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시편 3편 3절 말씀 묵상 [이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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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연금술3-신앙의 원리


시3:3 “여호와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시니이다”


네탄야후 이스라엘 총리의 ‘광폭 행보(廣幅行步)'가 계속해서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만만치 않아 보이는 눈길, 수려한 언변, 과감한 행동 등은 종종 반세기 전 이스라엘의 장군 ’모세 다얀’에 비견되곤 합니다.


하마스와의 끝이 없어보이는 전투, 시리아의 헤즈볼라에 대한 과감한 폭격 등 상대의 허를 찌르는 공격을 감행합니다. 그러면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뒷수습(?)을 하듯 평화협상을 중재합니다.


네탄야후의 롤 모델(?)인 ‘모세 다얀’은 1967년 6월 5일 이스라엘의 ‘6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스라엘의 장군입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실명한 왼쪽 눈을 감싼 검은 안대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바 있습니다.


세계 전쟁역사에 기록된 6일 전쟁은 마치 전광석화처럼 치고 빠지는 전투를 통해 시나이반도, 골란 고원을 빼앗아 이스라엘의 땅을 전쟁 전에 비해 세 배가 늘게 만든 전쟁으로 유명합니다. 


전쟁기간중 이스라엘군 사망자는 679명, 이집트군 사망자가 약 15,000명, 요르단군 사망자가 약 1,000명, 시리아군 사망자가 약 2,500명으로 세계 전쟁사에 길이 남을 이스라엘의 대승이었습니다.


불과 며칠 전 미국군이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했던 ‘Absolute Resolve’ (절대적 결단) 작전이 이스라엘의 6일 전쟁을 모티브로 삼은 전략이 아니었나 추측할 수 있습니다.


6일 전쟁의 주인공 ‘모세 다얀’ 장군이 당시 250만 대 1억명의 싸움을 앞두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묵상했던 말씀이 바로 시편 3편입니다.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그리고는 분을 쏟아냅니다. ‘저들은 엄청난 숫자의 군대가 최신 무기로 무장했다고 우리를 조롱하고 우습게 보나이다.’ ”여호와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3절).


그리고는 다윗이 아들 압살롬을 피하면서 했던 의지의 결단을 그 역시 주 앞에 토로합니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주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6절).


연이어 모세가 했던 엄청난 기도를 그 또한 쏟아냅니다. ”쉐마 아도나이! 쿠마 아도나이!“(주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주여 일어나소서!) 이 기도를 마친 후 6일 전쟁 작전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가운데 흔히 갖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왜 우리 믿음은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실제가 되지 못할까?’ (Why our faith does not become a reality when difficulties hit us?)


왜 우리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실제로 사랑해야 할 때 사랑할 수 없을까? 왜 용서한다고 하면서 용서할 수 없고, 왜 편협할 수 밖에 없을까? 왜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하나님의 약속은 기억나지 않을까?


무엇보다 먼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적을 아는 지식에 눈을 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이 영적전투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영적 전투에 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 삶의 모든 정황과 하나님의 말씀을 연결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늘 말씀에 비춰서 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말씀이 능력이 되고, 우리 입술의 고백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은 ’고백의 신앙‘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가를 구체적으로 고백할 때, 그 고백이 우리를 딴딴하게 만들고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할 일들이 정리되어 드러납니다. 다윗의 고백을 자신의 입술에 담았던 모세 다얀 장군은 더 이상 ’250만 대 1억 명‘이라는 숫자에 눌리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5절). 자신감을 회복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외칩니다.


”쿠마 아도나이!” (주여 일어나소서!) 자신이 주와 함께 일어나듯 그 자신감으로 전투에 임한 것입니다.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시인의 상상력이 동원된 고백이 그에게 얼마나 커다란 능력이 되었는지 알 수 있는 표현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이 삶의 실제가 되는 훈련이며 원리입니다.


가스펠 헤럴드지에 게재된 이야기입니다. 세실 씨는 어느 날 그의 사랑하는 어린 딸의 방으로 갔습니다. 딸은 눈을 반짝이며 어떤 사람이 그녀에게 준 아름다운 구슬 상자를 아버지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구슬이 아주 예쁘다고 감탄을 하고 나서는 뜻밖에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얘야, 그것을 불 속에 던져버려라.” 어린 딸은 당황하고 망설였습니다. 그것은 대단한 시험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계속 말했습니다. ”네게 강요하지는 않겠다. 너에게 맡기겠다. 이유는 말하지 않을 것이니 네가 나를 믿는다면 그렇게 해라.” 어린 소녀는 고심하다가 결국 순종하기로 하고 그 상자를 불 속에 던졌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어느 날 아버지는 훨씬 더 아름다운 구슬 상자를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딸아, 내가 이렇게 한 것은 네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신뢰하도록 가르치기 위해서였단다.“


”너의 인생에 하나님은 여러 차례 네가 이유를 모르는 가운데 포기하고 버릴 것을 요구하실 것이다. 그때 네가 나를 믿었듯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너는 언제나 그것이 최고의 행복임을 알게 될 것이다.”


신앙이 실제가 되는 훈련이고, 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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