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장 1-16절 말씀 묵상 [김연희 목사]
작성자 정보
- 복음뉴스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제목 : 하나님에 관해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
본문 : 요한복음 3:1–16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3장 16절은 복음의 핵심으로 자주 인용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이 구절은 너무 익숙해서, 그 말씀이 어떤 자리에서 주어졌는지를 놓치기 쉽습니다. 이러한 요한복음 3장 16절의 배경을 살펴보면, 앞 부분에 등장하는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 한가운데서 선포된 말씀입니다. 곧,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하던 사람에게 주어진 선언입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지도자요, 이스라엘의 선생이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알고 율법을 알고 있었으며, 하나님에 관해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나아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요 3:2)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고백에 칭찬으로 응답하지 않으시고, 곧바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고 선언하시며, 예수님은 계속 하나님의 나라에ㅡ대해 말씀하십니다(요 3:5-8) .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지 못하는 니고데모는 어떻게 그러한 일들이 있을 수 있냐고 반문하고 이에 예수님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을 알지 못하는냐” 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에 관한 지식에 치우친 니고데모의 신앙의 현 주소를 보게 하는 예수님의 질문이며, 이 질문은 어쩌면 오늘 우리를 향하여 물으시는 주님의 음성이기도 합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에 관해 알고 있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에 관해 아는 것은 지식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것은 생명의 영역입니다. 니고데모는 하나님을 대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믿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요 3:9)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불성실해서가 아니라, 이성의 한계에서 나온 질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해로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라, 거듭남으로 보게 되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 3:6–7). 이 말씀은 지식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차원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언어, 곧 영으로 깨닫는 세계입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끝까지 육의 언어로 이해하려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는 마치 한국어로 말하는 사람과 중국어로 듣는 사람의 대화와 같아집니다. 말이 틀린 것이 아니라, 언어의 차원이 달라 서로 통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이 지점에서 예수님은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믿지 아니하거든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고 하십니다. 여기서 땅의 일이란 성령으로 거듭나는 이 땅에서의 실제적인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그 땅의 일조차 믿음으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늘의 일, 곧 십자가로 나아가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 3:14).
광야에서 불뱀에 물린 백성들은 이해해서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놋뱀을 바라봄으로 살았습니다(민 21:8–9). 마찬가지로 우리는 십자가를 완전히 이해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들리신 인자를 믿음으로 바라볼 때 생명을 얻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6절이 선포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고,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도 이 말씀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서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관해 아는 신앙에 머물러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아는 생명으로 한 걸음 나아가고 있는지 조용히 돌아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언어로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영적인 세계임을 알기에, 우리는 말보다 앞서 잠잠히 주께 은혜를 구할 뿐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이해로 열리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만 열리는 나라임을 믿습니다.
광야에서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오늘 저희도 십자가 위에 들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소서!
주님을 다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주님을 신뢰하며 바라보는 믿음을 주옵소서!
그 믿음 안에서 생명을 얻게 하시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를 바라볼때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앞에 조용히 열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