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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2장 12-19절 말씀 묵상 [임근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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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2:12-19사순절 묵상 35 

제목: 호산나의 함성 뒤에 가려진 십자가의 길 

찬송가: 149장 주 달려 죽은 십자가 


1. 요한복음 12장은 예루살렘 성 전체가 거대한 흥분과 열기로 들끓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수많은 인파가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승리와 번영을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가 들려 있었고, 입에서는 "호산나!"라는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거대한 인파가 한목소리로 외치는 환호성은 땅을 진동시킬 만큼 압도적이었을 것입니다. 


2.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압제 아래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구원이란 경제적 풍요, 정치적 독립, 그리고 로마 군대를 힘으로 제압할 강력한 군사력이었습니다.


그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든 결정적인 이유는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 때문이었습니다(17-18). 그들은 예수님의 '메시지'가 아니라 "이 정도 능력자라면 우리를 먹여 살리고 로마를 몰아내 줄 것이다!"라는 세속적 기대였습니다.


3. 세상의 왕들은 정복자로 입성할 때 늠름하고 근육질인 백마를 탑니다. 무력과 권위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4절에서 주님은 의도적으로 초라한 '어린 나귀'를 선택하셨습니다. 이는 스가랴 9장 9절의 예언을 성취함과 동시에, 주님의 통치 방식이 세상과 전혀 다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힘으로 굴복시키는 왕이 아니라, 섬김으로 변화시키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조선 말기, 양반 지식인이었던 이재형은 천대받던 백정들을 위해 스스로 그들의 '마부'가 되었습니다. 양반의 기득권을 버리고 가장 낮은 자들의 고삐를 잡은 그의 모습은 곧 우리 주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고삐를 잡는 마부가 되신 사건, 그것이 성육신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에서 가르치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와 같은 낮은 자리에 앉아, 우리의 초라한 인생이라는 나귀의 고삐를 직접 잡고 십자가의 길로 인도하러 오신 분입니다. 


4. 제자들이 처음에는 이 일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고 증언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야, 비로소 그 비참했던 십자가가 사실은 '영광의 보좌'였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반면 바리새인들은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라며 절망합니다(19절). 그들은 예수님을 죽여서 끝내려 했지만, 오히려 그 죽음을 통해 복음이 온 땅으로 퍼져나가는 구원의 문이 열렸습니다. 


5. 주님의 생애는 마치 거장의 손에 들린 '연필'과 같았습니다. 깎이는 아픔을 견디고 스스로 닳아 없어짐으로써 인류 구원의 문장을 완성하셨습니다. 죽어야 살고, 비워야 채워지는 십자가의 역설만이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합니다.


6. 우리는 주님께 무엇을 기대합니까? 내 문제를 해결해줄 '기적의 주님'입니까, 아니면 나의 죄를 위해 죽으러 오신 '고난의 주님'입니까? 


이번 고난주간, 우리 안의 이기적인 종려나무 가지를 내려놓고 주님의 겸손을 배웁시다. 주님이 연필처럼 자신을 내어주셨듯, 우리도 삶을 드려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써 내려갑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주님! 주님이 우리를 체휼하셨듯 우리도 이웃의 아픔을 보듬으며, 닳아지는 연필처럼 세상에 주님의 사랑을 기록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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