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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3장 1-5절 말씀 묵상 [이영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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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경건의 능력

본문 : 디모데후서 3:1-5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 네가 돌아서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가르친 디모데 후서의 마지막 가르침은 말세에 이르러 라고 말하는데 사실은 바울 당시의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말세는 디모데가 처한 당시의 임박한 현실과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이어지는 교회 시대 전체의 두 가지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말세는 단순히 먼 미래의 어느 한 시점만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5절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바울은 말세의 고통하는 현상들을 나열한 직후 디모데에게 그들에게서 돌아서라고 명령합니다. 만약 말세가 수천 년 뒤에 일어날 미래의 일이라면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하는 디모데가 지금 당장 돌아서야 할 이유가 없었을 것 입니다.


바울이 전도하고  디모데가 목회하던 1세기 당시에 이미 교회 안에는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 성도들을 흔들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직면한 현재를 말세의 시작으로 진단한 것입니다.


신약 성경 전반을 흐르는 종말의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지구 종말의 날과는 다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초림 때부터 다시 오실 재림 때까지의 전 기간을 말세 혹은 마지막 때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바울이 말한 말세는 가까운 미래에 닥칠 어떤 날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 강림으로 이미 시작된 새로운 시대인 교회 시대를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그 종말의 성격과 고통의 밀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질수록 점진적으로 더 심해질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당시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에게는 예수님이 곧 오신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있었습니다.


만약 바울이 앞으로 2천 년 동안은 말세가 안 오니 안심하라고 했다면, 박해받던 초대교회 성도들은 믿음을 지킬 동력을 잃었을 것입니다


말세는 사도 바울과 디모데의 시대에 이미 시작(Already) 되었고,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는 그 종말의 징조들이 더욱 깊어지고 완성되어 가는 아직(Not Yet)의 과정에 있습니다. 

우리들은 Already 와 Not Yet 사이의 시기를 살아갑니다


2천 년 전  바울이 지적했던 문제들인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은 오늘에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있을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부지 불식간에 나에게도 이런 모습이 문득 문득 보입니다.  


로마서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내 속의 선한 법과 악한 법이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내면의 한계를 처절하게 깨달은 바울의 탄식입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이 악의 고리를 끊어낼 수 없다는 절대적인 항복 선언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평생 주를 위해 달려온 사도 바울이 노년에 자신을 향해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했습니다. 여태까지 믿음 생활을 잘해왔다고 자부하다가도, 문득문득 내 안에서 고개를 드는 죄성과 이기심을 마주할 때면 참으로 부끄럽고 곤고합니다. 


내가 죄인의 괴수임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주님 앞에 엎드릴 때, 나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일체 오래 참으심과 긍휼의 능력이 비로소 시작됩니다. 내 힘으로 서는 모양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만 일어서는 경건의 능력이 바로 이 탄식 속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겉으로 드러나는 종교적 형식, 직분, 예식, 번지르르한 말 등을 뜻하며, 능력은 삶을 변화시키고 죄를 이기게 하는 성령의 실제적인 능력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그리고 교회가 경건의 모양은 필사적으로 취하면서도 그 능력을 부인하게 되는 본질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1. 자아를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2. 모양을 갖추는 것이 훨씬 편하기 때문입니다

진짜 경건의 능력을 유지하는 데는 엄청난 영적 대가인 예배, 회개, 절제, 고난 감수등의 고난이 따릅니다.

3. 죄를 품은 채 면죄부로 삼고 싶기 때문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내가 저지르는 은밀한 죄를 은폐하기에 가장 좋은 도구가 됩니다 

4. 성령의 주권보다 자기 통제 를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경건의 능력은 인간의 의지나 수양이 아니라 성령의 지배로부터 나옵니다.


말세를 바라보며 사는 성도는 종교적 외형을 늘리는 자가 아니라, 내 삶의 통제권을 성령님께 넘겨드림으로 삶의 현장에서 복음의 실재를 증명해 내는 성도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바울이 주는 교훈은 경건의 모양이 아니라 실제적인 경건의 삶을 실천하여 경건의 능력을 보이라는 것 입니다.


경건의 길은 쉽지 않습니다.  좁은 길이지요.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이 좁은 길을 걸어오기를 기다기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의 남은 인생은 더 이상 세상에 낭비하기에 너무나 아까운 시간들입니다. 남은 인생, 오직 주님의 손에 붙들려 나를 살리고, 내 가정을 눈물로 지키며, 교회 공동체를 기도로 살려내는 진짜 경건의 능력을 구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함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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