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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장 12절, 9장 5절 말씀 묵상 [민경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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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빛 예수를 보라!_자기선언2

본문: 요 8:12; 9:5


예수님 시절 유대인들이 초막절에 성전에 있는 여인의 뜰에 설치된 네 개의 거대한 등불에 불을 붙이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이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간 인도하였던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기념하는 등불이었습니다. 이 등불들은 초막절 내내 밤마다 켜져 예루살렘을 환하게 비췄습니다. 이런 의식을 행하면서 그들은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슥 14:7).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도 기억했습니다 (사 60:19~20). 종말에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스스로 빛이 되어 임하실 때가 올 것이라고 유대인들은 소망했던 것입니다. 특히 역사의 어둠이 깊어갈 때에 유대인들은 바로 이 말씀을 더욱 기억했습니다.


오늘 본문 8:12은 이러한 배경에서 초막절에 주님이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대낮처럼 환하게 등불을 밝힌 성전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실 8:11 간음하다 잡힌 여인이 용서받는 사건보다 7:36에 이어지는 내용으로 봄이 흐름에 맞습니다). 너희가 켜서 예루살렘의 밤거리를 밝히는 그 물리적 등불의 실체가, 또한 스가랴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그 영영한 빛이 바로 나 유일무이한 참빛 “세상의 그 빛”the light of the world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빛”은 영적 어둠에서 구원하는 빛입니다. 바로 예수님은 이 같은 영적 어둠, 즉 죄와 죽음,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세상을 구원하는 유일한 “그 빛the light”입니다.


1. 과거 구약에서 성막의 촛대와 등불은 빛 되신 예수님의 모형이었습니다. 메시아는 유대인들의 빛인 동시에 이방인들의 빛으로 기대되었습니다 (사 9:2; 49:6). 신약에 들어와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 (눅 2:32) 이라고 불렀습니다. 요한 복음 1:4-9 에서 빛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합니다. 나아가 성경의 결론인 요한 계시록에서 예수님은 새예루살렘성을 영원히 비추는 빛이십니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계 21:23). 할렐루야!


2. 오늘 두 번째 본문이 들어 있는 요한 복음 9장에는 7대 표적 중 6번째 표적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날 때부터 눈이 완전히 보이지 않는 소경이 “세상의 그 빛”되신 예수님을 만나 놀랍게도 완전히 눈이 고침을 받는 복된 사건입니다. (이 표적은 오직 요한 복음에서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예수님이 길 가실 때에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았습니다. 자신을 낳아 기른 부모의 얼굴은 물론 우리가 늘 보고 사는 햇빛조차도 전혀 경험한 적이 없는 가엾은 사람이었습니다. 때문에 시각적 이미지를 전혀 가질 수 없는 시각적으로는 완전히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깜깜한 어둠 속에서 답답한 인생을 지내야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같은 소경에게 “나를 보내신 이[하나님]의 일을”(9:4)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자신이 “세상의 빛”(2번째 본문 9장 5절)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셨습니다 (6절). 그리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7절 전반) 소경에게 일렀습니다. 


2) 그런데 그 직후에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소경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실로암 못에 가서 그 물로 씻었더니 밝은 눈으로 돌아오는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7절 후반) 할렐루야!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시니 그 앞에서 모든 어두움이 물러갈 수밖에 없었기에 소경이 눈을 떠 광명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그런데 이 소경의 구원의 이야기는 이러한 육신의 눈이 뜨게 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육신의 눈이 밝아진 후 소경은 예수님에게 대한 인식과 태도가 점차 발전해 갔습니다. (요 9장)

①   예수님을 직접 보기 전 처음에는 단순히 예수님을 그 ‘사람’이라 불렀습니다.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11절).

②   그 다음엔 예수님을 ‘선지자’라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소경 되었던 자에게 [바리새인들이]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그가]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한대” (17절). 선지자란 하나님 가까이 거하며 하나님의 뜻을 잘 아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다(암3:7).

③   나아가 예수님을 세상에서 비롯된 자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자’ 즉 ‘하나님’이라고 믿었습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33절).

④   마침내 그는 예수님을 직접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주’라 고백했습니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35절)란 예수님의 질문을 받고 눈이 떠진 소경은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36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37절)라고 말씀하자, 그는 즉각적으로 “주여 내가 믿나이다”라고 예수님에게 고백했습니다. 나아가 예수님에게 절하며 경배했습니다 (38절). 마침내 그는 예수님이 인자요, 즉 메시야, 그리스도, 구주되심을 믿는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할렐루야!

그의 심령 안에 있는 영의 눈이 빛 되신 예수님을 보자 열려졌던 것이었습니다.


3. 이후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육신의 눈이 띄여졌으니 시각장애로 인한 일상의 삶에 불편이 없어졌을 것입니다. 나아가 영혼의 눈이 열려 참 빛되신 예수님을 보고 따르게 되었음으로 영적 어두움에도 다니지 않게 되었습니다. 영적 생명의 빛를 얻게 되었습니다. 본문 12절 후반 “...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그렇습니다. 빛을 따르는 자들이 받는 축복은 첫째로 결코 어두움 속에 다니지 않는 것입니다 (요 12:46). 어두움 속에는 위험이 있습니다. 불안이 있습니다. 공포가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이 모든 어두움에서 나와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빛 가운데 한 걸음씩 따라 갑니다.

둘째로 신자는 생명의 빛을 얻게 됩니다. 세상의 빛 되신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4).

세상의 빛은 생명을 출생케 하며 성장시킵니다. 결코 소멸하지 않는 빛입니다. 그렇습니다. 빛이 있으면 생명이 있고 빛이 없으면 생명이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빛은 생명체를 성장케 하는 원동력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육신으로 오신 궁극적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보고 우리 심령의 영적 눈이 열려져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또한 영적 세계를 알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열 두 제자 중 도마는 눈뜬 장님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엔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본 후, ‘당신은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주님이십니다’(20:28) 라고 확실하게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보지 못하는 자에게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요 9:39-41).


우리 모두 육신의 눈이 밝다 하여 이 세상의 물리적 빛만 보려 하지 마십시다. 반대로 혹시 눈이 불편하다 하여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다. 우리 심령 안에 또 다른 눈, 영의 눈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영적인 눈은 죄로 인해 어두워져 있습니다. 우리 모두 눈이 밝아진 소경처럼 신령한 빛 되신 예수님을 영의 눈으로 보십시다. 예수님을 주목하십시다. 그리하여 우리 영의 눈에 신령한 빛이 비쳐져 밝은 눈이 되십시다. 그 뿐만 아니라 영의 세계를 확실히 보게 됨으로 하늘의 신령한 축복을 보다 풍성히 누리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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