 이루어진 일은 많지 않았음을 알게 됩니다.
이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의 죄성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죄 가운데 태어난 인간은 자신의 삶뿐 아니라,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때와 기한까지 자기 손에 넣으려는 본성이 끊임없이 우리를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말씀을 붙들고 산다고 하면서도, 쉬지 않고 기도한다고 하면서도 우리 안에는 이런 질문과 의문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왜 아직입니까?” “언제 해결됩니까?” “이제는 응답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어느 순간 내 시간표를 하나님께 내어놓고 그것을 받아 주시기를 요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서 3장 11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전 3:11)
여기서 “지으시되”에 사용된 히브리어 **‘아사’(עָשָׂה)**는 만들다뿐 아니라 행하다, 이루다라는 넓은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의 삶과 역사 속에서 자신의 뜻을 행하시고 이루어 가시는 분입니다.
또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신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순간이 당장 즐겁고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울 때도 있고, 잃을 때도 있으며, 고난의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시간까지도 자신의 때에 합당하게 사용하시며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신뢰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시 23:6)
하나님의 때가 선한 이유는 모든 순간이 우리 눈에 좋아 보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시간을 붙들고 계신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수고와 노고, 기다림과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시간까지도 사용하셔서 우리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빚어 가십니다.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전 3:14)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나는 피조물이며, 하나님은 주권자이시고 나는 그분의 뜻 아래 살아가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사람 대하듯 가볍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인 인간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심을 알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분을 존중하며 사랑하고 신뢰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은 아주 실제적입니다. 야고보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약 4:13–15)
야고보서가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를 죄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뜻과 주권을 인정하지 않은 채, 자신이 때와 기한의 주인인 것처럼 계획을 절대화하는 교만입니다.
그러므로 죄에서 돌이킨다는 것은 내 인생의 때와 기한까지도 하나님께 돌려드리며, “주의 뜻이면”
이라고 고백하는 경외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결심과 노력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이사야는 장차 오실 메시아 위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임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사 11:2).
그리고 그 메시아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사 11:3) 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이 말씀은 참된 경외가 성령의 역사와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시고, 그분의 주권 아래 자신을 내려놓게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경외의 삶을 완전히 보여 주셨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내 뜻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뜻을 아버지의 뜻 아래 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뜻과 시간표를 주장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뜻과 때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묻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행 1:6)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행 1:7)
그리고 곧바로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행 1:8)
제자들은 회복의 시간표를 원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때와 시기를 미리 아는 능력이 아니라, 때와 시기를 알지 못해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권능은 하나님의 때를 내 뜻대로 움직이는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에 나 자신을 맡기고 오늘의 순종을 살아가게 하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마지막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 14:12)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계 14:13)
성경은 마지막까지 살아가는 성도를 모든 때를 미리 알아낸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때까지 인내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킨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복을 내가 원하는 일이 내가 원하는 때에 이루어지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 됩니다.
참된 복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내 삶을 하나님의 때와 기한에 맞추어 가며, 성령을 의지하여 끝까지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나는 어떤 때를 지나고 있습니까?
기다릴 때입니까? 울 때입니까? 잃을 때입니까? 다시 세울 때입니까?
그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기보다 내 시간표를 붙잡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다시 고백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때와 기한은 아버지의 권한에 있습니다.
행여 내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내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성령님! 내 연약함을 아시오니 때와 시기가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에 있음을 늘 기억하도록 도와주시고, 주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붙들고 끝까지 인내하며 지키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