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에스더 4장 16절 말씀 묵상 [김연희 목사]

작성자 정보

  • 복음뉴스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제목 : ‘성도/두 조서 사이에서 살아가는 남은 자’

본문 : 에스더 4: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에스더서를 읽다 보면 서로 충돌하는 두 종류의 조서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죽음의 조서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의 조서입니다. 그런데 이 두 조서는 우연히 등장한 것이 아닙니다. 그 시작에는 한 사람의 믿음의 절개가 있었습니다. 바로 모르드개의 신앙 때문입니다.


   성경은 모르드개를 “왕궁 문에 앉아 있던 유다인”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증조부 때 바벨론 포로로 끌려온 유다 가문의 후손으로, 이후 이방 땅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모르드개는 페르시아 왕궁에서 일정한 직무를 맡아 왕궁의 일을 살피던 사람이었지만, 세상의 권세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았던 남은 자였습니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은 아각 사람 하만을 높여 모든 신하가 그에게 꿇어 절하게 했습니다. 왕의 명령이 내려지자 왕궁의 모든 사람들은 하만 앞에 머리를 숙였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절하지 않았습니다.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에 3:2)


   이것은 단순한 자존심이나 개인 감정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존재를 절대적인 권세로 섬길 수 없다는 언약 백성의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세상의 권세보다 하나님의 언약을 더 두려워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믿음의 절개 때문에 전쟁이 시작됩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2인자인 하만은 자신에게 절하지 않는 모르드개에게 크게 분노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르드개 한 사람만 죽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모르드개가 속한 유다 민족 전체를 멸망시키려 했습니다. 결국 하만은 왕에게 은 일만 달란트를 바치겠다고 제안하며, 페르시아 제국 안에 흩어져 살고 있던 모든 유다 민족을 아달월 십삼일, 곧 12월 13일 하루 동안 죽이라는 첫 번째 조서를 정월 십삼일, 곧 1월 13일에 왕으로부터 받아 냅니다. “모든 유다인을 젊은 자나 늙은 자나 어린 아이나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멸하고 진멸하라”(에 3:13)


   이것은 죽음의 조서였습니다. 왕의 이름과 인장이 찍힌 공식 명령이었습니다. 유다 민족은 아직 죽임을 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죽음이 선고된 백성처럼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들은 죽음의 조서 아래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모르드개는 사촌동생이자 왕비였던 에스더를 설득합니다. 처음에는 두려워하던 에스더도 금식하며 왕 앞에 나아가고, 자신이 속한 민족을 멸하려 했던 하만의 음모를 왕 앞에서 고발합니다.


    그 과정 속에는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섭리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왕은 잠이 오지 않았고, 역대 일기를 읽다가 모르드개가 과거 자신의 생명을 지켜 주었던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에 6:1–3). 하나님은 왕의 잠 못 이루는 밤까지도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섭리의 도구로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결국 하만은 자신이 준비한 장대에 처형당하게 되고, 모르드개는 오히려 하만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왕은 시완월 이십삼일, 곧 3월 23일에 새로운 조서를 내리게 합니다(에 8:9).


   그런데 놀라운 것은 두 번째 조서의 내용이 이전 하만의 조서와 정반대였다는 사실입니다. 이전 조서가 유다 민족을 멸하라는 죽음의 조서였다면, 새로운 조서는 유다인들이 함께 모여 자기 생명을 보호하며 자신들의 대적과 싸우라는 생명의 조서였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두 조서의 시행 날짜가 같았다는 것입니다. 유다 민족을 멸하기로 정해졌던 바로 그 날, 아달월 십삼일 곧 12월 13일에 이제는 유다인들이 자신들의 대적을 치게 된 것입니다.


   같은 날 시행되는 두 조서. 그러나 그 내용은 정반대였습니다. 하나는 죽음을 선포했고, 다른 하나는 생명을 선포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영적 원리를 보게 됩니다. 세상은 언제나 남은 자의 신앙을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타협하지 않는 믿음, 하나님 편에 서는 믿음의 절개는 결국 영적 충돌을 일으킵니다.


   오늘도 세상은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신앙 대신 적당한 타협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모르드개처럼 하나님 외에 어떤 권세 앞에도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성도의 신앙입니다.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계 14:4)


   그렇습니다. 성도는 두 조서가 충돌하는 세상 속에 살아갑니다. 세상은 여전히 정죄와 두려움의 조서를 말합니다. “믿음으로 살아도 소용없다.” “결국 악이 이긴다.”“교회는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미 생명의 조서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십자가와 부활은 죄와 사망의 조서를 깨뜨린 생명의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영적 전쟁은 승리를 얻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이미 승리하신 주님의 승리를 따라 살아가는 믿음의 행진입니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았던 칠천 명처럼(왕상 19:18), 성도는 죽음의 조서가 울려 퍼지는 세상 속에서도 끝까지 생명의 조서를 붙드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권세보다 하나님의 언약을 더 두려워하며 믿음의 절개를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흔들리고 타협하고 싶어지는 순간, 말씀이 다시 우리를 붙듭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


   이것은 단순한 결단이 아닙니다. 자기를 비우고 하나님의 뜻 앞에 자신을 드리는 남은 자의 믿음입니다. 결국 믿음이란 세상의 죽음의 조서보다 하나님의 생명의 조서를 더 붙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그 남은 자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어 가고 계십니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1,560 / 1 페이지
번호
제 목
이름

최신글 모음


새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