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9장 1-10절 말씀 묵상 [김동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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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수를 만나면 변화가 일어나요
본문:누가복음 19:1-10
변화 라는 단어는 달라졌다는 의미입니다. 두 가지 변화가 있습니다. 좋았다가 나빠지는 변화입니다. 나빴다가 좋아지는 변화 입니다. 굳이 또 하나의 변화를 둔다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아무런 변화가 없는 돌부처 같은 사람 입니다.
변화는 자극에 영향을 받습니다. 자극에 충격을 받습니다. 자극으로 인해 더 패망 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발전의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자신이 변화 됨으로 주변 사람을 긴장하게 합니다. 놀라게 합니다.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
오늘 본문은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말씀 입니다. 삭개오의 삶을 한 마디로 표현해 본다면 “ 변화” change , transformation 입니다.
달라졌다는 겁니다.
삭개오의 변화는 형식적인 변화가 아니라, 전인격적인 변화 입니다. 변화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웃음 입니다. 사실 삭개오의 변화는 웃음을 상실했던 자가 웃음을 회복하는 변화 입니다. 예수 믿으면서 느끼는 강렬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웃음 입니다. 기쁨 입니다.성령의 열매에도 웃음 기쁨을 강조 합니다. 바울도 항상 기뻐하라 .. ,
세상으로 볼 때는 삭개오의 집에는 웃게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돈 많죠.. 권력에 바싹 달라 붙어서 권력을 누리죠.. 말 한마디 하면 척척 순종하는 하인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에게서 웃음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실 삭개오는 어렸을적부터 웃음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신체적 약점인 키가 작아 늘 주변 사람들에게 조롱거리였습니다. 삭개오는 아버지 나 하나님께 늘 화를 내고 ..
왜 나를 요모양 요꼴로 만들었나요? 무시 당하고 업신여김을 받으며 살아온 것이 큰 아픔 입니다. 삭개오의 내면은 어렸을적부터 쓴뿌리로 가득차 있습니다.
성장해 가면서 삐뚤어진 야망을 갖습니다. 그것은 자신과 이웃에게 유익을 주는 야망이 아닙니다. 당한 만큼 반드시 갚겠다는 복수의 야망 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악한 생각을 가지면 악한 것들이 눈에 보입니다.
자기 야망을 위해 살다 보니까 남의 인생까지 방해 합니다. 남들을 못살게 굴면서 자신이 당한 것을 보상 받으려고 합니다.
세상과 결탁하여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악랄한 역할, 함부로 쳐다 보지도 못하게 만드는 위치에 서야만이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는 당시 로마 식민지 상황에서 세리장이 된 것입니다.
비뚤어진 생각이 가져다 주는 결과는 행복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그는 돈도 많고 권력도 있습니다. 그런데 없는 게 하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필요한 것은 없고 덜 필요한 것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요즘도 삭개오 같은 사람 많아요.. 자신이 당한 것을 갚겠다는 복수의 야망이주변사람들까지 힘들게 합니다.
왜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요?
다른 것 없습니다. 영적으로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죽어 있다는 것은 감각을 상실했다는증거 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을때에 하나님과 소통이 가능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묵상 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신을 봅니다. ..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합니다. 지금 나의 처지가 어렵고 힘들다 할지라도 하나님 관점에서 나를 바라 봅니다.
..
나는 연약하지만 나의 하나님은 강하심을 확신 합니다.
그러면 웃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죽어 있으니까. 웃음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삽니다. 다른 곳에서 웃음을 찾으려고 눈의 시선이 세상을 향하게 됩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당시 로마 식민지에서 로마 정부에 손을 내밀면 자신이 꿈꾸는 것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소유가 풍부하면 웃을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합니다.
돈냄세만 풍기는 가정 안에는 웃음은 거리가 멉니다.
삭개오의 일상을 보면 돈냄세만 좇아 다닙니다.세리장이라는 직책을 이용해 공갈과 부당한 세금 징수를 통해 특권을누림니다.
