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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기쁨이 됩시다 - 육민호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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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7월 12일(주일) 오후 5시에, 뉴저지시온제일교회에서 열린 뉴저지한인장로연합회 주최 제29회 영적 대각성 기도회에서 선포한, 육민호 목사의 설교를 요약한 것이다.


제목: 하나님의 기쁨이 됩시다

본문: 누가복음 15장 11-24절

설교: 육민호 목사(주소원교회)


오늘 뉴저지한인장로연합회 영적 대각성 기도회에 참석하신 모든 장로님들과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감사드립니다.


육귀철 장로님께서 저를 소개해 주셨습니다만, 저의 사역의 특징은 하나입니다. 시키시면 합니다. 하나님께서 제 마음 가운데 감동을 주시면 순종하려고 합니다. 첫째 이유는 아직 젊기 때문이고, 둘째 이유는 그것이 제 삶의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어떤 말씀을 전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하나님의 기쁨이 됩시다”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이 자리는 단순한 예배의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깨우시고 각성시키시기 위해, 장로연합회를 통하여 “영적 대각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이 자리에 불러 주셨다고 믿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 목회자들, 그리고 영적인 리더로 세움 받은 장로님들이 죽어 가는 이 땅 가운데 가장 먼저 앞장서서 해야 할 일은 바로 영적 대각성입니다.


그렇다면 영적 대각성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의 대각성 운동에서부터 평양 대부흥 운동에 이르기까지 영적 대각성이 일어났던 중심에는 언제나 말씀과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회개 운동이 먼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의 작은 불꽃이 큰 불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작은 모임으로 모여 있지만, 주님께서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그 약속을 붙들고 묵묵히 이 자리를 지킬 때, 이곳에서 피어나는 작은 영적 불꽃이 뉴저지를 살리는 놀라운 능력이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 시작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요즘 시대가 어떻습니까? 기준이 사라졌습니다.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옳은지 말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법에도 통상관례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전부터 이렇게 해 왔으니 지금도 이것이 맞다”는 기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그런 통상관례마저 무너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 사역을 하면서 늘 품고 있는 기도 제목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 이 땅 가운데 우리의 기준 삼을 것이 사라졌습니다. 더 이상 이 땅에서는 무엇이 선인지 알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직 우리의 기준이요, 삶의 이유요, 삶의 목적이요, 삶을 판단할 수 있는 중심은 말씀밖에 없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 안에서, 성령의 지혜로 바른 것을 판단하기를 기도합니다. 선택의 순간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찾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있을 것을 믿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대적으로도 그렇지만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의 감격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기도의 불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이 더 중요한 시대 속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오늘 말씀하십니다.


“돌아오라. 내게로 돌아오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탕자의 비유는 단순한 한 아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아들들이요, 자녀들이요, 딸들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녀 된 우리가 어떻게 깨어나야 하는지, 어떻게 돌이켜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돌아서야 하는지를 이 탕자의 비유가 보여 줍니다.


오늘 이 말씀을 우리의 삶에 비추어 보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귀한 뜻을 깨닫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천지창조라고 말하면 너무 먼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천지창조를 묵상할 때마다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 날부터 다섯째 날까지 하나님의 일하심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 목적은 여섯째 날 창조된 사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1장 27절은 그 이유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사람에게 이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며 충만하게 할 권리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리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무엇을 원하셨습니까? 이사야 43장 2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갖추어 놓으신 에덴동산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고, 다스리고 정복하며, 그 안에서 기쁨을 누릴 때, 하나님은 그 기쁨을 당신의 영광으로 받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지으신 목적은 우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목적은 바로 우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기쁨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하나님은 그 기쁨이 우리 안에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기쁨의 일부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 잃어버린 기쁨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입니다.


죄로 단절되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야 할 우리가, 죄성으로 인하여 날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하나님의 관심과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말씀 속의 모든 대상을 저 자신으로 읽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부르시고, 환난 가운데에서도 그를 붙드셨던 말씀이 곧 내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믿을 때, 욥이 누렸던 회복의 축복도 우리의 축복이 되는 줄 믿습니다.


