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결한 양심과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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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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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곙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 그리고 믿음의 삶에 있다고 가르친다(딤전 1: 5) 성경을 배우는 목적이 바로 거기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
옛날 한국의 신학교에 다닐 때, 강의 제목이 "갈라디아서"여서, 흥미를 가지고 그 과목을 선택, 수강하였다. 갈라디아서는 서신서 중에도 중요한 주제와 교리를 취급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강의가 계속되는 데도, 강사는 이 갈라디아서가 남 갈라디아서인가, 북갈라디아서인가로 몇 시간을 강의했었다. 그때 속으로 그게 남 갈라디아면 어떻고 북 갈라디아면 어떤가, 그 책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 반문하면서 앉아 있었던 적이 있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의 열매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와 삶은, 속으로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은 그가 믿는 바에 따라 행동하고 산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신자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과 그의 거룩한 말씀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가 세상을 다스리고 섭리하는 것과, 장차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믿는다. 그 말씀은 세상이 변하여도 없어지지 않는 살아 있는 말씀이다.
세상은 시대마다 믿는 것이 달라진다. 종교 개혁 이전만해도 서구 사회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삶의 중심이 되었다. 무슨 직업에 종사하든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종교 개혁 이후 계몽주의를 지나면서 하나님보다는 사람의 이성과 판단을 앞세우며 살게 되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간의 생각을 앞세우며 살게 된 것이다.
오늘날 세상의 혼돈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이 시대에는 살아 계신 하나님과 그 말씀보다는 사람의 생각을 훨씬 앞세우며 살고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대개 자기 생각과 판단을 앞세우며 살려고 한다. 그래서 세상과 삶의 경험을 바로 보고 판단할 수 있을까?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답답함과 불안 속에 살고 있다. 어둠과 혼돈을 경험하면서 때론 텅빈 삶을 살고 있다.
그 혼돈과 텅빈 것과 어둠은 창세기 1: 2에 언급된 용어들이다.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의 섭리를 떠나 사는 삶의 표현이고 결과라 할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살지 않으면, 그 속은 텅 비어있기 마련이고, 어둠 속에 산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나님이나 그 말씀을 가리켜 "빛"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그를 떠나서는 세상과 우리의 삶을 바로 해석하는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빛 없이 사는 것은 또 얼마나 어둠의 삶을 사는 것인가!
사람은 결국 자기 해석의 결과로 살기 마련이다. 우리가 세상을 보고, 우리 삶을 보고 해석하는 눈은 어디서 오는가? 하루 하루 우리가 읽고 듣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온다. 그 말씀의 가르침을 받고 살기 때문에 우리는 하루 하루 우리 삶을 그 관점에서 보고 해석하고 수용한다. 감사하게도 살아 계신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 안, 우리 가까이 계심을 믿고, 그가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이 살아 있기 때문에, 믿는 우리들은 흔들리지 않고 세상을 살게 된다. 이 빛이 없다면, 우리는 얼마나 어둠과 혼돈의 살을 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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