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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5장 11-24절 말씀 묵상 [김동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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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무언가 멈춰 버린 것들

본문 : 누가복음 15:11-24


잘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멈춰 버린 것들이 많습니다.

”갑자기 저 사람이 왜 저러지..나도 잘 모르겠어요..” 자주 들었던 대화 내용입니다.


어느날 믿음이 멈춰버립니다.

타인의 표리 부동한 모습에 실망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이기적인 행태들, 자기 밖에 모르는 행동으로 인한 충격 입니다. 예수 믿어도 별 다른게 없다는 회의 입니다.


유혹에 멈춰 버림 입니다. 세상의 길이 더 좋아 샛길로 빠져 버린 성도들 입니다. 탐닉과 유혹 앞에 무너져 버린 겁니다.


자신감 상실로 인해 인내가 멈춰 버린 사람들 입니다.

끝까지 견뎌내야 하는 데 인내의 한계에 도달한 사람들 입니다. 더 이상 견딜 힘이 없다는 겁니다. 기다려 봤자. 지금보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신감 상실이 스스로를 믿는 마음이 약해진 결과 입니다.


영적, 육체적 탈진과 침체 입니다. 이젠 지쳤다는 겁니다. 봉사도 싫고 ,, 섬기는 것도 다 싫다는 겁니다.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된 상태 입니다. 더 이상 열정을 쏟아낼 힘이 없어 멈추게 된 것입니다. 이젠 좀 조용히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은둔의 생각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제대로 알지 못함으로 인한 비롯된 하나님께 실망한 멈춤 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축복이라고 믿었는데 , 축복은 커녕 끊임없는 실패의 연속앞에 서운함이 가득찼기 때문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삶의 고통 입니다. 갑작스런 진단 결과를 듣습니다. 경제적 파탄으로 의욕을 상실합니다. 사랑하는 이의 상실 등 큰 시련을 겪으면서 하나님이 왜 이렇게 힘드시게 하는 걸까? 나한테 무슨 억한 감정이라도 있는 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회의감과 영적 침체로 인한 멈춤 입니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못마땅한 눈에 의한 멈춤도 종종 있습니다.


이런 일 저런 일로 인해서 말씀이 멈춰 버립니다. 기도가 멈춰 버린 그리스도인 입니다. 이들의 증세는 마음의 문을 꼭 닫고 살아 갑니다. 교회나 사람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버립니다. 누가 좋은 이야기를 한다 할지라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 입니다. 어느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멈춰 버립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엄연히 살아계심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줄 상속 재산을 달라는 겁니다. 12절에 “..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 도저히 자식으로서 할 짓이 아닙니다.


정상적인 아들이라면 이렇게 해서는 안되는 겁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심에도 불구하고 상속재산을 달라고 하는 건.. 이 말에는 “아버지 나는 당신이 죽을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라는 뜻이 깔려 있습니다.


아들은 상속 재산을 챙겨 가지고 먼 나라로 떠나.. 갑니다. 여기 먼 나라 라는 표현입니다. 가족을 버리고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했다는 점입니다. 떠남은 상당히 공격적인 행동 입니다. 뒤 돌아 보지 않고 나의 길을 가겠다는 아들입니다.


인간의 “탕”이 아름다운 상태나 관계를 망치게 합니다. 탕은 영어로 prodigal 입니다. 의미는 무모하게 씀씀이가 헤픈, 남김 없이 다 써버리는 , 낭비하는 이라는 뜻 입니다.


탕이 부자의 관계를 끊게 했습니다. 탕이 자기를 낳아 준 부모에게 칼을 들이 되는 겁니다.


탕자의 생활을 보세요..다를 게 없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 합니다. 13절에 ..먼 나라에 가서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비로소 궁핍한지라 ..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가장 비참할 때에 정신 차리는 아들 입니다. 그를

정신차리게 만든 것도 바로 그 처절한 상실감 속에서 그제서야 깨달음을 얻습니다.“어쩌다 내가 여기까지 온 걸까”탕자는 깨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들의 생각이 바뀌어졌습니다. 


아버지께로 가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 놀라운 것은 처절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은 그 틈 사이로 들어 오십니다. 그리고

탕자는 뜻 밖의 생각이 머리속으로 강하게 밀려 옵니다. 돼지 우리 안에서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탕자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돌이킴이 시작 됩니다. 지금 자신이 길을 잃었음을 인식 합니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 합니다. 사람은 돌이킬때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정신차린 돌이킴은 빛을 향해서 나아가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진리와 아름다운 길로 눈뜨게 합니다.


복음으로 새로운 길로 가게 합니다.

