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8장 2-4절 말씀 묵상 [민경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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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광야를 지나라!(1개요)(도약11)Pass through the Wilderness!
본문 : 신 8:2-4
여러분들은 황량한 광야에서 생활하기를 좋아하나요? 아니면 호화로운 궁궐에서 거주했으면 하나요? 모든 의식주가 풍성하고 호화로운 궁궐에서 살았으면 하시지요? 그런데 만약에 그 곳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오히려 하루하루의 삶이 불편하고 고달픈 광야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여러분은 어느 쪽을 선택하시렵니까?
성경에서 광야(Wilderness)는 물리적으로 척박한 황무지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되는 거룩한 훈련의 장소”를 뜻합니다. 즉 광야는 단순한 “저주와 고난의 장소”가 아닙니다. 광야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돌보시며 훈련하시는 곳입니다. 새로운 소망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반드시 거치게 하시는 축복의 통로이자 영적 도약의 공간입니다.
이 광야(Wilderness)(히, 미드바르(Midbar), , 271회)는 대부분 비가 오면 풀이 돋아나 양 떼를 먹일 수 있는 목초지로 변하는 '거친 들판'(255회)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생명이 아예 살 수 없는 모래사막(Desert)(13회)을 포함하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의 삶이 아무리 황량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가 내리면 언제든 생명이 살아나는 풍성한 땅으로 바뀔 수 있음을 상징합니다. 헬라어로는 “에레모스, ”로 wilderness 32, desert 13, desolate 4, solitary 1 도합 50회 사용되었습니다.
이 같은 광야는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부여해 줄까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오늘 첫번째 시간에는 광야에 대한 전반적 개요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부터 3회에 걸쳐 한 가지씩 보다 구체적으로 “광야”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첫째로 광야는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존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공급을 받는 겸비의 장소입니다
본문 3-4절 “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
4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척박한 광야는 물과 식량을 구할 수 없는 곳입니다.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추운 생존이 불가능한 곳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살 수 없는 광야에서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깨닫습니다. 겸비해집니다. 때문에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와 메추라기, 반석의 생수,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어가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와 공급을 체험하게 됩니다 (신 8:15-16).
2. 둘째로 광야는 시험을 통해 훈련받으며 정결케 하는 영적 성숙의 현장입니다
본문 2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광야는 마귀의 유혹이 있는 곳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불순종으로 인해 40년간 머물렀던 시련의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시련을 통해 자기 백성의 중심을 시험하셨습니다. 나아가 세상의 때를 벗겨내어 거룩하고 순결한 백성으로 빚어내셨습니다.
또한 성경의 위대한 지도자들은 모두 광야라는 영적 훈련소를 거쳐 하나님의 사역자로 세워졌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는 애굽의 왕궁에서 가졌던 자신의 힘과 학식을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에야 그는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석청을 먹으며 광야에서 지냈습니다. 그는 “회개하라” 외치며 예수님의 길을 예비했습니다. 그는 마지막 선지자로 쓰임받았습니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유대 광야에서 40일간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심으로 사역을 준비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1-11).
3. 마지막으로, 광야는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은혜의 처소입니다
본문 3절 후반 “...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광야는 세상의 소음과 유혹이 차단된 고요한 빈 들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잘 들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광야를 뜻하는 '미드바르(Midbar)'는 '말씀하다(다바르, Dabar)' 와 '장소'를 뜻하는 접두사 '밈(M)'이 결합된 단어입니다. 즉, 어원적으로도 광야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는 장소”라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광야는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에 온전히 귀 기울이는 곳입니다. 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영적 은혜의 처소입니다.
이방신을 숭배하는 왕비 이세벨을 피해 도망치며 탈진한 엘리야 선지자가 회복된 곳이 바로 네게브 광야의 로뎀나무 아래였습니다. 40주야를 걸어 도착한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엘리야는 세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명을 다시금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광야는 우리들을 낮추며 하나님의 도움을 받게 하기에 궁궐보다 오히려 월등하게 보호받으며 공급받는 안전한 요새입니다.
광야는 궁궐보다 우리의 심령을 보다 성숙케 하며 성장케 하는 훈련의 현장입니다.
광야는 편안한 궁궐보다 친밀하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게 하는 은혜의 처소입니다.
지난 메모리얼데이 주일 오후에 “신의 악단” 영화를 관람했었습니다. 그 영화 속에서 “광야를 지나며” 찬양을 접했습니다. 가사 중에 특히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 “성령이 내 영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소절들이 진한 감동으로 밀려왔었습니다. 그러다 CCM “광야를 지나며” 찬양을 찾아 접하고 따라 부르며 북받치는 은혜를 주체치 못해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가사를 음미하며 보다 깊은 신앙과 신앙 생활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 세상의 달콤한 유혹과 살벌한 핍박이 심한 말세지말에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보다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현재의 특별한 해답이 없는 것 같은, 답답한 현실을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지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또한 생활에 있어,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불만을 품고 불평하기 일쑤입니다. 그리고 힘들다고 주위와 하나님께 하소연하곤 합니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빨리 벗어나길 원합니다. 제거해달라고 간구하곤 합니다. 사실은 오히려 고난 가운데 얻는 여러 많은 유익들이 있음에도요. 그렇습니다. 때문에 광야를 지나며 우리는 오히려 장애들을 받아들이되 그를 극복할 힘과 지혜와 인내를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진정한 삶의 유익이 오히려 고난을 통과함으로 얻어짐을 발견하는 우리 모두 되시길 기도합니다.
이제부터 우리 모두 광야의 삶을 과거처럼 불평하며 피하려 발을 동동 구르며 애쓰지 마십시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의 현장인 광야를 지나시길 간구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에 대해 절대적으로 의존하며 하나님의 놀라운 공급을 받게 되길 축원합니다.
시험을 통해 정결케 되고 훈련을 통해 영적 성숙의 축복이 있게 되길 또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보다 깊이 교제하며 동행하는 놀라운 은총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