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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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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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한 때 마음에 없는 직장 생활을 했다. 아침 회사 버스에 올라 회사를 향해 갈 때 마음이 처연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 길을 가고 있나? 사무실에서 서류를 뒤적일 때도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어? 일을 하면서도 허무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마침내 그 직장을 뒤로 하고 신학교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때부터 바랐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신학교에 들어가서 나는 희망과 즐거움 보다 신학교의 형편, 강의 내용을 들으면서 절망감을 가졌다. 마치 무슨 학원처럼, 180명이 우르르 몰려가는 수업, 귀에 들어오지 않는 강의, 어떤 분은 왜 그리 교실 안에서 자기 자랑을 그리할까? 그래서 종종 수업을 빠지고 과천 아파트 근처 관악산에 올라가 흘러가는 물에 발을 담그고, 라면을 끓여 먹곤 했다.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미국으로 와서 신학 공부를 계속했다. 가르치는 일이 없이 배우는 일은 정말 매말랐다. 그래서 공부하면서 가르칠 기회, 목회의 길을 찾고 그 삶을 계속했다. 나는 사람을 자상하게 돌보는 마음이 부족하다. 교인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기를 원했다. 도움이 없는 사람을 돕는 일은 마땅하다. (전철 정거장까지 차 태워달라는 교인의 청을 들어 주어야 하는가? 한 시간 운전해서 마사지 침대를 실어와달라는 청을 들어 주어야 하는가? 할 수 없는 일은 돕기 원한다. 그런데 교인들은 목회자의 사역 내용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왜 그런데 목회의 일을 떠나지 못했을까? 가르치는 일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목회를 은퇴하고서도 지금도 가르치고 있다. 화상을 통한 주일 예배, 새벽 말씀 녹음, 화요 성경 공부, 신학 강의로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이일을 붙들고 있는 이유는 그 일을 하지 않으면 텅빈 삶을 산다는 느낌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교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하는 일처럼 느낄 때도 있다. 지금도 내가 사는 이유는 성경을 가르치는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속이 텅빈 느낌이 두렵기 때문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말의 문제가 아니다. 내 자신이 가르치는 대로 살지 않으면 허황된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은 먼저 자기를 가르치고 그 다음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야 한다. 나는 무엇을 그리 강조해서 가르치는가? 어느 학생의 말에 의하면, "거룩성"이라고 말한다. 그 가르침이 오래 남는다고 한다.
며칠 전 신학교에서 오늘날 신학교가 힘써야 할 주제가 무엇인가 설문 조사를 해왔다. 교회가 쇠퇴하고 신학교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힘주어 가르쳐야 할까? 심각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무슨 교회 성장의 요령, 성공적 삶의 원리, 이런 것을 가르치는 것은 교회나 신학교의 원래 사명이 아니라 믿는다. 세대가 변해도 항상 강조해서 가르쳐야 할 주제는 교회와 신자의 "거룩성"이라고 믿는다.
복음에 대한 성경적, 신학적 이해와 경건한 삶의 실천이 교회나 신학교가 강조해야 할 주제라 믿는다. 우리가 믿고 전하는 "이 복음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했다. 그 능력을 체험하고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일꾼들이 거룩해야 한다고 믿는다. 오늘날 교회의 위기는 이 거룩성의 상실에 있다고 믿는다. 우선 교회 지도자들부터의 문제다.
이 어둠의 세대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빛의 자녀로 살아야 한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고 했다. 교회나 교회 지도자들이 무시받는 이유는 이 착함, 의로움, 진실함을 떠나 살기 때문 아닌가? 믿는 사람들, 지도자의 입에서 거짓말이 사라지면 교회가 부흥할 것 같다. 오늘날 매일 듣는 세상 소식에도 이 거짓말이 공기처럼 돌아 다니고 있다. 이 어둠의 세대, 우리 믿는 사람들이 진실을 지켜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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