첫째,탕자는 오늘이 힘들다고 내일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17절에 스스로 돌이켜.. 정신을 차리고…

탕자의 삶을 보면서 인생은 속도 보다 방향이 더 중요함을 깨닫게 합니다. 탕자는 인생의 목적을 속도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살아계신 아버지에게 뻔뻔하게 상속을 요구 했습니다. 


그러나 빠른 자기만의 속도는 성공이 아니라 처절한 실패였습니다. 철들은 아들이 성숙한 신앙을 고백 합니다. 눅 15:18-19절에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여기서 깨달음은 사람 보다 하나님을 먼저 보게 합니다. 내가 하늘과 … 아버지께 .. 죄를 지었사오니.. 순서를 보십시오…하나님 그리고 아버지께 죄를 지었다고 고백 합니다. 고난 후에 철들은 아들의 모습 입니다.


아버지에게로 다시 돌아가면 아버지가 반가이 맞아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강하게 밀려 옵니다. 탕자는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달려 갑니다. 결코 아버지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확고한 생각이 확고한 행동을 하게 합니다.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기 보다는 사랑과 긍휼이 넘치는 아버지를 생각하니까 집으로 귀향이 쉬워 집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멀리서 오는 모습을 보시고 신발도 신지 않은채 달려 갑니다. 아버지는 말합니다. 24절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느니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아들은 탕자 였지만 아버지는 탕부이심을 보여 줍니다. 아버지는 그를 벌하는 대신 기뻐하며 달려가 포옹하고 잔치를 베풀어 축하를 합니다. 반갑게 맞이하는 아버지 입니다. 아버지가 탕자를 향해 보여주는 놀라운 사실은 ”언제든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겁니다.“


종들에게 최고의 것으로 아들을 대접하라고 명령 합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집을 떠나 관계를 멈췄을때 많은 것을 갖고 떠났던 자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탕부 아버지는 엄청난 것으로 탕자에게 베푸십니다.


집 안에 또 다른 탕자인 형이 집나간 동생이 돌아와 송아지를 잡고 큰 잔치를 벌이는 아버지를 못 마땅해 합니다. 그런 큰아들이 입이 삐쭉 나와 있는 것을 보시고 큰 아들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눅 15:28-32에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아버지의 그 크기와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사랑을 탕진하는 아버지 마음” 앞에 우리를 멈춰 세웁니다. 탕부 아버지가 보여주시는 “…앞뒤 재지 않고 무모할 정도로 자녀에게 다 쏟아 부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 주십니다.”


둘째, 탕자의 귀향을 보면서 지금 자신이 멈춰진 것이 있다면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삶이 달라집니다.


탕자는 아버지로부터 엄청난 환영을 받습니다. 뭐 그동안 나가 있던 시간들을 통해서 대단을 일을 하고 돌아온 아들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이기적인 아들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향해 보여준 탕부 아버지의 모습속에서 영적 도전을 받기를 바랍니다.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탕자의 능동적인 역할의 전염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을 탕자의 모습으로 전환해 본다면 탕자가 찾은 삶은 공허했습니다. 그는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그는 회개하고 자신의 길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의미 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탕자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눅 15:22-23에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가 그에게 입히고 …먹고 잔치하라.하나님의 마음은 탕자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심니다. 탕자를 향해 야단을 치는 게 아니라 탕자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사랑이 끝이 없음을 기억하게 합니다.


탕자는 자기 의도 대로 아버지와의 관계를 멈추게 했습니다. 자기 딴엔 자기 의도 대로 살면 더 멋진 삶을 살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큰 오산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은 삶을 사는게 아니라 더 쪼그라드는 인생을 피하지 못합니다.


주님은 말씀 하십니다. 이전 것은 지나 갔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워졌다고 말씀 합니다.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새로운 인생길. 

탕자는 감사 하면서 새로운 삶을 꾸려 갑니다. 혼자가 아닌 아버지와 함께 말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부끄러워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봅니다. 


마귀는 그들의 머릿 속에 온갖 헛된 생각과 추측을 심어 놓습니다. “넌 이미 너무 멀리 왔어, 네가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하나님은 절대 나를 용서 하실 수

없어, 네 죄는 너무 커 내가 교회로 돌아가면 온갖 손가락질을 다 하겠지..


마귀가 주는 거짓말에 멈추게 해서 쉽게 넘어 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것들이 자신의

신앙을 멈추게 했다 할지라도, 항상 우리를 품에 다시 맞아 주십니다. 


고후 5;17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말씀 하십니다.


멈춰졌던 것들이 다시 회복될 때에 하나님만 이 주시는 안위가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주시는 진정한 평강이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공급해 주시는 참된 위로를 다시금 느끼면서 힘찬 믿음의 경주를 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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