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건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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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 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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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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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부목사로 사역할 때, 만나고 기억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착하고 의로운 사람들이었다. 이런 생각은 교회 안과 밖에서 그들을 만나고 체험한 느낌이었다. 교인들은 수시로 나를 불러 내어, 삼청동의 고급 식당에서 점심을 대접하고, 교회 안과 밖에서 존경의 마음을 보내왔다.
가장 마음에 남는 분은 경계호 권사님이시다. 이분은 나의 어머니 나이가 되신 분으로, 새벽 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제일 앞 줄에 앉아 소리를 내서 기도하셨다. 앞에서 소리없이 기도하는 나에게 그 기도 소리가 들렸다. 그 기도 중에 김희건 목사님이 신학교에서 주의 종들을 가르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나는 목회 외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의와의 기도라 생각했다. 한국 방문 중에는 나를 집으로 불러내어, 무릎을 꿇고 기도해 달라고 하셨다. 황당한 느낌이었지만, 그 청을 들어 주었다. 한국에서 내가 만난 교인들 중에는 한, 두명 장로들외에는 불편한 느낌을 가진 분들이 없었고, 늘 마음에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 지난 5 월 한국을 방문 중에도 40년 전 옛날 교인들이 반갑게 알아 보고 맞아 주었다.
35년 전 미국에 와서 공부하며 목회하며 미국에서의 목회 생활이 시작되었다. 프린스턴 지역의 교인들은 모두 대학, 그것도 서울대, 연대, 이대를 나온 분들이었다. 우선 대화가 통해서 좋았고, 설교의 부담이 없었다. 알아듣고 반응했기 때문이다. 5년 후, 뉴저지 북쪽에서 와서 목회할 때, 교인들은 설교 중 졸고 있는 분들도 있었다. 대화의 장벽도 느꼈다.
이민 목회에서 느낀 점은 이민들의 마음에 상처가 깊다는 것이다. 이민들은 백인 주도의 사회에서 변두리에 사는 분들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미국 땅에서 대접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대접할 줄 잘 모른다. 처음 미국 왔을 때, LA 수도 교회 목사님 말씀대로, 이민 목회는 섬기는 목회여야 한다. 공항까지 차도 태워주어야 하고, 침대도 날라 주어야 하고, 차가 필요한 분들에게 차를 태워 데려와야 한다.
나는 어렸을 때, 할머니와 혼자 살았던 경험이 있어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했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일이 거의 없고, 없으면 없는대로 살아가는데 익숙하다.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소리 없이 굶으면서 책상 머리에 앉아 공부했다. 그런 사람에게 이민 목회는 적성에 맡지 않는 목회라 할 것이다. 집 사람 말대로 나는 어느 서울 강남 교회에서 설교 목사로 있으면 딱 좋은 목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살듯이 이민 목회를 시작하고, 33년만에 은퇴를 했다. 그런 목회 속에서도 끝까지 남아 목회를 도왔던 분들이 항상 기억된다. 이민 목회를 할려면, 무엇보다도 목사가 착해야 한다. 나는 착한 편은 아니다. 거짓과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의인에 가깝다. 성경의 원칙을 떠나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에 목회 중에 외로움도 느꼈다.
이민 목회보다 더 보람되었던 것은 2000년부터 신학교에서 가르치며 살았던 것이다. 강의실에서 가르칠 때는 날개를 단 느낌이다. 그래서 오래 전 경계호 권사님이 왜 내가 신학교에서 후진들을 가르치라고 기도했는지를 뒤늦게 알았다. 그런 내가 왜 목회의 자리를 떠나지 못했을까? 내겐 말씀이 사역 없는 삶은 매마른 땅을 걸어가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견딜 수 없었다.
지금은 홀가분안 마음으로 가르치는 삶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은퇴를 훨씬 넘긴 나이에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어 즐겁고, 강의실 안에서 학생들과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즐겁다. 착한 사람은 아닌데도, 하나님이 지금까지 불러 사용하신 것을 보면,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된다. 한 가지, 진실하게 살려는 마음을 놓친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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