조금이라도 세금이 밀리거나 제때 수납되지 않으면 협박 합니다.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고통의 구렁텅이로 몰아갑니다.
같은 유대인으로서 웃음은 없고 얼굴에 살기가 등등 할 뿐입니다. 삭개오의 습관화된 삶에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웃음 소리가 삭개오 집까지 들려 옵니다. 누구의 집에서 들려오는 웃음 소리일까? 알고 보니까 같은 동료인 마태의 집에서 새어 나오는 행복한 웃음 소리 입니다.
세리로서 세리의 같은 심정인 것을 아는 삭개오 입장에서는 궁금합니다. 무엇이 마태를 저렇게 행복한 웃음을 만끽하게 만들었을까?
삭개오의 입장에서는 궁금해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 비결이 뭘까?
답을 얻습니다.
마태가 예수님을 만났다는 겁니다.
삭개오는 예수라는 사람에 대해서 소문을 들어 본 적은 있습니다. 그러던 차에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오신다는 말을 듣고 용기를 냅니다. 그리고 예수가 계신 곳을 향해 전력질주를 합니다.
늘 돈에 집착하던 자 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돈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어느 누구도 그를 가로 막을자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야겠다는 거룩한 열정
수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어서 예수님을 만날 수 가 없습니다. 이쯤 되면 포기하고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오히려 놀랍게도 예수를 만나야 겠다는 강한 열정이 뽕나무가 눈에 들어 옵니다.
삭개오는 멋진 옷을 입은 채 나무에 올라 갑니다. 자신을 증오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상처를 준 모든 사람들 앞에서 말입니다.
그가 나무에 올라가는 모습이 그다지 우아하거나 능숙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스꽝스러워 보였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은근히 그를 비웃었을 것입니다.
내가 누군데.. 사람들이 나를 놀리지는 않을까 하는 체면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만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예수님을 끌어 당기는 영적 자석이 되어 버립니다.
삭개오는 왜 바보 같은 행동을 했을까요?
그는 우리 모두가 묻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 같은 인간을 돌보실까!
예수님께서 가시다가 뽕나무에 걸터 앉아 있는 삭개오를 보십니다. 예수님은 그를 나무위에 그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삭개오를 비웃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나아가 그에게 다가가 말씀 하십니다.
“삭개오야 어서 속히 내려오너라.. 내가 오늘 너희 집에 유하여야겠다” 고 말씀 합니다.
아무도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름을 불러주는 친밀감을 보여 줍니다. 자신의 이름이 예수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습니다.
그 순간에 삭개오는 정말 놀랐을 것입니다. 나의 이름을 아시다니… 내가 누군가를 부를때는 온갖 욕과 비난을 동반했습니다. 악랄하고 잔인한 자신을 향해 불러 주시는 이름은 너무나 친밀감이 넘쳤습니다.
세상이 보는 눈과 다른 주님의 눈세상 사람들은 삭개오를 향해 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주님은 가장 자비가 필요한 죄인인 삭개오를 향해 아낌없이 배푸십니다.
삭개오의 재빠른 결단과 행동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였다고 말씀 합니다. 삭개오는 기쁨으로 예수님을 영접 합니다. 삭개오가 이렇게 기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그는 예수님을 그토록 기쁘게 영접했을까요? 예수님께서 용서를 가지고 그 집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변화의 시작은 예수님을 만날 때만 가능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삭개오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세상에서도 귀인을 만나, 변화되었다는 말도 듣습니다. 유명한 지인의 말을 듣고 달라졌다는 말을 듣곤 합니다. 이런 변화의 시작은 인성의 변화, 성품의 변화에만 머물 뿐 입니다.
