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0장 7-10절 말씀 묵상 [민경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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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양의 문으로 들어가라!_자기선언3
본문: 요 10:7-10
인간은 누구나 종교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 종교성은 죄로 인하여 단절된 인간이 영원을 향한 갈망입니다. 인생의 본향을 잃은 인간의 향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결국 ‘어떻게 하면 영원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 생명의 주인이신 그 하나님만 만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터인데 그 방법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스스로 깨달았다는 진리가 바로 '종교'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난 하나님은 모두 창조주 하나님의 그림자에 불과하거나 또는 허상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들은 어떻게 해야 진정한 하나님을 만나게 될까요? 예수님! 우리 양들의 문인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앞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예수님은 “나는 양의 문이라”I am the gate for the sheep고 스스로 선언하셨습니다. 본문 7절과 9절에서 두번이나 오직 자신만이 ‘그 문’이라고the gate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이 문이되 양들을 위한 유일한 문이 될까요?
1.예수님만이 구원의 문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8-9절 전반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인류의 시조가 살던 에덴동산에 문으로 들어오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들어온 강도가 있었습니다. 그 강도가 바로 뱀인 사탄이었습니다. 그 사탄은 에덴에 들어와 하와를 유혹하고 인류를 타락케 하였습니다. 그는 두 가지 거짓 복음을 들고 하와를 꼬였습니다. 하나는 선악과를 먹어도 '결코 죽지 아니하니라'는 거짓 생사관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는 것이었지만, 뱀은 죽지 않는다고 속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오히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아는 존재'가 된다는 거짓 신관입니다. 이처럼 생명의 문을 통과하지 아니하고 몰래 거짓 복음을 가지고 들어온 사탄의 꾀임에 빠져 인류는 생명의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본문 10절 전반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그런데 이처럼 오늘날 빼앗기고 길잃고 방황하는 우리는 문되신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얻게 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행 4:12).
구약성경에서 성막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성막의 목표는 하나님 만남입니다. 때문에 성막은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약도”입니다. 문부터 하나님이 계신 곳인 지성소까지는 100 규빗 약 50 m입니다. 그런데 문은 동쪽에 있고 서쪽에 하나님의 방인 지성소가 있습니다. 이 문에서 예수님을 믿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발씩 전진하여 지성소 안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막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성막 사방에는 12지파(원래는 11지파)가 진을 치고 있습니다. 한 쪽에 3지파씩입니다. 그리고 레위 지파는 성막을 둘러 싸고 진을 치고 있습니다. 성막을 돌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방에 문 하나씩 4개를 내면 얼마나 편리하겠습니까? 그러나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 성막으로 들어가는 문은 오직 한 개입니다. 이는 오직 예수로만 구원이 가능함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200만명이 사용하는 하나님의 집에 문이 단 하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 우리 모두 놀라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2. 둘째는, 예수님이 우리 모두의 소망의 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막을 칠 때 반드시 동쪽으로 문을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에도 동쪽으로 문을 내었습니다.
“동을 향하여 뜰 동편의 광도 오십 규빗이 될지며”(출 27:13).
때문에 성막이나 성전으로 들어올 때에는 서쪽을 보고 들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나갈 때에는 동쪽을 보고 나가게 됩니다. 서쪽의 첫 인상은 해지는 곳, 어두운 곳, 쓸쓸한 곳, 음산한 곳입니다. 그러나 동쪽의 첫 인상은 해뜨는 곳입니다. 어둠이 물러가고 광명한 햇살이 비취는 곳입니다. 사탄의 세력이 떠나고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는 밝은 곳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소망입니다. 축복입니다. 더구나 성막문 바로 앞에는 유다지파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메시야 주님은 유다 지파를 통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 하시기를 실로에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창 49:10).
게다가 성막의 문은 작은 문이 아니라 큰 문이었습니다. 성막 동쪽의 폭은 25m(50규빗)이었습니다. 그 중에 10 m가 문입니다. 성막의 동쪽은 거의가 문입니다.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습니다. 아니 누구든지 들어와야 합니다.
“...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우리 모두 죄와 질병, 가난, 저주, 깨어진 관계 등 어떠한 절망이든 소망되신 예수님 앞으로 가져오시길 간구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절망이 소망으로 바뀌는 축복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3.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양식을 공급하며 풍성한 생명을 주시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9절 후반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They will come in and go out, and find pasture”
10절 후반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성막문의 휘장은 4가지 색깔, 즉 청색, 자색, 홍색, 가는 베실로 짜여 있습니다.
“뜰 문을 위하여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수를 놓아 짠 스무 규빗의 휘장이 있게 할지니 그 기둥이 넷이요 받침이 넷이며” (출 27:16).
-청색은 생명의 색입니다. 그래서 청색은 “생명되신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자색은 왕권을 의미하는 색입니다. “왕 되신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홍색은 보혈의 색깔입니다. 그래서 “고난당하신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흰색은 성결을 의미합니다. 가는 베실은 흰색입니다. “성결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이 성막의 네가지 색깔이 예수 그리스도의 4가지 특성의 예표입니다. 즉 이 성막 문을 들어가는 사람들이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성결하게 되고 온갖 양식과 생명을 풍성히 얻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또한 병자들을 치유하시며 진정한 안식과 생명을 주셨습니다. 느헤미야 당시 예루살렘 성에 있던 12개 문이 보수되었습니다. 그중 ‘양문’은 예루살렘 북동쪽에 위치한 문입니다. 바벨론에서 3차로 귀환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중건할 때 건축한 문입니다(느 3:1). 바로 이 문을 통하여 희생 제물에 쓰여질 양들이 성전 안에 반입되었습니다. 베데스다는 바로 그 곁에 있던 연못입니다. 그 뜻은 '은혜의 집', '자비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38년된 병자가 이 양문을 지나 가까이 있는 베데스다 연못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는 “양의 문”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받음을 보여주는 7 대 표적중 3번째 표적이었습니다.
38년된 병자는 안식일의 주인이신(막 2:27-28) 예수님을 만나 비로소 안식을 얻었습니다. 38년이나 그를 괴롭혔던 죄로 인한 병에서 나음을 얻고 평안을 얻었습니다. 진정한 안식을 안식일에 얻었습니다.
“... 이 날은 안식일이니”(요 5:9).
오늘날 이러한 안식을 얻을 수 있는 특별한 날이 바로 주일, 주님의 날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 “양의 그 문”되신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심으로, 풍성한 양식과 생명, 인식과 평안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나아가 성막문에는 문턱이 없습니다. 휘장을 들추기만 하면 누구나 들어 갈 수 있으며 누구나 들어 가기가 쉽습니다. 이처럼 누구든지 예수님이 내 죄를 짊어지고 대신 죽으신 것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습니다. 구원은 행함이 아닙니다. 구원에는 자격요건이 없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자신이 죄인이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대신 죄값을 치뤘음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우리 모두 이 같은 “양의 그 문”인 예수님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구원을 받고 소망 가운데 사시길 축원합니다. 나아가 안식을 누리며 풍성한 양식과 생명을 공급받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