사람들은 좋은 일이 생기면 “주의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어려운 일이 닥치면 “사단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물론 사단의 역사로 인해 우리가 환난을 당하고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사단조차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인 우리를 절대로 건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은 하나님 안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장로연합회 회원 여러분, 그리고 성도 여러분, 이 시간이 우리를 기쁨으로 여기시는 하나님의 기쁨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있는 상태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있는 상태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매주 주일예배를 드린다고, 새벽예배를 열심히 다닌다고, 수요예배를 지킨다고, 헌금을 드린다고, 영적 대각성 기도회에 나와 무릎을 꿇는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완전히 붙어 있다고 누가 자신할 수 있겠습니까?


사단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가 깨어 있지 않으면 하나님과 붙어 있다고 착각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둘째 아들을 보십시오. 그는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그 당시 아버지가 살아 계신데 재산을 요구하는 것은 매우 큰 불효였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단순히 재산을 달라는 요구가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 관계를 끊겠습니다. 이제 아버지가 아니라 내 뜻대로 살겠습니다.”


에덴동산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악을 판단하는 주권은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그것을 스스로 가져오려 했습니다. 이제 내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단절이 생겼습니다.


사랑하는 장로연합회 회원 여러분, 이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하나님보다 내 뜻을 먼저 세우는 것, 이것이 바로 영적인 분리요 영적인 잠듦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교회 안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먼 곳에 가 있지는 않습니까? 사역은 하지만 기쁨이 없고, 예배는 드리지만 감격이 없고, 기도는 하지만 갈망이 사라진 지 오래된 것은 아닙니까? 이것이 바로 영적으로 잠든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한 명이 모여도 좋고, 두 명이 모여도 좋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이 자리에 나와 주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 자리는 뉴저지를 살릴 수 있는 영적 각성의 불씨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우리말 가운데 “마중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물을 길어 올릴 때 처음에 물을 조금 부어야 물이 솟아납니다. 그 물이 바로 마중물입니다. 마중물은 잠시 부어지고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 물을 통해 우물의 생수가 솟아오릅니다.


마중물은 자신이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과 영원한 생수가 솟아오르게 합니다. 이것이 마중물의 원리입니다.


우리 장로연합회가 매달 잊지 않고 드리는 이 기도회가 영적인 마중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모임이 뉴저지 지역을 살리고도 남는 귀한 생명수의 시작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과 끊어져 있지는 않은가?” 늘 자신을 돌아보고, 각성하고, 깨달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으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로 돌이켜 나아가야 합니다.


본문 14절부터 19절을 보면, 모든 것을 잃은 아들이 돼지우리에서 쥐엄 열매를 먹고자 하다가 스스로 돌이킵니다.


돌이킨다는 것은 회개입니다. 회개는 단순히 나의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고백일 수는 있지만, 진정한 회개는 돌이키는 것입니다.


회개에는 믿음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결단이라는 말은 끊어내고 단단히 묶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한다고 기도하지만, 그 회개에는 반드시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마음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탕자는 스스로 돌이켜 아버지께로 돌아갈 생각을 했고, 결국 그의 발걸음을 이끌어 아버지께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완벽함이 아닙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해진 뒤에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해졌을 때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의 사랑을 확증해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방향을 바꾸는 것, 기도를 다시 시작하는 것,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 하나님보다 앞세웠던 것들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먼저 한 걸음을 내딛는 것, 이것이 바로 돌이킴이요 회개입니다.


