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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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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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옛날 대학교 졸업식 풍경이 떠올랐다. 그 당시 독재자 대통령 앞에서 "둔마가 채칙을 복망한다(우둔한 말이 채찍을 업드려 바란다)"는 아부성 발언을 했던 그 당시 유모 문교부 장관이 졸업식 축사를 위해 나타났었다. 그가 단상에 올라오르자 대학교(문리대) 교정에 모인 졸업생들이 "둔마, 둔마" 소리를 지르며 어떤 졸업생들은 의자를 뒤집어 앉았다. 엄숙한 졸업식장이 소란 속에 끝났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은 그 목회자에게 신학교를 물려 준다고 했는데, 그 말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이다. 학교를 한 사람 마음대로 물려줄 수 있는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정말 그렇게 말했는가, 물었더니 "농담"으로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런 말을 농담으로 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그런 말을 들었어도 그 분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마음에 상처를 받은 것 같지도 않았다.
성경에는 양심이 화인 맞은 사람에 대해서 말씀한다. 이런 사람들은 양심이 불에 탄 사람같아서 외식함(위선)으로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딤전 4: 2). 그런 사람들은 무슨 비난과 욕을 들어도 그 마음에 전혀 감각이 없다는 말씀으로 들린다. 양심의 가책을 모르고 거짓과 불법 속에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교회 세계 존재한다는 것은 놀랍고 슬픈 일이다.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는 것은 본래 타락한 양심이 새롭게 지음을 받고, 착한 양심으로 살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한다. 믿는다 하면서 거짓과 불법 속에 사는 것은 전혀 하나님의 사람답지 않고, 거듭나지 못한 증거일 것이다. 사도 바울은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충구한다.
물질과 눈 앞의 유혹 앞에 믿음과 양심을 저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따르는 까닭 중에는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이다. 신실하다는 말은 거짓이 없고 진실하다는 뜻이다. 그 약속이 신실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요동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약속을 의지해서 살 수 있다. 더 나아가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신실하게 살아야 한다. 거짓없는 삶, 진실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됨이 증거되어야 한다.
오래 전부터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믿음과 깨끗한 양심"으로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물질보다도, 눈앞의 이익보다도 이 믿음과 양심을 지켜 살 마음을 주신 것 같다. 그래서 그 기도를 오늘도 계속한다. 세상 사람 보기에는 소심하고, 주변머리 없는 사람으로 보일 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무엇 보다도 진실하게 살고 싶고, 깨끗한 양심을 따라 살고 싶다. 그래서 나같은 사람은 공중 앞에서 야유를 받으면 견디기 힘들 것 같다. 아직까지 그런 비난이나 야유를 받지 않고 살게 된 것도 감사할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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