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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4장 11절 말씀 묵상 [이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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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8)-수용과 거절


행4: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복음에는 언제나 ‘수용과 거절’의 두 가지 반응이 따릅니다.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두드려도 닫힌 문과 같이 거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이 전해지는 현장에는 언제나 긴장감이 있습니다. 선택은 단 두 가지입니다. 수용이냐? 거절이냐? 복음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단호하게 우리의 선택을 촉구합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그가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6).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


우리가 귀기울 필요가 없는 이론 중 하나가 ‘불가지론’(不可知論)입니다.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느니, 인생은 답이 없다느니, 이원론에서 벗어나야 한다느니’ 하는 말은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를 햄릿과 같이 결정 장애에 빠지게 할 뿐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무엇이 사단의 뜻인지 구분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선택지를 단 두 개로 좁혀야 합니다. “죽느냐, 사느냐?”


단순한 아이처럼 선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


삶에 답이 없어지는 이유는, ‘욕심’ 때문에 선택지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신중’이라는 이름으로 ‘햄릿 증후군’에 빠집니다. 천국과 지옥, 빛과 어두움에 다른 선택지는 없습니다.


‘햄릿 증후군’에 빠지면 지금도 베드로 사도의 설교 말씀처럼 ‘머릿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버린돌’로 만든 유대 건축자의 실수를 우리도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신앙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성경은 신앙을 건축에 비유합니다. 성전 중심의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육체를 말씀하기 위해 성전의 개념을 사용하셨습니다. 이 개념을 사도들도 사용하여 우리의 신앙을 말씀합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가 모퉁이의 머릿돌 되신 그리스도께 연결될 때 우리는 ‘산 돌’이 되고 하나님의 새 성전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 믿음의 기초시며 우리 믿음의 머릿돌이십니다. 


동시에 그분은 ‘걸리는 돌’과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십니다. 예수를 놓치는 것은 모든 것을 놓치는 것입니다.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바로 ‘수용과 거절’의 문제입니다.


우리 안에 ‘수용’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자존감’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주님이 되시고 머릿돌이 되신 것이 우리의 자존감이고 그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예수를 머릿돌로 수용하고 ‘모퉁이 돌’이 될 때, 우리도 세상에서 버린돌의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세상에서 ‘버린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체험입니다.


그런 체험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일어설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자존심’입니다. 우리의 ‘자존감’은 바로 ‘하나님의 자존심’으로 말미암습니다. 이것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근거입니다.


닉 부이치치는 손발이 없이 태어났지만 많은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멘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어렸을 때는 그런 모습으로 태어난 자신을 원망하며 자살을 할 생각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에게도 무엇인가 계획하신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태어나게 해 주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는 그의 마음 자세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자신을 따돌리던 친구들에게 선언을 하듯 말합니다. ”당신들은 지금 좋은 친구 하나를 잃었습니다. 참 안 됐군요.” 이것이 바로 ‘버린돌-머릿돌’에 담긴 ‘자존감’입니다.


자신이 보잘 것 없이 느껴질 때는 친구들이 자신을 따돌리는 것에 마음이 아팠지만, ‘자존감’을 되찾고 나서는 자신과 친구가 되기를 거부하고 자신을 놀리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거부하는 것이 그들의 손해임을 당당히 밝힌 것입니다.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 대부분은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가 나를 미워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입니다. 즉 나의 문제보다는 그들의 문제가 더 크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부족하여 밉게 보이는 사람에게는 어떤 노력을 해도 밉게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사람은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내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수용과 거절의 문제는 이와 같이 우리의 삶에 대한 자세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복음은 수용하는 것입니다.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머릿돌을 버린돌로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됩니다.


오 주여

우리의 머릿돌 되신 주님

이제 우리도 모퉁이 돌로

주 안에서 세워지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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