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그 안타까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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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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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에서 돌을 던지면 세명 중 한 명,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돌을 맞는다는 말이 있다. 요즘 와서 그 말을 다시 하면, 세 명 중 한명, 목사가 돌에 맞는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주변에 목사의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 넘쳐난다. 중3학년 때, 처음 교회 나가면서, 노트에다 김희건 목사라고 쓰고 혼자 좋아했던 적이 있다. 내심 목사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대학 졸업 후, 군대에 들어가서 맞게된 보직이 PX사병을 지나, 군종 사병이 되었다. PX사병은 그 당시 특과로서 내무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졸병 시절 속 편한 군대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부대를 옮기고 거기서 군종 사병의 보직을 받게 되어 좋아했는데, 그때 만난 군목, 모 중위는 쉽게 잊혀지지 않을 상처를 안겨 준 사람이었다.
키는 내 어깨에 찰 정도로 작았고, 감신대를 나온 것을 몹시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목사였다. 그는 보통 목사가 아니었다. 자만심이 가득했고, 사람의 심령을 몹시 상하게 하는 목사였다. 똥 묻은 워커를 코 앞에 내밀고 닦으라는 사람이었다. 그를 만난 이유로 제대 후 신학교를 가려는 계획에 차질이 있었다. 제대 후의 상한 심령으로 도무지 신학교에 갈 의지가 없어져서, 회외 건설업체에 취직해서 5년을 근무하다가 신학교에 들어갔다.
회사 생활은 불편한 것이 없었지만, 아침 회사 차를 타고 통근할 때 남몰래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나?"는 생각때문이었고, 사무실 안에서 서류룰 뒤적이다가도 "지금 무얼하고 있지," 생각으로 마음에 허무감이 밀려왔다. 그러다가 마침내 신학교 시험을 보고, 장학생이 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회사를 그만 두었다.
그러나 그 신학교는 내가 그리던 신학교는 아니었다. 교수들은 자기 자랑을 하고, 학생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 교수도 있고, 무슨 강의인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아서, 학교 옆 아차산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수업 시간을 보냈다. 졸업하고 교회 전도사로, 부목사로 취직은 해서 일하다가 미국에 와서 공부하며 목회하며 33년을 보내고 2년 전에 은퇴하고, 지금은 후진들을 가르친다.
목사의 직분은 몹시 명예스러운 것이다. 또 다른 기회가 있어도 목사 말고 하고 싶은 일은 없다. 가장 보람된 것은 성경을 가르치고, 신학의 바른 체계를 가르치는 일이다. 성경만 해도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고, 그 깊이를 다 알 수 없다. 신학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이런 배움의 삶, 가르치는 삶을 살다 보니, 목사님들의 설교나 말씀을 들으면 그 사람의 깊이를 헤어리게 된다.
어떤 분은 그 신학과 성경에 대해 깊은 이해로 가르치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복음이 무엇인지 모르고 설교하는 목사님도 있다. 미국 이민 사회에는 한인 신학교가 많아서, 웬만하면 신학교를 나오고, 심지어 박사 학위를 가진 분들도 있다. 제자 중에는 성실히 공부하고, 자기 힘으로 좋은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은 분들도 있다.
그런데 내심 유감스러운 것은 목사되는 과정이 너무 쉽고 준비되지 않은 사람도 목사가 되어 민폐를 끼치는 목사님들이 있다는 것이다. 교인들을 가르치기 위헤서는 성경과 신학에 대한 깊인 이햬를 가져야 한다. Princeton 신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보장된 것이 아니다. 미국 신학교는 성경을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헛된 자만심을 갖기 쉽다.
성경과 신학에 대한 깊이와 함께 사람됨이 착하고 의로와야 한다. 그러나 미국 와서 가장 실망을 안겨 준 장본인은 목사의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다. 물론 마음으로 존경하는 후진 목사님들도 있다. 성실하고, 거짓없고, 욕심없이, 잘 섬기는 목사님도 있어, 존경의 마음을 갖는다. 그러나 목사의 직문을 가지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까?
성령없이 목사가 된 사람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쉽게 이해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목회자의 길을 가는 것인데, 자기 변화가 없이 살면 어떻게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신앙 생활의 시작은 에스골 해골 골짜기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거기 즐비하게 쓰러져 있는 해골 속에서 자기 모습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말씀과 성령의 능력이 아니면, 흉칙한 해골의 모습으로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목사의 직분을 가지고 있으면서, 교회에 가장 해를 끼치는 사람은 물질과 권력의 욕심 속에서 대물림하는 목사들이 아닌가, 싶다. 이들은 대부분 기복 신앙, 성공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다. 사실을 말하면. 목사들 중에 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세상 사람들에게 이들은 몹시 이중적이고 탐욕적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그런 짓을 하면서도 수치를 모르는 것이 이 목사들 아닌가, 싶다.
이런 탄식을 하면서도, 보이지 않은 곳에서 조용히, 이름 없이 섬기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칠천명"이 있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삭이게 된다. 내 마음 속에는 그렇게 정직하게 목회하는 후배 목사님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러다가 나같은 죄인도 불러 주신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을 부르시는 일에 웬 시비인가, 자신을 돌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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