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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유니폼, 지워지지 않는 더 나은 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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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영관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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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FIFA 월드컵 축구가 한창입니다. 이번 대회 48개국 중 가장 약체로 평가받는 ‘아이티(Haiti)’ 축구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이 대회 전부터 세간의 큰 관심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원래 아이티 대표팀의 유니폼 오른쪽 아래(골반 부근)에는 1803년 ‘베르티에르 전투(Battle of Vertieres)’를 형상화한 실루엣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전투는 아이티 혁명군이 나폴레옹의 프랑스 원정군을 상대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어, 사실상 프랑스의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이 승리를 발판 삼아 1804년, 세계 최초의 흑인 공화국인 ‘아이티’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FIFA는 경기 장비에 정치적, 종교적, 개인적 구호나 이미지를 담을 수 없다는 규정을 이유로, 이 역사적인 그림을 유니폼에서 삭제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베르티에르 전투 당시, 나폴레옹이 흑인 노예 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보낸 5만 명의 프랑스 원정군 중에 약 5천 명의 폴란드 군인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당시 폴란드는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에 의해 영토를 분할당해 나라를 잃은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프랑스를 도우면 나폴레옹이 조국 폴란드를 해방시켜 줄 것이라 믿고 참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아이티에 도착해 보니 실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프랑스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이는 아이티인들의 처지가, 나라를 잃고 방황하는 자신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낀 500여 명의 폴란드 군인들은 결국 프랑스군을 이탈해 아이티군에 합류했고, 도리어 프랑스군에 맞서 싸웠습니다. 1804년 아이티가 독립한 후, 이들은 ‘카잘(Cazale)’이라는 마을에 정착했으며 지금도 그 후손들이 그곳에 살고 있습니다.


     1800년대 초, 변변한 무기도 없던 아이티의 흑인 노예들이 세계 최강 프랑스군과 맞선다는 것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습니다. 그들이 바라던 해방은 현실적으로 허상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폴란드 군인들 역시 강대국의 힘에 의지해 조국을 되찾으려 했으나, 냉혹한 현실 속에서 자신들이 그저 총알받이로 이용당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이때 폴란드 군인들은 안락하고 안전한 프랑스 군인의 신분을 포기하고, 전멸할지도 모르는 아이티 군인들과 연대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들의 결단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하물며 하늘의 영원한 상급을 기다리는 기독교인들이 세상의 안락함과 타협한다면, 과연 우리의 믿음이 온전히 남아있을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정치적 신념과 양심으로 이룬 지상의 해방도 이토록 처절하고 치열한데, 믿음으로 바라보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와 죄로부터의 자유를 위해 영적 전쟁을 치르는 우리는 얼마나 더 치열하게 싸워야 하겠습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이 영적 전쟁을 통해 바라보아야 할 궁극적인 목표를 이렇게 제시합니다.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 11:16)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더 나은 본향’, 곧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성’을 향해, 오늘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전진하는 주님의 신실한 제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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