영적 대각성 운동의 가장 근본은 회개로부터 시작됩니다. 장로연합회의 영적 대각성 기도회 가운데 이 돌이킴의 역사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장로연합회 회원 여러분, 멈춰 서지 마십시오. 언제든 주님 앞에 돌이켜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의 결단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20절에서 24절을 보면, 제가 참 좋아하는 표현이 나옵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탕자가 아직도 거리가 먼데, 누가 먼저 달려옵니까? 아버지가 먼저 달려옵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아들의 발걸음은 무거웠을 것입니다. 그는 “나를 아들로 받아 달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라고 고백할 만큼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를 향해 아버지가 먼저 달려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변화된 후에야 기다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돌아서기만 하면 먼저 달려오시는 아버지이십니다.


돌아온 아들에게 아버지는 무엇을 해 주셨습니까?


첫째, 제일 좋은 옷을 입혔습니다. 이것은 명예의 회복입니다.

둘째, 손에 가락지를 끼웠습니다. 이것은 신분의 회복입니다.

셋째, 발에 신을 신겼습니다. 이것은 자유의 회복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대각성 운동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될 때, 우리 가운데 명예가 회복되고, 신분이 회복되고, 자유가 회복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명예를 회복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신분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미국 시민권이든, 한국 시민권이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제가 얼마 전 들은 이야기입니다. 한 권사님이 골수암으로 한국에 가셔서 골수이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골수이식을 받으면 혈액형이 바뀔 수 있다고 합니다. 원래 AB형이었던 사람이 O형 골수를 이식받으면, 그때부터 O형의 피가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영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피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분은 이미 회복되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예전의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사람들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우리는 자유한 사람들입니다. 그 자유를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기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매 순간 무엇인가에 갇혀 있고 묶여 있는 것 같은 답답함 가운데 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한 사람들입니다.


이 온 우주 만물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무엇인가를 이루어 내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게 허락하신 일에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순종할 때, 부족한 저와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온전하심이 이루어지는 줄 믿습니다.


물론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가는 동안 얼마나 고민했겠습니까? “여기가 맞나? 저기가 맞나?” 그러다가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자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곳에 있었는데, 사람의 생각이 들어가니 다른 길로 가게 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실수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서 은혜를 받습니다. 실수해도 괜찮습니다. 틀려도 괜찮습니다. 아브라함은 분명히 실수했고 틀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를 보호하시고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볼 때, 우리의 경험과 생각 때문에 자칫 잘못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다시 회복시키시고 다른 길로 인도하실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걸어가는 발걸음을 주저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만 따지다가 멈추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그럴 때 예배가 회복됩니다. 그럴 때 잃어버린 기도가 회복됩니다. 그럴 때 잃어버렸던 정체성이 회복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선포하십니다.


“내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 돌아왔다.”


탕자를 맞이한 아버지의 기쁨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입니다. 탕자였던 우리가 하나님의 기쁨으로 다시 회복되어 돌아오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간절히 바라고 계신 일입니다.


사랑하는 장로연합회 회원 여러분, 여러분의 모임은 헛되지 않습니다. 이 모임은 하나님의 기쁨을 이루어 가는 복된 모임입니다. 이 시간을 더욱 복되게 여기고 귀하게 여기십시오. 하나님 앞에 진정 쓰임 받는 뉴저지의 장로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랜 시간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는 어디 있느냐?”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내가 너를 향해 달려가겠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나 된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한 사람이 모였다는 것,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오늘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은혜로 진정한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 한 주간도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음 달 다시 모이는 그날까지 승리의 기쁨과 은혜의 소식을 많이 전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잊지 않고 장로연합회 제29회 영적 대각성 기도회로 주님 앞에 무릎 꿇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주시는 질문, “너희는 어디 있느냐”는 그 질문 앞에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깨닫게 하옵소서. 진정 하나님의 기쁨의 이유가 나였음을 고백하게 하시고, 날마다 하나님의 기쁨으로 온전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순종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게 하옵소서.


주의 능력과 은혜 가운데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하시고, 사랑하는 장로연합회 모든 회원들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충만히 부어 주옵소서.


모든 것을 감사드리며, 우리가 하나님의 기쁨 되기를 원하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동욱 기자 ⓒ 복음뉴스(BogEu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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