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3장 16절 말씀 묵상 [이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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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7)- 이름의 질서
행3: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제가 중학교 때 베트남으로 파병을 앞둔 맹호부대에서 순직한 형님 이름에 관련된 좀 별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마도 형님이 군 입대 전, 동네에서 주먹깨나 쓰는 ‘어깨’였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군대를 가셨습니다. 군대로 입영하면서, 어린 저에게 서울의 모 지역에 가서 배가 고프면, 자기 이름을 대고 어느 식당이든 들어가 밥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치사해 보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밥 한끼 거저 먹는 것이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한국이 못 살 때였습니다. 아마 형님의 이름이 그 동네에선 유명했던 모양입니다.
실제로 한번도 그 동네에 가서 형님 이름을 대고 밥을 먹은 적은 없지만 형님 이름이 그 지역에선 ‘통했던‘(?) 모양입니다. 이보다 더 극적인 어느 목사님의 간증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길 거리 부랑아들을 집에 데려다 같이 살며 보살폈던 분입니다. 어느 날 한 중년 남자가 전화를 걸어서 생명을 구해줘서 감사하다고 하더랍니다.
목사님은 그 분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초지종을 물으니 그가 어떤 사업을 하여 돈을 많이 벌었는데, 그 일이 떳떳한 일이 못되서 사업을 접기로 했고, 그 일이 폭력조직과 연관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손을 뗐지만 그 폭력 조직은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밤 3명의 그 폭력 조직원들이 쳐들어와 무작정으로 그 사람을 해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벽에 걸려있는 교회 달력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밑에 그 목사님 이름이 적힌 것을 보고 그 목사를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그 달력이 왜 거기 걸려있는지도 그 목사가 누구인지도 몰랐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냥 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 다닌다고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대장이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급기야는 그 사람과 목청을 높여 싸웠고 그들은 그 사람을 남겨두고 집을 나갔다고 합니다. 싸우는 내용 중에 이 사람을 건들면 알아서 하라는 위협도 들어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그를 살려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할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자신이 거두어 키우다가 뛰쳐나간 아이들 중 하나일 것이라고 합니다.
확실한 것은 그 목사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없는 누군가였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 목사님의 이름이 적혀있는 달력이 벽에 걸려있다는 것으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름의 능력’입니다. 저의 형님 이름의 힘은 밥 한끼 거저 먹을 능력입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 이름의 힘은 폭력배들에게서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어찌 보면 ‘주먹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세계’의 질서가 비슷합니다. ‘누구 누구 아느냐?’ 를 묻고, 그 이름을 알고 믿는 사람을 인정해 주는 ‘이름의 질서’입니다.
그렇다면 ‘영적 세계’에서 우리가 알고, 믿고 있는 예수 이름의 권세는 과연 얼마나 강력할까? 어느 ’어깨‘의 이름과 비교할 수 있을까? 일개 목사의 이름과 비교할 수 있을까?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데 인간이든 영적 존재이든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있는 우리를 감히 대적하고, 해할 수 있을까? 영적 세계에서 ‘이름의 질서’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미문 앞에 앉은뱅이를 고친 것이 자신들의 능력이 아닌 예수 이름의 능력이라고 증언합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라고 소개합니다. ‘이름의 질서’를 알고 잉태된 믿음입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치료되어 기뻐 뛰며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늘 성전 앞에만 머물던 그가 이젠 성전에 들어가 베드로와 요한 곁에 머물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머물다’는 헬라어로 ‘크라테오’라고 합니다. ‘크라테오’는 원어적인 의미로 ‘어깨에 매달리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개역개정에서는 이 단어를 ‘붙잡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험한 세상에서 ’무엇을 붙잡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기 전에는 무엇을 붙잡으려 했습니까? 아마 은과 금이었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붙잡은 겁니다.
그러나 이제는 베드로와 요한이 믿는 예수님을 붙잡은 것입니다. 이제 예수 안에 머물겠다고 작정한 것입니다. 예수 이름은 기도를 마칠 때 쓰는 요식행위가 아닙니다.
그 이름에는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 약속하십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이름의 질서를 믿고, 주의 이름을 붙잡고 기도하는 겁니다. 오늘 해보십시오. It works! You’ll be surprised. (그 이름의 능력을 보고 놀라실 겁니다). 이것이 오늘 복음입니다.
오 주여
오늘 영적 세계에서
‘이름의 질서’를 확실하게
마음에 새기게 하소서
예수 이름의 능력을 붙잡고
기도하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