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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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해석의 원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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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준희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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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라


독일의 철학자이며 신학자인 슐라이어마허(Friedrich Daniel Ernst Schleiermacher)는 종교란 지식으로는 증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는 지식이 아니라 체험을 해야 만이 알 수 있다고 함으로써 종교를 지식의 영역에서 감정의 영역으로 바꾸어 놓았다.

 

슐라이어마허는 현대 신학의 아버지라고 할만큼 현대신학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분이다. 그는 신학의 교리나 형이상학적인 것을 직접적인 자아 의식적 체험에서 오는 개인감정으로 보고, 하나님과 직접 관계할 수 있는 주관적 신학을 정립해 놓음으로서 자유주의 신학의 발판을 만들어 놓았고 그 영향으로 성경 해석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체험적 감정에 신학적 배경을 두었다는 점인데 이 체험이 개인마다 다르고 거의가 초월적인 체험에 그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지식적인 측면에서는 엇박자가 될 수 있는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신학이 어디에 바탕을 두고 있느냐에 해석학의 길은 180도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계시를 지식적으로 이해했다는 것은 내 이성이 하나님 말씀에 굴복되어졌다는 의미이다. 이는 우리의 일반적인 지식으로 말씀이 이해되었던, 초월적인 어떤 기적적인 사건에 의해 성경이 이해되었던 계시를 이해했다는 것은 내 이성이 말씀에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에 기록된 계시의 전체적인 핵심을 보는 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 첫째가 신구약 성경에서 제일 많이 등장하는 내용이 뭐냐 하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는 내용이다. 그 다음을 본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인간을 어떻게 대접을 하고 계시느냐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다. 이런 하나님에 관한 기초가 지식적으로 올바로 성립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런 지식이 올바른 신학에 바탕을 두지 않는 한 뜻밖에 엉뚱한 곳으로 흘러들어간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기가 체험했던 감정적인 지식으로 하나님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성경을 자기중심으로 하나님을 이해하기 때문에 기도를 했다고 하여도 자신이 한 기도 제목을 하나님께서 이루셔야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는 쪽으로 성경을 해석해나간다는 것이다, 즉 성경 해석이 말씀에서 말씀으로 해석되어지는 원리를 배제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성경을 해석하여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곳으로 흘러들어 간다는 것이다. 그것이 다 어느 신학에 바탕을 두고 있느냐에 극과 극으로 대치된다는 사실이다.

 

그럼 먼저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 성경적인 해석학을 도입해 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 말은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원리다, 성경은 서로 짝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해석에 중심에 두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였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34:16)”

 

먼저 구약을 보면 거의가 사건적인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역사적인 부분이 주를 이룬다. 신약은 어떤가, 거의가 내용적이고 설명적이다. 또한 구약의 상당부분은 초월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된다, 이 초월적인 사건을 해석하지 아니하면 초월적인 기적 자체에 의미를 둘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홍해바다가 갈라지는 역사적 사건은 자연을 초월한 엄청난 기적이다. 이 기적이 해석되지 아니하면 인간은 이같은 기적을 자신의 체험에 적용시킬 확률이 높다. 한 가지 예로 사업이 부도가 나서 회사가 파산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하자.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 앞으로도 해결이 불가능하고 뒤로도 갈 수 없는 절대절명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 홍해바다가 갈라지듯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전혀 뜻밖의 사람이 나타나 부도 위기를 막아 준 것이다, 이런 체험을 바탕으로 말씀을 받아들인다면 그 홍해 사건은 자신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로 단정 지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해석은 자기 주관적인 적용이지 성경이 해석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해석으로 보는 우를 범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런 주관적인 해석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뜻과는 거리가 먼 오류이다, 홍해를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신약성경을 통해 바울이 잘 해석해 놓았다. 고전10:1-3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이 반석이 곧 그리스도라,

 

모세를 통한 홍해 바다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며 우리의 구원 사역이 인간의 의지와는 별개로 초월적인 하나님의 뜻이 담겨진 사건이라는 것이다. 좀더 신약을 통해 그 의미를 보면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세례와 연관되어 있는 구원사역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사역조차도 한 개인의 체험으로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초월적인 역사를 통해 인간을 인도하고 계신다면 그 의도하신 뜻을 알기 위해 성경의 전체적인 조각을 맞추는 신학적 배경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배경에또 다른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즉 구약성경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신약은 오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신학적 바탕이 전제되어 있어야 주관적 해석이 불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경해석은 계시에 의존해야 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서만 가능하기에 주체가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만큼 성경해석은 가능하기에 인간의 주관적 체험이나 자의적 지식은 철저하게 배제 되어야 한다.

 

말씀이 가는 곳까지 가고 말씀이 멈추는 곳에서 멈춘다(존 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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