예수를 만날때에 일어나는 변화는 분명 다릅니다. 인성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온전한 변화를 의미 합니다. 구원 받은 자로서의 변화 입니다. 바로 회개 입니다. 바로 용서 받을 수 없다고 모두가 손가락질 하는 죄인 삭개오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눈” 입니다 .
용서해 주심을 확신하니까? 삭개오가 보인 반응 입니다. 바로 회개 입니다. 엄청난 고백을 합니다.
“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라고 고백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누가 먼저 말하기 전에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스스로 자백 합니다. ..가난한 자들을 착취 했다고 고백 합니다. 남을 속여 빼앗는 데 익숙했음을 자백합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 입니다.
고백하는 자에게 주시는 주님의 위로입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임하였다 고 주님께서 말씀 하십니다.
구원은 영원한 행복을 뜻 합니다. 예수와 연결된 삭개오에게 전혀 다른 삶이 시작 됩니다. 돈으로만 살던 시대와는 너무나 다른 삶을 만끽하며 삽니다. 함께 식사를 나누는
삭개오는 흉금을 터놓고 나누면서 웃음꽃이 만발 합니다. 기쁨은 단순히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기쁨은 예수님을 만날때에 가능 합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굉장히 단순 합니다. 일회성에 불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영원 합니다 .
예수님을 만나면 옳지 않고 굳어있는 것들이 제대로된 방향으로 나가게 합니다.
움켜 잡던 손을 펼쳐 필요한 곳으로 나눠 줍니다.예수 없이 살던 자가 예수 안에 있게 되면서 보여주는 삶이 바로 사랑입니다.
삭개오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돈이었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나눠 주고, 토색한 자가 있으면 네 배로 갚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사랑은 숨길 수 없습니다. 사랑은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것을 나누는 겁니다.
삭개오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것을 나눠 줍니다. 그것이 바로 이웃 사랑입니다.
이런 태도가 가능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은혜는 자신을 정확하게 진단하게
합니다 . 은혜는 비뚤어진 것을 펴게 합니다.
좋은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는 삭개오의 인생 후반전
부자에서 가난한 삭개오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전과 다른 영적 감정이 충만합니다.
삭개오의 얼굴에서 웃음이 만발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토색한 사람들을 찾아 다니면서 만들어 가는 행복함.. 결코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기쁨들이 샘물처럼 솟아오릅니다.
내 것의 소유가 점점 비워져 가는 것을 눈으로 선명하게 확인합니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삶은 더 보람을 느낌니다. 이제까지 이런 행복한 적이 없었던 삭개오입니다.
지금까지 나 밖에 모르고 살아왔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영접 한 후에 달라진 삶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외모와 환경에 짓눌려..그것을 다른 것으로 해소하려고 했던
어리석음이 주마등처럼 지나 갑니다.
이제 온전히 회복된 삭개오의 발걸음은 가볍습니다.
삭개오는 웃는 얼굴로 가난한 자를 찾아갑니다. 토색한 자를 찾아갑니다. 이전에 보여주었던 사악하고 악랄한 삭개오가 아닙니다. 삭개오가 그냥 돈만 훌쩍 던져주고 그 집을 빠져 나왔을까요? 진정으로 다가가 미안함을 보입니다. 제가 그동안 너무 나빴죠..
너무 힘들게 했죠.. 하면서 달래 주기도 했을 것입니다.
찾아 다니면서 실제적인 삶의 모습을 봅니다. 어딘가 모르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을까 하는 공감하는 마음 입니다.
구원을 받은 삭개오는 기쁨으로 충만하여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소유가 점차적으로 줄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웃음이 만발 합니다.
삭개오를 보면서 진정한 행복이란? 상대방에 상관없이 내가 행복해지는 것임을 알게합니다.
삭개오는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의 놀림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도 반항적인 태도로 세상으로 관심을 돌렸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인생이 수십년 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후에 삭개오는 진짜 행복은 상대방과 상관없이 내가 행복해 지는 것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삭개오처럼 웃음을 잃어버린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요?
