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시편 1편 1-2절 말씀 묵상 [이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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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연금술1-영혼의 운동


시1:1-2 “복 있는 사람은…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 유명해졌던 작품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교과서에서 사라진 것은 그가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한 작가 명단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일로 인해 그의 특별한 감수성과 빛나는 문장들을 아주 없는 셈 치기엔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의 실수 역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중 하나일지 모릅니다.


그는 훌륭한 인간은 아닐지 모르나, 슬픔을 아는 인간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슬픔은 영혼의 운동입니다. 우리는 슬픔을 통해 강해집니다. 슬픔은 우리를 더 딴딴하고 유연하게 만듭니다.


젊은 엄마들이 “아이가 슬픈 일, 마음 아픈 일은 조금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들을 때 난감해집니다. 이해는 합니다만 정말 그럴까? 흔히 듣는 ‘꽃길만 걸으라’는 말에 당혹하게 됩니다.


슬픔이 한 톨도 없는 인생이 좋기만 할까? 육체의 단련을 위해서는 운동이 필요하듯이 영혼의 단련을 위해서는 슬픔이 필요합니다. 칼빈은 시편을 ‘영혼의 해부학’이라고 일컬었습니다.


시편에는 마치 거울처럼 인간의 모든 지정의 요소들이 다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모든 사랑, 기쁨, 소망, 미움, 고통, 슬픔, 근심, 두려움 등이 다 표출되어 있습니다.


안톤 슈낙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 대한 글을 썼지만 시편기자는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으로 시편을 시작합니다. 그의 즐거움은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즐거워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기꺼워하며 말씀을 사랑하여 마음에 두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40:8).


오늘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를 감격하게 할까?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 보며 이 질문을 솔직하게 던질 때 우리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기 강사 김창옥 교수가 여대 채플 시간에 15분 강연 후 학생들의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 여학생이 질문합니다. “오빠가 군대에 갔는데 기다려야 하나요? 말아야 하나요?”


이 질문에 김교수가 자매의 허를 찌르는 답을 합니다. “자매에게 지금은 아주 좋은 찬스입니다. 자매가 군대간 오빠를 좋아했는지, 좋아 보였는지를 구분할 찬스입니다.”


좋아하는 것과 좋아 보이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좋아하는 것에는 그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지만, 좋아 보이는 것에는 그 대가를 지불하기를 꺼려하고 실제로 지불하지 않는 것입니다.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말씀을 즐거워하는 사람인가?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마음에 두고, 그 뜻을 행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입니다.


“묵상”(하가)의 원어적 의미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읽는다”는 뜻입니다(수1:8; 시63:7; 73:13). 이렇게 묵상은 말씀을 되새기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을 깨닫게 하시고 고쳐주시기를 원하시는가? 이 말씀에 드러난 하나님의 성품을 나는 경험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는 것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이 일에 즐거움과 유익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열매를 맺으며, 모든 일이 형통합니다(1:3). 형통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특징입니다.


묵상은 명상과 다릅니다. 동양의 명상은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그 비워진 마음엔 미혹의 영과 잡다한 생각들이 침투하기 쉽습니다. 우리 안에서 떠드는 목소리는 무엇입니까? 바로 ‘생각’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만 가지 생각을 합니다. 걱정, 불안, 욕망, 판단… 이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 우리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러한 생각들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영혼의 수준이, 창세기의 하와처럼 ‘뱀과 대화하는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와는 뱀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저 열매를 먹어도 정말 죽지 않을까?”, “하나님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우리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의 메커니즘입니다. 우리 안의 자아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우리는 그 말에 일일이 대꾸하며 대화를 이어갑니다.


묵상의 목표는 이러한 어두운 영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의 말에 권위가 따릅니다.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옳은 말을 하고 소리를 높여도, 그 말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는 것을 경험합니다. 왜 그럴까? 왜 우리 말엔 권위가 실리지 않을까? 아직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덜‘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아직 우리의 말이 cliche(종교적 수식어)의 습관적인 레토릭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새해엔 말씀을 즐거워하기 원합니다.


그래서

성령에 이끌려 사는 삶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삶

세상에서 천국을 누리는 삶을

누리는 복있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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