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가치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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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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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짜르트나 슈베르트를 생각할 때 그들의 끊임없는 아름다운 악상에 놀라게 된다. 그들을 천재라고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수 백년 전 그들이 작곡한 곡이 오늘에도 마음을 울리며 감동과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그들은 행복한 생애를 산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예술이란 불행과 고통 속에서 창조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행복한 날에는 별로 생각하지 않다가도 불행과 고통을 경험하면서 삶에 대해, 세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음악 세계의 창조는 범죄한 가인의 후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특이하다. 가인의 후손 중에 유발이라는 자는 수금과 퉁소를 잡은 자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다.
예술 세계의 가장 귀한 가치는 순수함이라 믿는다. 아름다움 자체를 추구하는 정신이 아니고는 예술은 곧 상업주의나 이익의 수단이 되고, 장사꾼의 정신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이다. 옛날 프린스턴에서 목회할 때 멀리 필라델피아에서 올라와 반주를 해 준 장로님이 계셨다. 이분은 반주하는 것을 위해 멀리 올라오고 사례도 받지 않았다.
부인은 필라델피아에서 델리 가게를 운영하시다가 어느 날 흑인 권총 강도가 들이 닥쳐 그 후 문을 닫고 멀리 North Calolina로 이주하셨다. 그 장로님은 경상도 분으로 참으로 순수한 분이었다. 옛날 한국에서 음악 교사를 하셨다고 한다.교회 반주하는 것이 좋아서 한 시간 운전을 해서 제일 먼저 교회를 찾아 오시는 마음이 귀하게 여겨졌다.
예술 세계 종사하는 분도 그렇고 목회하는 분도 그렇고 그런 사역의 중요한 것은 순수함과 아름다움과 진리의 추구라 할 수 있다. 아름다움 자체를 추구하는 것과 그것을 상업화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목회자들도 사실 두 부류가 있는 것 같다. 정말 하나님을 섬김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도 있고, 그런 직분을 자기 신분의 상승이나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 세계의 직분을 찾고 그 자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 그 속은 텅 비어있지 않을까, 짐작한다.
오늘날에는 모든 것을 수량 속에서 평가한다. 장사하는 사람은 얼마를 벌어들였고, 무슨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 고객을 가졌는가로 판단하고, 연예인은 얼마나 많은 팬을 가졌는가로 평가된다. 목회자들은 교인의 수량으로 자기 가치를 평가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싶다. 마치 많은 주식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교인은 주식이 아니다. 한국으로 부임해 간 어떤 목사님은 그 목소리가 달라져 있는 것을 들었다: 목소리가 낮고 무게있게 말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평소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진정한 가치는 어디 있을까?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귀하여 여기실까? 하나님은 그 지위를 막론하고 겸손한 자를 귀히 여기시는 것이 틀림없다. 겸손이란 자기 분수를 아는 것을 의미한다. 한낫 피조물이요, 풀과 같고,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는 자신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언제든지 안개처럼 사라질 수 있음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부르시고, 그들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순수한 자를귀히 여기신다. 예수님이 많은 군중 속에서 삭개오를 찾고 부르신 까닭은 그가 자신의 약점(키가 작은 것)과 욕먹는 직업(세리 장)을 갖고서도 예수님을 찾았던 것을 귀히 여기셨다. 사람이 바르게 살려는 의지나 실천이 없이는 하나님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의롭게 살려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기 마련이다. 삭개오 그 이름도 "순수함"을 의미했다.
오늘날 별 것 아닌 성취 속에서 자신을 높이는 자들은 하나님을 만나거나 하나님의 쓰임을 받기 합당하지 않다고 믿는다. 무슨 대학교 무슨 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는 이력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강대상에 올라가 무슨 대학에서 무슨 학위를 받았다는 자기 소개를 뻔질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는 합당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소개가 자신의 충만함의 표시가 아니라 내적 공허함의 표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믿음이 충만했을 때 돌맹이로 골리앗을 물리쳤지만, 그가 사울에게 쫒기며 약해졌을 때 옛날 버렸던 칼을 다시 찾았다. 그 모습은 뭔가 약하고 공허해 보인다. 우리는 어디서 진정한 가치를 찾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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