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룻기 1장 14절 말씀 묵상 [한삼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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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룻은 왜 시모(나오미)를 떠나지 아니하고 붙좇았습니까?

본문: 룻기 1장 14절,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이별의 시그널) 룻은 그녀(시모)를 붙좇았더라.


오늘날엔 이혼율이 참으로 높습니다. 성격차이나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쉽게 헤어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부부의 결속력(하나 됨, 연합)이 이렇게나 허술한지 경악할 정돕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신자의 경우에는, 올바르고 따를만한 롤 모델로서 룻(Ruth)이란 인물을 자주 언급하며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룻의 삶을 세밀하게 살핀다면 우리 세대의 여자들(아내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실 것입니다.


1. 오늘날 과연 남자들이 모두 실패하거나 죽어 몰락한 집안에서 당신은 계속해서 아내로 머물 수 있겠습니까? 이 집안은 아주 급작스럽게 시부(엘리멜렉)와 두 아들 형제(말룐과 기룐)가 죽게 됩니다. 이 가정의 본래 고향은 유다 베들레헴이었는데, 사사시대에 너무나 흉년이 들어서 모압 지방으로 이민을 했습니다. 얼마나 이민이 힘들었으면 시부(엘리멜렉)께서 먼저 돌아가셨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서둘러 두 아들(말룐과 기룐)의 결혼을 치렀던 것 같습니다. 오르바와 룻이 이 집안에 며느리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두 아들이 결혼한 지 약 십년 즈음에 자식도 없이 두 아들 모두 죽습니다. 이제 집안에는 여자들만 남겨집니다. 즉 시모 나오미, 며느리 둘 오르바와 룻이다. 어쩌면 이렇게도 남자들이 빨리 사라집니까? 룻기 1:1∼5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모든 남자들(남편과 두 아들)은 죽게 됩니다(실패를 넘어 소망의 부재). 곧바로 텅 빈 나오미로서 남겨 집니다!


2. 시모(나오미)까지도 삶의 실패를 인정하고 모압 생활을 끝내고 베들레헴으로 귀국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동서(오르바)와 저(룻)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라 합니다. 남자가 모두 사라졌으니 소망이 없다, 더 이상 여자에겐 소망이 없다,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여자인 시모께서 여자인 두 며느리에게 강력하게 완전히 소망이 끊어져버렸으니, 다른 안식처를 찾으라고 하는 겁니다. 참으로 딱하고 어처구니없는 형편입니다. 만일 자매 여러분께서 이런 처지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시월드가 싫어서 시금치도 먹지 않는데… 말이죠. 당연히… (돌아온 싱글로) 살아야 겠죠! 오르바는 그렇게(=시모에게 입 맞추고) 돌아갔습니다.


3. 그런데 룻은 시어머니를 붙좇아서=달라붙어(clung to her) 유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나오미에겐 고향이지만, 룻에게는 또 다른 이국생활이다). 혹시 여러분의 친정이나 여러분이 아는 사람에게 룻의 선택과 결단을 무슨 이유라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룻은 오로지 홀로 남겨진 시어머니를 돌보기 위해서(=남편을 잃고 두 아들을 잃고 텅 빈 시모)를 돌보고 봉양하기 위하여 따라온 것입니다. Is this reasonable? 한마디로 룻은 억척같은(철의) 여자의 삶을 선택하고 결단한 것입니다. 홀로된 시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인애(헤세드)가 발동된 겁니다. 아주 쉽게 인애(헤세드)라는 말은 이런 것입니다. 약한 자(늙은 시모)가 곤궁에 처해 있을 때 강한 자(젊은 며느리)가 그럴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보여주었던 충성심을 말합니다. 이삭줍기와 노동, 가사일… (의식주 해결) 모압 이민 실패에 대해 시모를 향한 베들레헴 여인네들의 입방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습니까?


특히 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룻이 이런 삶을 선택하고 결단한 동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아주 단순합니다. 홀로되고 어려움에 처해 텅 빈 시모(나오미)를 떠날 수가 없었다는 것, 그것이 전부입니다. 어려움에 처해 있는 자를 보고서 홀가분하게/기분 좋게 떠날 수가 없더라는 그것입니다. 바로 인애란 이것을 말합니다. 종교인은 이론이나 교리(신관, 믿음과 구원)를 많이 말할지 모르지만, 참된 신앙인에게는 긴급하고 필요한 행함(동정심이 발동되는 충성심)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입니다(어려움과 곤경에 처한 자를 외면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요 8: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던 여자만 남았더라). 실패와 어려움을 당해 쓰러지고 지친 우리 신앙인, 홀로된 신자를 예수님께서 떠나지 않으시고 그/그녀를 돕기 위해서 계속 주변에 계신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의 가정, 교회, 공동체에 인애가 없다면, 삭막함과 피폐함을 넘어서 심지어 죽은 모임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공동체에서 인애(헤세드)가 피어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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