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3장 5절 말씀 묵상 [한삼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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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경건의 능력(power)을 더욱 바라면서
본문: 디모데후서 3장 5절,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견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경건의 능력(power)이 없다 혹은 경건의 능력을 부정한다(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경건이란 말의 본래 의미는 godliness=‘하나님과 같다, 하나님을 닮음’이라는 뜻이다. 솔직히 말해서 어떻게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같을 수/닮을 수 있겠는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 하면 떠오르는 그분의 속성은 ‘사랑과 긍휼하심이 많으시다, 오래 참으신다, 전능하시다, 전지하시다…’ 이런 속성을 죄인인 내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겠나?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의 생애(33년)를 신자에게 허락하셔서 경건의 능력(power)의 모델로 삼을 뿐만 아니라, 경건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셨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으로 보내시어 그의 생애를 살펴보면서 믿고 따르는 자들이 경건의 모델과 경건의 능력(power)을 체험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crucified) 장사 지낸 바(buried) 되셨고 다시 살아나셨다(resurrected). 이제 믿고 따르는 자에게도 이것이 그대로 적용된다. 이것이 바로 경건의 능력(power)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나도(나의 옛 자아=죄의 본성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 즉 내게서 장사 지낸 것이란 죄에 종 노릇하지 아니하는 것, 곧 죄의 유혹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아니하는 것을 말한다. 나도 살아났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결의 영께서는 지금 내게 새 생명을 주셨고 장차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장사 지내심과 다시 살아나심이 믿고 따르는 내게도 그대로 적용되고 체험하는 것이 바로 신자의 경건의 능력(power)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이겼네, 예수 이겼네, 예수 사단을 이겼네. 나도 이겼네, 나도 이겼네, 나도 사단을 이겼네!!
2.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마가복음 16:17∼18). 부활 후에 예수님께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제자들에게 부탁하면서 하신 유명한 말씀입니다.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믿도록 하면서 동시에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라는 크나큰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여러 질병을 고쳐주면서 귀신에게 매인 자를 풀어주면서(필요한 혜택을 제공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어려서부터 조용하고 보수적인 교회를 다녔던 사람일수록(=필자 자신을 두고 한 말이다) 방언하고 질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이런 사역은 아주아주 수준이 낮은 신자들이 얽매이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또 다른 오류에 빠지게 되었다. 성경의 지적인 내용만을 추구하며 편식을 한 신자였다. 그래서 경건의 능력(power)이 없었고 경건의 능력이 부재하였던 겁니다. 젊어서는 누구나 건강하다고 생각하여 이런 말씀(치유 사역과 귀신 추방 사역)을 소홀하게 여길 수 있겠지만, 균형이 잡히지 못한 것은 확실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에서 명령형과 완료형을 소홀히 여긴다면, 경건의 능력(power)이 떨어지고 위축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지적인 신자일수록 자기 성향에 따라서 ‘마귀를 대적하라’는 명령형과 악한 영을 ‘물리치고 결박하라’는 결박 혹은 대적 기도를 소홀히 한다면, 경건의 능력(power)은 보이지 않고 부정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늦었지만 연약한 자신(몸)의 상태를 깨닫고 독생자 그리스도께서 이루시고 완결하신 능력을 힘입는 일은 참으로 귀중합니다. 신앙생활에서 경건의 능력이 분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셨고(떠맡으셨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셨도다.”(마태복음 8:17) 이런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의 연약한 부분에 손을 얹고 읊조리면서 기도하는 일도 참으로 귀중합니다. 바라고 소망하기는 반복하면서 끝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기도(누가복음 18:1∼8,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에서 많은 응답을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한평생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대적 기도와 결박 기도와 읊조리는 기도를 주저한다면, 내게 참으로 경건의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다시금 확인하는 좋은 기회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