웃음을 잃어버린 사람들.. 그리스도를 떠나 있는 사람들, 즉 다른데서 기쁨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삶입니다.
중요한 문제는 웃음을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듣습니다. 웃을 일이 있어야 웃죠.. 삶이 너무 빡빡하다는 겁니다. 웃고 싶어도 웃을 건덕지들이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돈으로, 명예로, 권력으로.. 육체적 누림으로..
”
예수님께서 가시다가 뽕나무에 걸터 앉아 있는 삭개오를 보십니다. 예수님은 그를 나무 위에 그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삭개오를 비웃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나아가 그에게 다가가 말씀 하십니다.
“삭개오야 어서 속히 내려오너라.. 내가 오늘 너희 집에 유하여야겠다” 고 말씀 합니다.
아무도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름을 불러주는 친밀감을 보여 줍니다. 자신의 이름이 예수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습니다.
그 순간에 삭개오는 정말 놀랐을 것입니다. 나의 이름을 아시다니… 내가 누군가를 부를때는 온갖 욕과 비난을 동반했습니다. 악랄하고 잔인한 자신을 향해 불러 주시는이름은 너무나 친밀감이 넘쳤습니다.
세상이 보는 눈과 다른 주님의 눈세상 사람들은 삭개오를 향해 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주님은 가장 자비가 필요한 죄인인 삭개오를 향해 아낌없이 배푸십니다.
삭개오의 재빠른 결단과 행동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였다고 말씀 합니다. 삭개오는 기쁨으로 예수님을 영접 합니다. 삭개오가 이렇게 기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그는 예수님을
그토록 기쁘게 영접했을까요? 예수님께서 용서를 가지고 그 집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변화의 시작은 예수님을 만날 때만 가능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삭개오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세상에서도 귀인을 만나, 변화되었다는 말도 듣습니다. 유명한 지인의 말을 듣고 달라졌다는 말을 듣곤 합니다. 이런 변화의 시작은 인성의 변화, 성품의 변화에만 머물 뿐 입니다.
예수를 만날때에 일어나는 변화는 분명 다릅니다. 인성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온전한 변화를 의미 합니다. 구원 받은 자로서의 변화 입니다. 바로 회개 입니다. 바로 용서 받을 수 없다고 모두가 손가락질 하는 죄인 삭개오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눈” 입니다 .
용서해 주심을 확신하니까? 삭개오가 보인 반응 입니다. 바로 회개 입니다.ㅡ엄청난 고백을 합니다.
“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라고 고백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누가 먼저 말하기 전에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스스로 자백합니다. ..가난한 자들을 착취 했다고 고백 합니다. 남을 속여 빼앗는 데 익숙했음을 자백합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 입니다.
고백하는 자에게 주시는 주님의 위로입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임하였다 고 주님께서 말씀 하십니다.
구원은 영원한 행복을 뜻 합니다. 예수와 연결된 삭개오에게 전혀 다른 삶이 시작 됩니다.
돈으로만 살던 시대와는 너무나 다른 삶을 만끽하며 삽니다. 함께 식사를 나누는 삭개오는 흉금을 터놓고 나누면서 웃음꽃이 만발 합니다.
기쁨은 단순히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기쁨은 예수님을 만날때에 가능 합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굉장히 단순 합니다. 일회성에 불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영원 합니다 .
예수님을 만나면 옳지 않고 굳어있는 것들이 제대로된 방향으로 나가게 합니다.
움켜 잡던 손을 펼쳐 필요한 곳으로 나눠 줍니다.예수 없이 살던 자가 예수 안에 있게 되면서 보여주는 삶이 바로 사랑입니다.
삭개오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돈이었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나눠 주고, 토색한 자가 있으면 네 배로 갚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사랑은 숨길 수 없습니다. 사랑은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것을 나누는 겁니다.
삭개오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것을 나눠 줍니다. 그것이 바로 이웃사랑입니다.
