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건목사

무엇을 위해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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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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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고등학교 시절 문학에 재질이 있는 박기서라는 친구가 교실 앞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백두산에 떨어진 빗방울 하나가 동쪽으로 흐르면 두만강이 되고, 서쪽으로 흐르면 압록강이 된다는 말이다. 비 한방울도 그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강에 합류한다는 말이다.
사람도 알게 모르게 어느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 종점은 천국인가, 지옥인가로 나누어 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하다. 내가 천국과 지옥을 믿는 확실한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 부활하셨다는 것과, 그가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은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나는 죄에 대한 심판을 믿고, 나를 죄와 심판에서 건져주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기 때문에 그가 하신 모든 말씀은 진리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는다. 이런 고백은 성경 말씀에 대한 믿음에 근거할뿐 아니라, 내가 살면서 마음으로 체험하는 심령의 자유와 평안함에 근거하고 있다. 신앙 생활의 효력은 그 마음에 누리는 심령의 자유와 평안, 확신에 있다고 믿는다.
이런 확신은 매일 매일의 삶에 있어 내가 추구하는 목적의 산물이기도 하다. 나는 할 수 있는대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살기 원한다. 모든 거짓과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아들의 통치와 돌보심을 믿으며, 그의 뜻을 좇아 살기 원한다. 사람이 사는 목적은 단순하다. 자기 자신의 만족과 성취를 위해 살든지, 아니면, 정말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살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우리 조상의 타락 이후,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 존재로 태어났다. 신학에서 말하는 죄의 근원은 "자기 중심성"에 있다. 만사를 자기 위주로 판단하고 , 자기 만족을 추구하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혹, 어떤 선한 행위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경우이다. 자식을 위한 부모의 희생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인간의 선행은 상황적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그런 선행을 할 수 있는 건강과 물질의 조건이 있어 가능한 선행이라는 것이다. 몸이 아픈 사람에게서 보는 것은 몹시 이기적이 되어 간다는 것이고, 물질에 쫄린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상황이 쫄리면, 사람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의 선행은 상황적(situational)이라 할 수 있다.
예외가 있다면, 하나님이신 성령이 주시는 사랑의 의지와 능력이 역사할 때일 것이다.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이 자신을 희생하면서 복음을 전하며,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것은, 사람의 본래적 의지나 능력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은사라 할 수 있다. 우리도 그 성령의 감화와 도움 속에서 이기적 본성을 이겨내고 사랑과 희생의 정신으로 살기를 원하고 있다.
오늘 읽은 말씀은,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 잃는 자는 찾으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사람이 본래 창조된 목적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그 길에 참된 생명과 자유가 있음을 말씀해 주신다. 이런 뜻을 알고 실천하는 능력도 성령 하나님의 감화 감동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믿는다. 사람은 알게 모르게 자기가 목적하는 바를 따라 살다가 언젠가, 그 끝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끝을 미리 알고 사는 것이 축복이라 믿는다. 또 사람은 현재 속에서 평안이든 불안이든, 그 끝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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