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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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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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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지인 목사님의 자제분이 해외 근무 중 순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에 있었을 때 가까이 지냈고, 집 사람은 그 학교의 교사로 십여년 근무했었다. 이 세상에서 착하게 바르게 살려는 목사님이셨다. 얼마 전 미국에 오셨을 때도 함께 식사하며 오랜 시간 애기를 나누었다. 그 목사님의 아들이 미국의 의사로 해외 복무 하다가 먼저 떠나갔다.
부모의 마음이 어떠할지는 도무지 알 수 없다. 부모의 입장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함께 예배드리는 분에게도 그런 아픔의 경험이 있다. 아직도 쓸어내리지 못한 아픔 , 슬픔을 안고 살고 계신다.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무슨 위로의 말을 할 수 있을까?
혹, 그런 경험을 가진 분들은, 자기 독생자를 희생시키신 성부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리지 않을까?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은 하나님이 친구처럼 여기는 아브라함에게 독생자를 잃어 버린 하나님의 마음을 계시하기 위함 아니었을까?
사람의 여러 슬픔, 아픔 중에 자기 자녀를 먼저 떠나 보내는 부모의 마음보다 더 큰 슬픔이 있을까? 그 아픔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 것이다. 오래 전 어떤 목사님의 자녀가 새벽 길에 나갔다가 먼저 떠나갔다. 그를 위로한다고 주변에서는 그 자녀는 잠시 이 세상에 소풍을 나왔다가 떠나갔다고 했다. 슬픔은 슬픔으로 받아 드림이 옳다. 다른 말로 외곡시키는 것은 그 희생을 값싸게 취급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 삶에는 불확실한 것, 예측불가능한 것이 너무 많다. 하루를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이런 비보를 들으면서 우리가 하루 하루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사실을 말하면, 하나님이 붙들어 주셔서 만물이 그 자리에 서 있게 된다. 세월이 지나갈수록 평범한 일상이 큰 축복으로 다가온다.
평안이 우리의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의 축복은 하나님을 위한 것으로 다시 드려져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교회 안에는 믿음의 이름으로 자기 만족과 가족의 평안을 우상처럼 좇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을 향한 빚으로 여기며 살아야 한다. 은혜는 우리가 갚아야 할 빚으로 살지 않으면 평생 자기 중심적인 우상 숭배의 삶을 떠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대양 건너 부모의 슬픔이 여기까지 전해진다. 세상에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 많다. 혹 하늘 나라에서 숨겨진 뜻이 드러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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