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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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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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 5장에 나오는 베데스다는 예루살렘 근방의 연못을 가리킨다. 오래 전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직사각형의 베데스다 연못을 본 적이 있다. 지금은 물이 없는 과거의 유물로 남아 있다. 베데스다는 "긍휼의 집"이라는 뜻을 갖는다.
이 연못에 관한 이야기는 세상 정서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대조적으로 그려준다. 천사가 가끔 그 연못을 동하게 할 때, 먼저 뛰어든 병자가 무슨 병이든지 낫는다고 한다. 그래서 각지에서 병자들, 몸이 성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물의 동함을 기다리고 있다.
몸이 온전치 못한 사람들이 모였다는 점에서 그 장소는 몹시 을씨년스러울 것이다. 소경, 걷지 못하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 손이나 다리 하나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 등으로 보기 딱한 장면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하나님 앞에 사람의 모습을 가리키면서, 예수님은 "소경, 앉은뱅이, 문둥병자, 귀머거리, 또는 죽은 자들"을 말씀하셨다. 이 병자들, 몸이 온전치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죄인된 인간의 표상들이다. 누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존재인가? 모두 점과 흠으로 점철된 인간일뿐이다.
그 병자들은 서로 경쟁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세상 정서를 보여 준다. 다른 사람보다 먼저 뛰어 들어가야 나음을 얻는다. 세상에는 그런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 뒤지면 낙오한다. 생존경쟁, 적자 생존의 세상이다. 거리에는 낙오한 사람들이 homeless로 살아가고, 사람들은 무심한 마음으로 그 앞을 지나간다.
어느날 예수님이 그 장소를 찾아오셨을 때, 예수님은 다른 병자, 몸이 상한 자들을 지나, 38년된 혈기 마른 사람을 찾아오셨다. 그 이유는 자기 스스로 낫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데스다 연못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긍휼의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지만, 그 하루 하루 속에, 긍휼의 하나님을 마음으로 의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에게 이 세상은 긍휼의 집으로 의미를 갖는다. 그 긍휼을 알기 위해서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스스로 살 수 없는 피조물인 것을 알아야 한다. 피조물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그 생명이 보존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긍휼 속에 살면서 긍휼인지 모르고 살고 있다. 마치 자기 힘으로 자기 노력으로 세상을 살고 성취하는 줄 알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다리, 눈, 귀가 예전처럼 작동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된다. 잠시 사람은 건강하다가, 쇠약함의 때로 들어가서, 죽음의 길로 들어사는 것이다. 죽음은 피조물이 가장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체험하는 마지막 경험이다.
평소 이런 사실을 알고, 창조주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을 부르고 의지하는 것이 신앙 생활이요, 그렇게 사는 사람은 하루 하루 하나님의 성실을 경험하게 된다. 그 마음에는 감사가 흘러나고, 스스로 의지하지 않는 마음은 자유하고 평안하다. 베데스다 그 연못은 오늘날 이 세상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자기의 망가진 모습, 죄인된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는 사람에게 긍휼의 하나님이 돕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젊음도, 건강도, 아름다움도 잠시 있는 것을 알고, 그런 것을 의지하거나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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