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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불확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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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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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지인 목사님의 유일한 아들이 미군의 군의관으로 해외에서 근무하던 중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들은 후 마음은 계속 눌림과 우울함이 머물고 있다. 그 슬픈 소식이 삶의 불확실성을 다시 자극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불확실성이 가득하다. 우리의 안전에 보장된 것은 하나도 없다.
작년 초 나도 차량 사고를 당하고는 황당한 느낌을 떨치기 쉽지 않았다. 세상에는 부주의한 사람들, 정신을 내놓고 사는 사람들이 있어, 알게 모르게 주변에 피해를 준다. 거리에는 항상 그런 위험이 깔려 있어, 운전하는 일이 편안하지 않다. 그런 경험 이후 삶의 불확실성이 피부로 다가와 긴장하며 살게 된다.
세상에서 사고와 재난은 잠들지 않고 항상 어디서나 희생자를 찾고 있다. 이런 불확실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람은 스스로 자기를 방어할 수 없다는 고백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제까지 살면서 정말 아차 싶은 때가 여러번 있었다. 도로 위에서, 10미터 높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작업을 하면서, 심지어 겨울 철 얼어붙은 땅위 차에서 내리면서도 아차한 순간을 맞았었다.
몸을 다치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손이 붙들어 주셨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의로와서도 아니다. 안전이 나의 의로움에 근거한다면 벌써 어려운 일을 만났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 긍휼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받게된 하늘의 인자와 성실을 마음으로 감사하게 된다.
그러면 정작 희생을 당한 분들에 대해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자녀를 잃어 버린 부모의 마음을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우리는 마땅한 말을 찾을 수 없다. 욥이 설명할 수 없는 고난 속에 빠져 있었을 때, 친구들이 와서 했던 말은 오히려 욥을 아프게 했다. 하나님은 그 친구들을 책망하셨다. 무지한 말로 충고하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로와서 이날까지 보호받은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 주변에 해를 받은 분들은 무슨 죄때문이라 말할 수 없다. 우리 주변에 거짓과 불의로 사는 사람이 멀쩡히 살아 있는 것은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을 우리 지식으로 다 설명할 수 없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전개해 가는 드라마의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한 부분만 보고 판단할 수 없다. 말을 아낄 수 밖에 없다. 제일 못난 사람은 이런 신비한 부분을 제한된 지식으로 설명하는 사람일 것이다. 때론 조용한 침묵과 기다림이 하나님 앞에서 지혜일 수 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은 높일 자를 높이시고, 낮출 자를 낮추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현실 앞에 마음을 낮추고 하루 하루 우리 생명의 보호자의 이름을 부르며 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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