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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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듣고 고개도 잘 끄덕일 줄 아는 목사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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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영관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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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 78번 서쪽방향 고속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주 경계를 넘어 펜실베이니아의 이스턴(Easton, PA)이 나옵니다. 이 작은 도시에 아이들이 많이 찾는 크레용 회사, 크레욜라(Crayola) 박물관이 있습니다. 박물관 한쪽에는 이 회사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된 도표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먼지 덜 나는 분필’(Dustless Chalk)이 유독 눈길을 끌었습니다. 1902년, Binney & Smith 회사는 현직 교사들의 고충과 필요를 듣고 먼지가 덜 날리는 학교용 분필을 개발했습니다. 당시 많은 교사들이 분필 먼지로 인해 호흡기 질환, 알레르기, 눈의 자극 등 만성적인 건강 문제를 겪고 있었습니다. 이 제품이 출시되자 큰 인기를 끌었고, 1904년 세인트루이스 세계 박람회에서 ‘최고 품질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그 명성을 바탕으로 회사는 승승장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제품은 한 화학자가 어머니가 빵을 만드는 모습을 보다가 우연히 영감을 얻어 개발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분필 먼지로 고생하던 많은 교사들이 먼지 지옥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우연한 계기라 하더라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때 예상치 못한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몇 년 전, 목회 상담 과정의 초급 단계를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의도치 않게 시작한 공부였지만 돌이켜보면 제 목회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 자세를 배운 기간이었습니다. 비록 제 전공이 아니었기에 지식도 짧고, 지금은 머릿속에 남아 있는 정신분석학자들의 이론도 희미하지만, 분명하고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경청과 공감’입니다. 교수님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강조하셨던 두 단어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사실, 상담 공부를 하기 전과 비교하면 저 자신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목사랍시고 설득하려고 하고, 주장하기 일쑤였습니다. 아마도 상대방의 말을 듣기보다, 내 주장이 더 옳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인식이 깊이 박혀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공감하기보다는, 그저 내 차례가 오면 무슨 말을 할지 머릿속에서 바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듣지 않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당신이 틀렸으니 내 말을 들으시오’라는 태도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잘 들으면 치유가 일어나고, 맞장구를 쳐 주면 회복됩니다. 한발 더 나아가 함께 공감하고 마음을 나누면 금상첨화겠지요.


몇 주 전, 달라스에서 열린 목사회 회의에서 1박 2일 동안 같은 호텔방을 쓴 목사님과 개척 목회의 소회를 나누었습니다. “목사님, 지난 15개월을 돌이켜 보면, 마치 얇은 살얼음 위를 걷다가 점점 두꺼운 얼음을 밟고, 이제는 땅을 딛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분명 땅까지 왔다고 생각했는데도, 때때로 다시 얼음 위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이 말을 들은 룸메이트 목사님께서 가슴에 와닿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박 목사님, 제가 보기엔 다시 얼음 위로 돌아간 게 아닙니다. 분명 땅을 계속 걷고 계세요. 다만, 굳은 땅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물기가 많은 진흙 같은 땅일 수도 있어요. 그 물기 때문에 다시 얼음 위로 돌아갔다고 착각하는 것뿐입니다. 계속 걸으세요. 걷다 보면, 그 진흙도 머지않아 단단한 땅이 될 것입니다.”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지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이야기를 잘 들어준 그 목사님께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잘 듣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얼마 전, 어느 집사님이 문자로 Pastor와 Minister의 차이를 질문했습니다. 손님 중 한 분이 자신을 Minister라고 소개하면서 궁금해졌다고 하셨습니다. 담임목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고 질문해 준 성도님의 마음이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저도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기에, 인터넷을 뒤져가며 답을 찾아보았습니다. 나름 찾아본 결과, 두 단어의 차이는 ‘목양하는 성도가 있느냐’의 여부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 말이 맞다면 저는 분명 Pastor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맡기신 양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양들을 잘 돌볼 의무와 책임이 목사(Pastor)에게 있습니다. 그 책무의 시작과 끝은 성도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충분히 공감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설교를 잘하려고, 말을 잘하려고 이만큼 공부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잘 듣고, 잘 공감하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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