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사도행전 10장 33절 말씀 묵상 [이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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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21)-말씀의 종


행10: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1990년대 후반 아직 중국 정부가 선교 활동에 대한 제재(制裁)를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이전이었습니다. ‘자율체제’라는 허울아래 공안을 통해 기독교 포교에 대한 감시와 통제만 할 때였습니다.


그때 저는 중국 지하(가정)교회 탄두이(단체)들과 연결이 되어 신강성(신장)에 초대되어 지도자 세미나를 하게 되었습니다. 중국 가정교회는 점조직으로 연결되어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신장 중앙시장 모처의 어느 목재소에서 비밀리에 성경공부가 진행되었습니다. 약 200여명의 지도자들이 운집해서 새벽부터 저녁 8시까지 하루 종일 4박5일간 진행되었습니다.


하루에 두끼 식사를 제공하고 잠시 쉬는 시간 외에는 논-스톱으로 진행된 성경공부입니다. 조선족 출신 통역과 함께 진행된 성막론 공부에 얼마나 진지하게 임하던지 지금도 그 눈망울이 눈에 선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그날의 일과를 마친 후였습니다. 어딘가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해줘야 할 사람들이 있다는 소리에 대기하고 있던 ‘툭툭이’(세발 자동차)를 타고 모처로 갔습니다.


어느 아파트에 들어섰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약15-20평 아파트에 거의 150명 이상 되는 사람들이 빽빽이 앉은 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너무 놀라서 무슨 말씀을 전했는지 기억도 잘 안 되는 가운데 엄청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새벽 1시까지 이어진 집회에 더러운 귀신들이 떠나가고 많은 사람들이 치유와 회복을 체험한 것입니다.


고넬료 가정집회를 묵상할 때마다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바로 중국 신장의 그 아파트 가정집회입니다. 그 자리에 모였던 사람들의 간절한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단 한 마디의 말씀도 놓치지 않겠다는 결의에 찬 눈이었습니다. 고넬료가 했던 말 가운데 그 결의를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듣고자 하나님 앞에 있었던’ 것입니다. 무슨 뜻일까?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된 자세입니다. 우리가 설교를 들을 때나 말씀을 묵상할 때 전해지는 말씀의 의미를 깨달으려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말씀이 아무리 귀에 가득히 차도 귀가 뚫리지 않으면 그 말씀이 우리 심령 속으로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묵상을 해도 그 말씀의 의미가 잘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귀가 뚫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폴 사이몬의 노래인 ‘침묵의 소리’의 가사에 이와 같은 진심이 실려 있습니다.

People hearing without listening

People hearing sound that voices never share.

사람들은 들어도 듣지 못하고

들어도 그 소리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귀가 뚫린다’는 말은 ‘말씀의 종’이 되려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히브리 종에 대한 법규는 종이 된 후 제 7년째 풀려날 수 있지만, 종으로 남고 싶으면 주인이 그 종의 귀를 문이나 문설주에 대고 뚫었습니다.(출21:1-6)


‘말씀의 종’이 되려는 마음은 그 말씀을 그대로 따르고 순종하려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없다면 귀가 뚫린 것이 아니어서, 아무리 말씀이 충만하게 주어져도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수 없게 됩니다.


말씀은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모든 생각을 포기하고 그 말씀 앞에 무릎 꿇으려는 마음을 가지기 전까지는 들리지 않습니다. 말씀 앞에 자아가 죽지 않으려는 사람은 아무리 묵상을 해도 ‘자기 생각 정리’밖에 되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묵상이 아닙니다. 묵상은 그분의 말씀이 우리 안에 새겨져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게‘(행19:20) 되는 과정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10:5)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말씀 묵상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그 깨달음은 강렬한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깨달아갈수록 더 깊게 다가옵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말씀의 힘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된 과정에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말씀은 예수님의 순종으로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5-8).


예수님의 사역처럼 말씀이 우리에게 예수의 피와 함께 다가올 때 우리 안에서 ‘성육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피를 흘리려 하지 않는다면 그 말씀은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합니다.


우리도 주님이 하셨던 것처럼 피를 흘리려는 결단이 있을 때, 그 말씀은 우리 안에서 살아나 ‘성육신’하는 역사가 있게 됩니다. 귀를 뚫는 것은 바로 우리도 피를 흘리겠다는 결단입니다.


오 주여

우리 귀를 뚫어 주소서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말씀을 놓치지 않고 듣게 하소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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