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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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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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도 시대의 악함을 말씀하시면서, 그 예로 노아의 시대를 예로 드셨다. 노아의 시대는 어떤 시대였던가?
장수의 시대였다. 그 시대 사람의 수명은 구백세가 넘었다. 우리보다 열 배나 더 살았다. 사람의 수명이 길면 뭐가 달라질까? 죽음에 대한 생각이 엷어질 것 같다. 살아야 할 수명이 천 년 가까울 때, 자칫 사람들은 죽음을 망각하고 살기 쉬울 것 같다. 그러나 사람은 죽음을 의식함으로, 삶의 자세가 달라진다. 죽음을 대비하는 마음으로 삶으로, 함부로 살지 못하고, 책임적이고 생산적인 삶을 소망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노아의 시대를 말씀하시면서, 사람들은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살았다 한다. 건강한 남녀가 상대방을 찾고 만나 가정을 꾸리고 사는 일은 삶의 기쁨 중 하나이다. 사람들은 남녀 이성을 찾고 사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한다. 이성을 만나 사랑을 나누며 육체의 즐거움을 찾는 것은 사람 사는 이유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시대를 분별하지 못했다. 하나님이 그들을 방치하지 않고, 물로 심판하여 쓸어 버릴 것을 경고하고 실행하셨다. 전 세계 거민을 홍수로 심판한다는 것은 대단히 두려운 일이다. 어른이나 어린 아이나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않고 방주로 피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물 속에 수장되고 말았다. 온 가족이 몰살되는 것은 흔한 일이었을 것이다. 노아의 8명의 가족 말고는 모두가 수장되고 죽고 말았다.
오늘날 시대의 변화를 보면서, 노아 시대가 생각난다. 국제 사회가 양육강식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 같다. 그래도 지난 세기에는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면서, 살았다. 자유민주주의 공산주의 세력으로 나뉘어 공동체 안에서 서로 돕는 시대를 살았었다.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이제 자유 민주주의가 번성하나 싶었는데, 여기 저기 독재적 지도자의 출현으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 자유주의 시대 법 위에 군림하는 자가 나타난다는 것은 몹시 위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힘없는 나라 민족이 겪어야 할 절망이 안타깝다. 한국은 참 좋은 시대, 국제 사회의 도움을 받아 공산화를 피할 수 있었다. 지금 시대 그런 일이 있으면 누가 도우려 찾아올까? 저 우크라이나는 어떤 끝을 맞게 될까? 안타까운 생각이 앞선다. 각자 도생의 삶을 사는 것이 유행할 것 같다. 그런 시대에는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이 고통을 받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수년 내 대만은 어디로 갈까?
한 사회가 문명 사회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어떤 이상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 인간의 생명을 중시하고, 사회 속의 공의를 세우며 살아야 한다. 거기에 대해 힘없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없으면 또 다시 공산혁명과 같은 세력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시대는 물질과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힘없는 이웃을 쉽게 내버리려 한다. 힘없는 자들에 대한 국제 사회의 강포가 아닌가?
이 시대를 보면서 갖는 생각은 이 세상에 점점 기대와 소망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역사는 발전한다고 하지만, 영적, 정신적 차원에서 역사는 후퇴의 길을 가고 있다. 그 한 가지 예로, 사람들에게 이웃에 대한 배려가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이 점점 더 이기적이 되어가고, 거짓과 탐욕이 절제되지 않고, 약자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가고 있다. 각자 도생의 삶, 양육강식의 삶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같다.
이 시대의 혼란을 보면서, 구세주 예수님을 더 기다리게 된다. 사람의 의지나 힘으로 개혁할 수 없는 이 세상을 주님께서 속히 오셔서 변화시켜 주시기를 마음으로 기도하게 된다. 주 예수님, 어서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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