이런 태도가 가능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은혜는 자신을 정확하게 진단하게 합니다 . 은혜는 비뚤어진 것을 펴게 합니다.
좋은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는 삭개오의 인생 후반전
부자에서 가난한 삭개오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전과 다른 영적 감정이 충만합니다.
삭개오의 얼굴에서 웃음이 만발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토색한 사람들을 찾아 다니면서 만들어 가는 행복함.. 결코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기쁨들이 샘물처럼 솟아 오릅니다.
내 것의 소유가 점점 비워져 가는 것을 눈으로 선명하게 확인합니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삶은 더 보람을 느낌니다. 이제까지 이런 행복한 적이 없었던 삭개오입니다.
지금까지 나 밖에 모르고 살아왔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영접 한 후에 달라진 삶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외모와 환경에 짓눌려..그것을 다른 것으로 해소하려고 했던
어리석음이 주마등처럼 지나 갑니다.
이제 온전히 회복된 삭개오의 발걸음은 가볍습니다.
삭개오는 웃는 얼굴로 가난한 자를 찾아갑니다. 토색한 자를 찾아갑니다. 이전에 보여주었던 사악하고 악랄한 삭개오가 아닙니다. 삭개오가 그냥 돈만 훌쩍 던져주고 그 집을 빠져 나왔을까요? 진정으로 다가가 미안함을 보입니다. 제가 그동안 너무 나빴죠..
너무 힘들게 했죠.. 하면서 달래 주기도 했을 것입니다.
찾아 다니면서 실제적인 삶의 모습을 봅니다. 어딘가 모르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을까 하는 공감하는 마음 입니다.
구원을 받은 삭개오는 기쁨으로 충만하여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소유가점차적으로 줄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웃음이 만발 합니다.
삭개오를 보면서 진정한 행복이란? 상대방에 상관없이 내가 행복해지는 것임을 알게 합니다.
삭개오는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의 놀림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도 반항적인 태도로 세상으로 관심을 돌렸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인생이 수십년 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후에 삭개오는 진짜 행복은 상대방과 상관없이 내가 행복해 지는 것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삭개오처럼 웃음을 잃어버린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요? 웃음을 잃어버린 사람들.. 그리스도를 떠나 있는 사람들, 즉 다른데서 기쁨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삶입니다.
중요한 문제는 웃음을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듣습니다. 웃을 일이 있어야 웃죠.. 삶이 너무 빡빡하다는 겁니다. 웃고 싶어도 웃을 건덕지들이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돈으로, 명예로, 권력으로.. 육체적 누림으로..
이것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죄악에 빠져 버린 인생들 입니다.
삭개오, 사울, 십자가에 달린 강도들.. 공통점은 소위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분명한 것은 어떤 사람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 모두는 길을잃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3:6에 “우리가 다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고 있도다” 라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길을 잃어버린 자를 찾아오시는 예수님
누가복음 19: 10 에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누가는 잃어버린 자들의 삶을 소개 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길을 잃어버렸던 사람들의 삶을 소개 합니다.
삭개오를 향해 주신 말씀은 분명 합니다. 죄인의 인생이었지만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웃음을 상실한 인간에게 웃음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혹시 지금 나무 위에 올라가 앉아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계시는 분은 없는지요..
예수님은 여러분을 보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발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뽕나무에 앉아 있는 삭개오를 보셨던 것처럼 여러분을 보고 계십니다.
아무도 삭개오를 보지 못했을 때에 예수님을 그를 보셨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나무 위에 있는 이유가 무엇이든 예수님은 그 모든 이유를 알고 계십니다.
지금 나의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에 기쁨으로 영접할 수 있기를 기대 합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길을 점점 잃어가고 있음을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당신을 찾고 계십니다. 인자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귀한 분이 오늘 당신에게로 다가오고 계십니다. 그 분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이루어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시는 주님의 종들이 되시길 축복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