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2장 24-30절 말씀 묵상 [김동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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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의 다루심을 보라.
본문 : 창세기 32;24-30
부모님이 말썽꾸러기 자녀들을 다루는 노하우들이 있습니다. 어떤 부모는 사탕이나 캔디를 주면서 아이를 살살 달랩니다. 어떤 부모는 두들겨 패면서 큰 소리를 지릅니다. “애새끼들은 두들겨 패야 말을 듣지 그렇지 않으면 말을 들어 먹지 않는다”고 성을냅니다. 어떤 아이는 쳐 내버려 둡니다.
위의 경우들은 보편적으로 일방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어떤 부모는 상대방의 말이나 의견을 들으면서 다룹니다. 어떤 부모는 아주 침착하게 인내하면서 말로 잘 타이릅니다. 먼저 질타나 꾸중 보다는 인격적으로 먼저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려고 합니다. 분노가 치밀지만 인내하는 마음으로 들으면서 상황을 전개 시켜 갑니다. 이런 방법들은 상호 보완적입니다.
사람을 다룸에도 지혜가 필요 합니다. 억지는 안통합니다. 막무가내도 안통합니다. 일방적일수록 좋은 효과 보다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어떻게 다루시나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다루시는 방법을 보면 다양합니다. 징계로 다스립니다. 사랑과 은혜로 다스립니다. 때로는 훈련으로 다스립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야곱을 다루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야곱이 살아온 삶을 하나님은 보십니다. 야곱의 생애는 한 마디로 속이는 인생을 삽니다. 철저하게 자기 생각을 앞세워 삽니다.
역설적인 것은 야곱이 자기 나름대로 일을 벌이지만 얻는 건 없습니다. 야곱이 장자권을 소유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야반도주 합니다. 속임수로 비싼 대가를 치룹니다.
야곱이 고향을 떠나 야반 도주를 해서 하란을 가던 중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은 야곱을 도우십니다. 벧엘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과 얼마든지 소통 할 수 있다는 사닥다리 꿈을 꾸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여기 계심을 확신한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외삼촌이 사는 하란까지 750 km 나 되는 먼거리에 도착합니다.
야곱이 하란 외삼촌 라반의 집에 살면서 양들도 제대로 얻지 못합니다. 삼촌에게서 농락을 당합니다. 하란에 살고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 살면서 7년을 일했지만 레아를 아내로 얻습니다. 다시 7년을 일해서 라헬을 아내로 얻습니다. 라반의 집에서는 인내와 끈기의 끝판왕을
보여 줍니다. 그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벧엘을 경험하면서 꿋꿋이 견뎌낸 힘 입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에 맞춰 야곱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야곱의 인생 철저한 하나님이 개입하시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 합니다. 야곱의 입장에서는 결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형 에서에 대한 두려움 입니다. (벧엘의 경험이 있지만 형의 분노에 찬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으로 하여금 마음속을 복잡하게 하는 두려움을 제거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천사를 보내어 무너트리게 합니다. 야곱을 만나서 씨름을 할때에.. 먼저
천사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십니다.
하나님이 먼저 사람을 쓰러뜨리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인간의 죄악들을 먼저 치십니다. 교만, 거짓, 불순종을 치십니다. 두려움을 제거 하십니다.
하나님의 다루심에는 무엇보다 깊은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첫째, 치시고 다시 씨름을 시작 하십니다.
씨름을 통해서 야곱이 이기게 하십니다. 야곱이 이기게 하심은 야곱의 소원을 들어 주시는 시간 입니다 .
하나님의 먼저 치심은 회복을 위한 과정 입니다 치심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그리고 다시 세워 주심을 통해서 변화를 경험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다루심은 다시 회복케 하시고 하나님을 따라 순종합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다시 회복하십니다.
하나, 나에게 축복하지 않으시면 절대로 못 가십니다
창32;26
야곱은 바지 가랭이 부여잡고 간청 합니다. 나에게 축복 하소서.. 야곱의 인생 방식은 속임으로 쉽게 뭔가를 얻는 삶이었다면 하나님과의 씨름은 인내를 요구 합니다. 끝까지 결판을 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 냅니다.
둘,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시는 하나님
창 32: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름이 바뀌어 경우가 허다 합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십니다. 사래를사라라 부르십니다.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십니다. 이름의 변경은 무엇보다도 “신앙심의 도약”을 기대 하십니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 이라는 의미 입니다. 야곱이 술수와 속임수로 살아온 인생이라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함께 싸우는 자” 라는 의미 입니다.
누구나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전능자이신 하나님을 통해 젖을 먹고 사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행하신 일을 보면서 우리가 얻는 교훈은 ? 하나님은 우리가 야곱처럼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 되기를 원하십니다. 남을 속이고 이용하는 인생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구하는 인생이 되기를 기대 하십니다.
지금 당장 이름이 바꿔지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미래에 새로운 이름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계 2;17에 보면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흰 돌을 주고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하리니 받는 자 외에는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고 말씀 합니다
이름이 바뀌는 인생을 지금부터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셋,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상봉은 놀랍기만 합니다
야곱은 별의별 생각속에서 형 에서를 만납니다.
창 32:20 에 보면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야곱은 여전히 계산이 많습니다. 아차 하면 도망칠 궁리도 합니다. 그러면서 먼저 물질로 형 에서의 마음을 살려고 시도 합니다.
여전히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야곱이지만..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온 인생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야곱의 생각을 뛰어넘는 에서의 반응을 보라.
에서는 야곱이 보낸 선물 조차 받지 않습니다. 숨가쁘게 달려와 야곱을 안아줌니다. 에서는 야곱을 만난 후에 다른 말 보다는 뜨겁게 포옹 합니다 . 야곱은 두려움으로 에서를 만나러 가는데, 형 에서는 반가움으로 동생 야곱을 만나러 옵니다.
에서의 포옹은 용서의 마음 입니다.
용서하는 마음은 증오의 마음을 뛰어넘었을 때에 용서할 수 있습니다. 증오의 마음에 사로 잡혀 있으면 용서는 어렵습니다. 에서는 수년 동안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렸던 것 같습니다. 누가 강자 인가요? 강자는 상대방의 약자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상봉에는 분노와 복수가 없습니다. 행복한 만남 입니다.
마지막, 야곱의 선택과 이스라엘의 선택
야곱의 선택은 철저한 자기 꾀임 입니다. 결과는 분리, 깨어짐, 멀어짐만 남길 뿐입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은 화해, 용서 그리고 기쁨을 경험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내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시어 나를 다스리시도록 하라. 하나님은 각 사람을 다루십니다. 아주 정확하게 각자를 인도해 가십니다. 하나님은 늘 문
밖에서 노크 하십니다.
하나님의 다루심을 신뢰하십시오. 그 분의 계획 속에 이뤄지는 각자의 발걸음은 결코 늦거나 빠르지 않습니다.
야곱은 두 번에 걸쳐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도망칠때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야곱의 특성을 버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고향으로돌아갈때에 벧엘에서 다시한번 하나님과 씨름 합니다. 이제부터는 더 이상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로 살아가도록 다스리십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야곱의 기질과 속성들을 모두 상수리 나무 밑에 파 묻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벧엘에 계신가요?
야곱의 벧엘이 아닌 이스라엘의 벧엘로의 다스리심을
확신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면서 본인이 갖고 있는 야곱의 속성들은 상수리나무 밑에 파 묻고 이스라엘로 살아가시는 주님의 종들이 되시길 축복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