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온 변호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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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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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만나본 여성 중에 이용온변호사님처럼 똑똑한 분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를 알게 된 때는 그가 다리의 병으로 힘들어 할 때, 그를 위로하기 위해 그 집에 모여들기 시작하면서였다. 고통의 이유를 알지 못하고 집에서 병가료를 하고 있을 때, 일단의 목사님들이 그 집에 모여, 밤늦게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 옆에 있어 주었다. 홀로 살던 그분은 목사님들이 진심으로 그를 아끼는 것을 보고 좋아하셨다.
내가 Belmar 낚시를 갔다 밤길에 돌아 오면서, 287고속 도로에서 스피드 티킷을 먹었을 때 (그때 나는 40마일을 넘었던 것 같다), 불편한 가운데도 변호해 주어서, 200불로 처리할 수 있었다. 그날 변호가 재치있어서 판사님도 얼렁뚱땅 넘어간 것 같았다. 이 변호사님은 과거 한국 유행가도 대부분 기억하는 뛰어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다.
공화당원으로 장래가 기대되던 분이었다. 살아계셨다면 그 방면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화 중에 내가 심미적(Aesthetic)이란 것을 지적해 준 분도 이변호사님이시다. 그 지적을 통해 평소 내가 아름다운 것에 쉽게 감동을 받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클래식 음악의 애호가이고, 꽃을 사랑하고, 아름다운 사람, 외모든 행실이든, 그 아름다움에 감동을 받고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그가 고통 중에 하루 하루를 보내다가 하와이로 옮겨가셨을 때, 나는 시를 지어 보냈다. 또 그가 마침내 운명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또 한편의 시를 썼던 것이 뉴욕 방송국에서 낭독되었다. 50대 나이, 한참 일하고 빛을 발할 수 있을 때, 큰 아쉬움으로 먼저 떠나가셨다. 27년이 지났어도, 그 하얗고 곱고 재치넘치는 얼굴이 기억된다. 그를 아는 분들은 지금도 깊은 아쉬움을 갖고 있을 것이다.
목사님의 사모님으로 살다 마음 고생을 하고 일찍 떠나셨다. 나도 목사지만, 목사에 대해 별 신뢰를 갖지 않은데는 목사라는 직업을 가지고도 목사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고 듣기 때문이다. 내가 목사의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진실한 것이다. 거짓없이 깨끗하게 사는 것이다. 그런 자질은 특별한 것도 아닌, 지극히 상식적인 요청일 것이다. 그러나 살면서 나를 가장 실망시킨 장본인들은 목사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나의 글 속에는 종종 목사들이 검은 얼굴로 등장한다. 양심이 검다는 뜻이다.
살다 보니 어느새 70대 중반이 되었다. 오래 살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 나이에 제자들을 가르치고,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 참 대견하고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 나는 알려진 사람은 아니지만,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지는 않는 것 같다. 타협을 모르는 융통성없는 사람으로 아는 사람도 있고, 욕심없이 살고 있다고 말해 주는 사람도 있다. 어느 제자의 말대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강조하는 사람으로도 기억되고 있다. 남은 세월 조심 조심 바르게 살다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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