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4장 13-20절 말씀 묵상 [김동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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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얽매이지 않는 토양
본문 : 마가복음 4:13-20
2026년 장로교 언더우드와 감리교 아펜젤러가 조선 땅에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고 순종한지 141주년이 되는 해 입니다.
두 분의 선교사님들이 조선 땅에 부르심을 받고 간다고 했을때에.. 모두가 말렸다고 합니다. 갈테면 가라.. 우린 후원도 없다..삶의 그물에 발이 걸려 넘어지게 합니다.
얼마나 염려가 될까요.. 낯선 땅에 가서 복음 전하는 일이 중요 합니다. 하지만 후원도 없고, 생계가 막막하면 부르심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결코 하나님의 부르심에 염려나 근심으로 얽매이는 토양이 아닙니다. 말씀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 오히려 들은 말씀으로 환경을 극복 합니다. 이들의 헌신적인 복음 전파는 조선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조선이 복음으로 계몽이 되고, 영안이 열리기 시작 했습니다. 복음이 삶을 새롭게 합니다. 말씀이 환경에 주눅들게 하기 보다는 생기를 불어 넣습니다.
복음을 위해 인생을 불태우는 선교사님들의 삶..그냥 될 수 있는게 아닙니다. 삶은 그냥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두 선교사님들은 내 옆에서 죽어가고
있는 상한 심령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가장 멋진 인생임을 확신 했습니다.
선교사님의 마음을 흔들리지 않게 했던 비결은 끝까지 말씀을 품고 한 걸음 한걸음 전진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네 가지 토양을 말씀 합니다.
네 가지 토양 중에 세 가지가 있습니다. 세 가지 씨앗은 평생가도 열매라는 걸 맺어 보지 못합니다. 맺고 싶어 시작하지만 또 꺾입니다. 씨앗이 땅에 뿌리 박지 못하도록 방해를 받습니다.
나는 어떤 토양의 소유자인가? 한 번 묵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첫째, 말씀은 듣지만 너무나 무기력해져서 세상에 얽매이는 토양이 되어 버립니다
예수님께서 네가지 유형의 토양에 대한 비유를 해 주셨습니다. 네 가지 토양에 공통적인 것은 말씀이란 씨앗 입니다. 다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세 가지 토양은 허무하게 씨앗이 사라 집니다. 길가나 가시떨기나 돌짝밭 같은 경우에는 재물에 대한 염려, 가시와 잡초에 대한 두려움, 겁먹음 으로 인해서 씨가 자라나지 못합니다.말씀이 세상의 것에 패배 당합니다.
복음의 씨앗이 얽매이는 토양으로 인해 자라지 못하게 합니다. 세상의 견고한 진들이 싹을 틔우고 자랄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 가시와 잡초로 덮인 “얽매이는 토양” 이 되어 버립니다. 얽매이게 하는 것들을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12:1에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사람마다 얽매이게 하는 것들이 다릅니다. 얽매이는 것에 질질끌려 다니다 보니까. 씨앗인 말씀이 자라지 못합니다.
세 가지 토양은 뭔가 말씀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없습니다 . 쉽게 세상의 것들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집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확신이 사라져 버렸다는 겁니다.
성경은 눅 8;14에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쾌락에 질식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느니라” 고 말씀 합니다.
세상의 것에 얽매여 살다가 영혼도 희망없게 만드는 자신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둘째, 말씀을 듣고 품는 자가 되라. 그러면 세상을 이길 수 있다.
20절에 보면 말씀을 들고 품는 자가 되라 그러면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 합니다. 말씀만이 당신을 살려 낼 수 있습니다.
품는 다는 것은 내가 죽는 겁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음으로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도록 자리를 내어 주는 겁니다.
어떻게 말씀을 품고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을까?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앞에 날마다 서는 겁니다. 그 분의 임재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 나를 영적 조율 하는 겁니다.
성막으로 표현해 본다면 바로 지성소 예배 입니다 .영적 예배 입니다 지성소는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만 계신 곳입니다. 오직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있습니다 .말씀이 있습니다.출 25:22에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말씀을 듣는 시간 입니다.
날마다 우리를 깨우시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겁니다.
막 4:24절에 너희가 듣는 것을 주의하라..그 공간에서 죄사함이 이루어진다. 그 자리에서 은혜가 베풀어집니다. ” 은혜의 체험”이 이루어지는 자리이다. “죄 용서 체험”이 이루어 집니다.
속죄소”는 히브리 말로 “카포레트“ 라 한다.
“덮는다”는 뜻이다. 덮이면 치유된다. 덮이면
회복된다. 지성소 예배는 하나님으로 덮이는 시간이다. 따뜻함이 있다. 회복이 있다. 치유가 있다.
