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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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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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과 관련한 중요 언어는 "평강"이다.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안식, 평안이다. 오래 전 Francis Shaeffer라는 분이 쓴 책이 있었다. 제목은 "How should we then live?" 였다. 대학교 때 읽었던 책으로, 스무(20) 번 가까이 이사를 다니면서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는 책이다. 서구 종교 개혁 이후 사상의 변천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비평한 책이었다. 그 책의 말미에서, 사람들이 시대와 종교를 떠나 구하는 것이 두 가지라고 말한다. 하나는 물질적 풍요, 또 하나는 마음의 평강이라고 한다.
세속 사회를 떠나 산사를 찾아가, 독경과 수행 속에서 평강을 찾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숨길 수 없는 사실은, 그곳에서도 사람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해 짓는 부끄러운 행적들이다. 사람의 내적 욕망은 어떤 장소를 찾아간다고 해서 절제되는 것이 아니다. 일례로, 서구 사회의 수도원 속에서는 밖으로 표현될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종교 세계라고 해서 사람의 심령을 다스리고 절제하는 것을 약속해 주는 것은 아니다. 승려들, 목회자들이나 카톨릭 사제들의 비행이 종종 터져 나오는 이유가 거기 있다. 예수님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하셨다. 짧은 말씀이지만 심오한 의미가 담긴 말씀이다. 이 말씀을 소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에게 하셨다는 것이 놀랍다. .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어떤 종교적인 틀에 속할지라도 여전히 "육의 삶"을 산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육"이란 "욕망과 허무와 죽음의 지배 속에 사는 인간"을 가리킨다. 종교의 옷이 사람을 구제해주지 못한다. 카톨릭의 화려한 사제복이 사람의 욕망을 억제해 주는 것이 아니고, 목회자의 경건한 까운이 사람을 욕망에서 자유케 해 주는 것도 아니다. 그련 것은 단지 "거룩한 위장"일뿐이다. 우리는 그 위장을 경계해야 한다.
유일한 대안은 성령으로 거듭나고, 성령의 지배(충만) 속에 사는 것뿐이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성령의 지배(충만) 속에 사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람된 삶을 살 수 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 뒤에는 그들에게 아직 성령이 보편적으로 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실패와 멸망의 삶을 살지 않았던가?
누가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는가?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이 세상의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심령의 가난함"이 있다. 그들은 육신과 세상의 허무성을 알고, 하늘의 위로와 도움을 구한다. 그런 사람들은 이 세상의 물질과 성취에 목을 메고 살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들을 줄 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를 원한다. 우리 인간의 소망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 말씀에 있는 것을 알아, 생명처럼 환영하고 붙들고 살기 원한다. 그런 열정, 거룩한 욕망도 성령의 선물이다. 그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체험하지 못하는 하늘의 위로와 평안을 알게 된다.
예수님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풍랑 속에서도 안식의 잠을 주무셨다. 제자들이 죽음의 위협을 느끼면서 예수님을 원망하는 그 시간 예수님은 하늘의 평강을 누리고 있었다. 사실 풍랑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조용히 보여주고 계셨던 것이다. 그 평강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마음으로 중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그 뜻에 자신을 맡기고 사는 사람, 마음으로 하나님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원하는 사람, 이 세상의 물질과 성취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평강이다. 결국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며 사는가, 거기에 그 사람의 위인됨이 있다. 안타깝게도 교회 세계 안에는 가짜들도 적지 않다. 가짜일수록 위장을 강조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요동하는 세상 속에서 평강을 구하고, 그 평강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개인의 행복을 뒤로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따르는 제자들에게 그 평강을 주셨다: "내가 주는 평강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는 그 평강을 말할 수 있을까? 그 평강을 증거할 수 있을까? 성탄절을 맞으면서, 깊이 생각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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