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건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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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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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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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 간 역사의 바벨탑 사건은 인간의 삶과 역사를 돌아보는 중요한 통찰을 주고 있다. 노아의 홍수 후에 사람들은 또다시 있게 될 홍수에 대비해서 하늘 높은 탑을 쌓아 미래의 재난에 대비하고자 했다. 그런 인간을 내려 보신 하나님이 내려 오셔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게 하심으로 더 이상 탑을 쌓지 못하게 하셨다.
바벨탑 이야기는 하나님이 개입한 사건으로 인간 스스로 구원의 수단을 만들려는 시도를 좌절시킨 사건이었다. 이 세상에는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재물과 권력의 탑을 쌓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의와 공의 위에 세워지지 않은 조직이나 공동체는 무너지기 마련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지 않으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고 하였다.
바벨탑 사건은 한 인간의 삶과도 연결된다. 사람이 아무리 강하고 똑똑해보여도 결국 세월에 밀려 늙고 쇠약해지고, 죽게 된다. 그렇게 똑똑하던 사람도 텡한 눈으로 병상에 앉아 있다가 죽음의 길로 들어선다. 죽음을 선고하고 집행하시는 분도 바로 하나님이시다. 이 죽음을 예고하고 집행하심으로 인간이 스스로 높아지는 것을 경계하고, 늙음과 죽음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살기를 원하셨다고 믿는다.
우리 눈 앞에는 세상을 자기 스스로 살고, 자기 힘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 허망한 사람들의 언행을 듣는다. 그러면서 살며시 찾아오는 늙음과 쇠약함으로 빠져드는 사람들, 심지어 치매의 기운이 스며들어 할 말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의 행적을 보고 듣는다. 하늘의 주권자를 몰라보고 자기 도취 속에 사는 사람들을 조용히 내려다 보시는 분이 있다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시2: 4).
사람이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것은 자칫 교만해 지기 쉬운 인간을 치료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고 살아야 한다. 이 중요한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다. 오직 그에게서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듣게 된다.
사람 자체가 스스로 살 수 없는 한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일찌기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을 때, 대답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대답을 들었다. 이 우주 속에 하나님만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뜻이요, 인생은 그분에 의해 붙들림을 받고, 돌보심을 받아 살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모든 피조물은 그 손에 의해 보존되고 그 뜻을 따라 떠나게 되어 있다. 스스로 존재하는 피조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 인간이 다른 사람들을 구원한다는 것은 망상이 아닐 수 없다.
세월을 살다 보면 이 사실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하루 동안에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세상을 살면서 무슨 근거로 사람은 내일을 말할 수 있을까? 정말 자기 힘으로 여기까지 세상을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가까이는 부모의 도움, 이웃의 도움 속에 살아오지 않았던가? 스스로 산다는 말 속에는 감사를 모르는 무정하고 무식함이 배어있다. 그러니 마음을 낮추고, 겸손한 마음, 감사의 마음으로 살자는 것이다. 그 감사는 보이지 않으면서 우리 생명을 붙드시는 하늘의 하나님에게까지 들려져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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