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건목사

eca2efab30f2f9e7c565dac93d5f612b_1738365298_4106.jpg
 

성경적 인간론

작성자 정보

  • 김희건 목사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의 주요 주제가 구원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 주님의 이름이 "구원자(Savior)" 아닌가? 이 구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기 위해서 먼저 취급되는 것이 사람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사람에 대한 이해를 가져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고, 생명을 말할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 안에서 생명이 보존되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데, 그 생명의 의미가 있다. 하나님을 떠난 존재는 그 생명도 의미도 말할 수 없고, 무가치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우리 주님의 말씀이다.
사람의 본질을 알기 위해 성경을 참고해야 한다. 사람은 타락 이후 몹시 이기적이고, 자기 만족을 추구하는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의 보호와 돌보을 상실한 인간은 스스로 살기 위해 악착스럽고, 탐욕과 거짓에 쉽게 빠져들어간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은, 악한 생각, 살인, 간음, 거짓말, 훼방 등, 모든 악한 것을 말씀하셨다.
창조주 하나님의 평가를 반대할 수 없고, 사실 사람이 그런 존재임을 모르면, 헛된 기대와 실망 속에 살게 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 10절 이하, 사람의 본성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의인언 없고, 선한 자도 없다. 모두가 치우쳐 악한 자가 되었고, 그 목구멍은 열린 무덤,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고 한다.
그 입술에 독사의 독이 있다는 말 뜻을 이해할 수 있을까? 겉으로 보기에 착한 사람, 유순해 보이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독한 소리를 경험하지 않고는 그 말씀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사람은 상호 관계에서 그 선을 조금 드러내다가, 이익의 문제를 당해서 얼마나 악해지고 사나와 지는지 모른다. 어떤 목사는 급하면 변호사를 내세워 자기를 방어하려고 한다. 목회자들이 송사 문제를 꺼려하는 것을 알고 선수를 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선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세상 사람들은 그래도 사람에 대한 기대와 선의 행실 속에서 소망을 갖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가족 속의 상호 신뢰와 사랑, 교회 안의 신뢰와 헌신등을 어떻게 이해할까? 하나님의 도움을 떠난 인간의 선은 상황적이다. 상황이 악하지 않고, 살아갈만하니까, 선을 베풀 의지를 갖는다는 것이다. 상황이 나빠지면, 인간의 선의 의지도 함께 약화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 예로 성경은 아합 왕 시대 기근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기근으로 먹고 사는 것이 궁해지니까, 두 어머니가 작당하고 자기 아들을 잡아 먹기로 했다는 것이다. 궁지에 몰리면, 부모 자식간의 유대나 사랑도 없어진다는 극단적인 케이스이다. 사실, 사람이 궁해 지면, 혈연적 사랑도 식어지기 마련이다. 사람의 선행은 상황 속에서 가능하기도 하고, 사라진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을 바르게 이해해야 목회를 계속하게 된다. 인간에 대한 헛된 기대에 빠지면 실망하고 그 사역을 계속할 힘과 의지를 잃어 버린다. 특히 이민 목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 인간을 위해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희생의 제물로 내어 주셨고, 그런 나를 위해 하나님을 오래 참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헤와 사랑 앞에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
이 세상, 특히 이민 생활을 하면서, 이런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사사건건 실망 속에 살게 된다. 사람들은 의사, 자동차 수리점, 변호사 등을 만나면서 성경적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경험하게 된다. 성경이 일찌기 사람이 어떠함을 말씀해 주었기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고 실망할 때도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그런 사람들 속에 사는 자기 백성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감사의 삶을 살게 된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아셨고, 주님은 "아무에게도 실망하지 말라"고 제자들읅 가르쳤다. 사람들이 어떠함을 아시기 때문에 자기 백성, 자기 제자들을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의 삶이 편하거나 안전할 수 없다. 마치 광야를 걸어가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신실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소망을 갖고, 머리를 들고 살게 된다. 인간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이 더 고마와 지는 이유가 거기 있지 않은가, 싶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90 / 1 페이지
번호
제 목
이름



최신글 모음


새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