그분 앞에 집중하라, 갈망하고 몰두하라!”날마다 말씀으로 나를 조율하라.. 새 힘을 얻습니다. 말씀 대로 움직 입니다.
말씀을 품고 사는 자.. 고통이 뒤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을 기뻐하는 겁니다. 고통에도 불구하고 인내로써 당한 경주를 달려 가는 겁니다 .
얽매이기 하는 것에 쉽게 지는 자가 아니라, 인내로서 경주해 가는 삶입니다. 인내가 내 힘으로 하려면 불가능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에 근거하면 인내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 말씀의 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염려하지 않습니다. 담대 합니다 .하나님의 손길,, 따뜻한 손길이 내 삶을 인도해 주실 것을 믿는 겁니다.
내 삶을
실패 없이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굳게 믿는 겁니다. 다윗이 사울왕에게 쫓기는 신세였습니다. 다윗은 성소에 들어갑니다. 들어갈때는 지치고 헐벗고 불안 했습니다. 하지만 성소를 빠져 나갈때는 충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떡 말씀을 먹고 충만해서 다시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마지막, 얽매이지 않는 토양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으라.
20절에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결실을 맺느니라..
삽십 배 육십 배 백배의 결실을 맺느니라.. 사람은 이런 속도를 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속도 입니다.
말씀이 방향이 되게하라. 오직 예수 방향으로만 나아가라. 그러면 하나님이 가속도를 내게 하실 것입니다.
방향만 잡고 일관된 삶을 사십시오..
올바른 방향에 서 있으면 하나님이 붙잡고 속도를 내게 하십니다.
방향에서 이탈하지 않는 비결은 주의 말씀을 듣는 것을 주의 하면 됩니다. 또한 방향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환경에 좌지우지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성경을 읽어 보면 환경에 무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믿음으로 환경을 극복해 가는 사람입니다.방향이 잘못된 헌신은 소용없다
예수님은 자신과 같은 방향으로 같은 길을 걷는 자를 찾고 계신다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내 방향대로가 아닌 예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가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가는 자신.
예수가 방향입니다 .. 헛된 것에 얽매여 예수 방향에서 이탈되지 말아야 합니다.
속도는 하나님이 만들어 주십니다. 내가 속도를 내려고 하니까 잡음이 생김니다. 불평이 생겨 납니다.
오직 예수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복음을 유통하는 자로 살아가자
요셉의 삶이 왜 중요 합니까? 복이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요셉이 노예로 잡혀가 삽니다. 거친 토양 입니다. 그 속에서 요셉은 하나님이 형통케 하심으로 많은 주변 사람들을 복 있는 삶을 살도록 했습니다.
요셉의 경우는 아브람이나 야곱이나 모세의 경우와는 다릅니다. 앞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길을 제시 합니다. 도움의 손길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단 한 번도 요셉 앞에 나타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에게는 현장 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 입니다.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셨다고 말씀 하십니다. 요셉에게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은 함께 하셨고 형통케 하셨다고 말씀 합니다.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시 80:1) 양떼 같이.. 요셉의 옷 패션을 통해서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입혀 주는 채색옷, 노예로 잡혀가 입혀진 누더기 옷, 죄수의 옷, 세마포 옷—토양에 영향을 줍니다.
얽매이게 하는 토양으로 끌고 갑니다. 수동형 능동형..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만들어지는 형통 입니다. 어떤 옷이 입혀 진다 할지라도 얽매이지 않고 내면에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 합니다.
요셉이 어떤 옷을 입을 때마다 하나님이 개입하십니다. 도우십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옷을 입고 계시나요? 지금 입고 있는 옷이 하나님이 입혀 주신 옷임을 확신한다면 그 옷을 당당히 두를 수 있을 것입니다.요셉의 방향은 하나님이 속도를 내십니다.
노예에서 총무로 총무에서 국무총리로 속도를 내십니다. 하나님이 속도를 내시는 데 막을자가 없다.
하나님은 요셉이 어떤 옷을 입고 있다 할지라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형통케 하셨습니다.
형통이라는 말의 히브리적 의미로 “뚫고 나가는
힘” 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이 “너는 지금을 이겨낼 수 있다” 는 확신을 줍니다.
예수님은 자신과 같은 방향으로 같은 길을 걷는 자를 찾고 계신다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내 방향대로가 아닌 예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가라!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세상에 얽매인 자가 아닙니다. 철저하게 말씀과 기도로 무장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철저하게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 가는 삶입니다. 십자가 삶의 끝은 죽음 입니다. 나는 죽었다 는 심정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삶입니다. 이런 삶은 패배자의 삶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얽매이는 토양의 라이프가 아니라,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토양..복음을 생산하는 성도가 되시길 축복 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