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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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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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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장례식을 "천국 환송식"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실은, 믿는 그 사람의 영혼은 이미 주님과 함께 있는 시간에 천국 환송식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미 떠나간 사람을 위해 뒤늦은 환송식이라는 말은 시간에 맞지 않은 것 같다. 장례식의 무거운 분위기를 전환하자는 표현일까? 나는 장례식을 그냥 장례식으로 부르고 그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는 시간으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Funeral service를 어떻게 번역함이 옳을까?
장례식에서는 고인의 약력, 학력이나 경력을 알리는 것에 더해, 고인이 얼마나 훌륭한 삶을 살았는가를 소개하기도 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주님 앞에서는 학력도 경력도 내세울 사항이 아니다. 주님의 은혜로 그런 경력의 삶을 살수 있음을 감사할뿐이다. 사도 행전에서 기록한 대로, 하나님이 귀히 보시는 것은, 고인이 이 땅에 사는 동안, 예수님과 복음 전파를 위해 어떻게 살았는가, 다비다처럼 이웃 속에 어떤 선한 행적을 남겼는가, 그것이 하나님에게는 중요한 관심사라고 생각한다. 그가 세상에서 어떤 지위, 어떤 부를 가졌는지는 오히려 책임을 묻는 근거가 될 수 있다. 그 부와 권세와 지위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주님이 물을 것 같다.
장례식 설교나 기도하는 분 중에는 고인의 죽음 앞에서 감사의 이유를 언급하기도 한다. 어떤 분은 자식을 보내고 장례식을 치루는 분도 있다. 오늘 장례식이 그러했다. 먼저 떠나간 외아들은 37세의 의사로 미군에서 근무하다가 순직했다. 이 아들을 먼저 보내는 부모의 마음을 어떤 말로 설명하고, 위로할 수 있을까? 그 부모의 마음이 더 슬플까, 그 젊은 미망인의 마음이 더 슬플까? 아버지를 보내는 어린 아들의 슬픔이 더 클까? 젊은 미망인은 내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유족의 슬픔을 헤아려 감사의 이유룰 설명하기에는 조심스럽다.
성경은 결혼식에 참여하는 것보다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이 더 좋다고 가르친다. 결혼식은 축제의 자리로 모두 흥겹고 즐거움의 자리라면, 장례식은 슬픔과 침묵, 깊은 묵상의 자리이다. 사람은 결혼식에서보다 장례식에서 삶의 본질을 깊이 생각하고 자신의 삶과 관련하여 중요한 진실을 배우게 된다. 이 세상에 오는 순서는 앞뒤가 있어도, 가는 순서는 정해진 것이 없다고 한다. 누구나 먼저 갈 수 있다. 근래 100세 인생 운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인생이 자신의 생을 말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내 생명은 내가 주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삶을 이끌어 준 중요한 사실은 어려서부터 죽음을 의식했던 것이다. 언제 내 삶이 끝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고민하다가 중 3, 6월초, 발만 발만 교회를 찾아갔다. 교회를 찾아간 이후로는 죽음을 생각하기 보다는 이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찾다가 하나님을 섬기는 길로 들어섰다. 죽음의 문제는 죽음과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앎으로 해결된다. 그 하나님을 모시고 세상을 사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세상의 삶과 삶 너머의 길은 하나님과의 동행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고난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자기가 몸으로 겪어야 정신을 차리고 대책을 찾기 쉽다. 장례식은 나 자신의 죽음을 미리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내 죽음을 미리 보고,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찾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은 죽음 앞에서 그 의미를 찾게 된다. 내 생명의 가치를 실감나게 하기 위해 항상 우리 앞에 있는 죽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저 죽음 너머의 길을 찾지 못하면, 이 땅에 산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은 죽음의 길을 가는 우리들에게 그가 동행해 주심을 의미한다. 먼저 가시고 부활하신 그가 죽음의 길을 가는 우리와 동행해 준다는 이 생각이 큰 위로가 된다. 이 세상의 여정에 함께 해주시는 것처럼, 삶의 마지막 길에도 동행해 주심을 믿는다. 그 약속과 믿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을 삶답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보람되고 약속이 있는 삶일까? 신자라면 꼭 대답해야 하는 질문이다. 오늘 장례식에 참석해서 배운 것은 "산 제사(Living sacrifice)로 드리는 삶이라는 것이었다. 창조주 하나님이 자신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고 생명을 주셨다면, 우리도 우리의 생명을 제물로 드림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죽어서 드리는 "죽은 제물"이 아니라, 살아 있을 때 죽은 자처럼, 나를 주장하지 않고 드려 사는 것이 "산 제사"로 드리는 삶이라 믿는다. 그렇게 드려 살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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