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를 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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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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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을 듣는 일이 취미가 된 후에 따르는 일은 그 음악을 재현하는 기기에 대한 관심이었다. 좋은 음악을 재현하는 기기의 차이에 따라 소리가 다르고, 값이 천차만별 달라진다. 심지어 자동차 안에서 듣는 음악도 차종에 땨라 차이가 있다. 집 사람 차 포레스터에서 듣는 음악과 CR-V에서 듣는 음악이 다르다.
그 차이를 알기 때문에 더 좋은 음질을 재현해 주는 기기를 찾게 되고, 값이 올라간다. 15년전 300불을 주고 산 1979년 산 마란츠 2265B가 지금도 좋은 소리를 내고 있다. 오디오에 있어 1970년대는 전성시대였다. 지금은 그 기기를 사용해서 음악을 듣는데, 부드럽고 듣기 좋은 강한 소리가 난다. 아침마다 좋은 음악을 듣는 즐거움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나는 본성적으로 비교하는 데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비교를 통해 그 차이를 알게 되고, 그 대상을 더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성향이 신학교 공부 시절 논문에도 반영이 되었다. 기독교와 불교의 비교, 고난에 대한 신학자들의 주장을 비교하는 것 등, 무엇을 비교 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지난 학기에는 구원론적 관점에서 세계 종교의 비교를 가르쳤다.
그런 눈이 사람을 볼 때도 은연중 비교하게 된다. 젊었을 때는 여자의 외모를 주로 보았지만, 나이 들고 나서 보는 것은 그 심성이다. 착한 여자, 심성이 부드러운 여자가 아름답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할 줄 아는 여자가 아름답게 보인다. 자기 주장이 강하고, 자기를 내세우는 여자는 두려움을 야기한다. 혼자 살기에 적합한 여자라고 속으로 말한다.
비교의 대상에는 아침에 마시는 커피에도 있다. 커피를 즐기다 보니, 그 맛을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 끌여 주는 커피는 너무 밋밋하다. 집 앞의 베이글 가게의 커피, 10분정도 차를 타고 가는 다이너 식당의 커피는 즐거움을 준다. 그 커피를 마시려고 종종 그 가게를 방문한다. 입안을 즐겁게 해주는 커피를 마실 때 작은 행복을 느낀다.
얼마 전 흑백 요리사의 대결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보았다. 맛의 차이를 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사람의 건강과 생존에 관계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재료로 별미를 만들어 내는 것은 비상한 재주가 아닐 수 없다. 똑같이 보이는 빵도 식감이 다르고, 어떤 빵은 입안에 즐거움을 준다.
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버림을 받았고, 다윗은 끝까지 보존되어 믿음의 조상으로 존경을 받을까? 그것도 비교 연구의 대상이다. 사람의 가치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어떤 눈으로 보는가에 달려 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무한한 무가치성, 작음과 죄인됨을 아는 사람을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는 것 같다.
나 자신이 오늘날까지 생존하고 쓰임을 받는 이유가 궁금하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나 자신의 작음, 죄인됨에 대한 자각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괴로와 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상한 갈대, 꺼져가는 심지"로 알았던 나를 이날까지 지켜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신기하고 감사한 마음뿐이다. 주변에서 나이들어가는 목사님들의 아픈 얘기를 들을 때, 오늘날까지 나를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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